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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군대를 가야할까요?

이름 강명주 등록일 14.09.05 조회수 2100
징병제 한국군, 곪을대로 곪았다



(…) 한국의 국민개병주의는 이미 극심한 피로와 한계에 직면하여 있다. 사회적으로는 가진 자, 권력자의 병역 기피가 만연될 대로 만연되어 있으나 이를 국가가 제대로 응징한 적이 없이 어물쩍 넘어갔다는 점이 징병제의 취지를 반감시킨다. 헌법에서 표방한 병역의 의무는 사회적 평등의 기제였으나 거꾸로 반칙과 특권의 온상이 되었다는 점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무색케 한다. 지금껏 아버지와 아들이 공히 국민개병을 실천한 국가지도자는 노무현 대통령과 그 아들이 유일한 사례다. 그 이외에 대한민국 헌정 이래 대통령과 그 자제가 모두 국민개병을 실천한 사례는 없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 와서 청와대 고위공직자의 병역 면탈은 당연한 것처럼 보여 질 정도다. 역사가들은 천년을 유지한 로마가 쇠락하던 당시의 시대상을 묘사할 적에 바로 이런 식의 특권과 반칙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군사적으로 징병제의 한계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먼저 군 운영 측면에서 보자면, 일단 징병을 한 이상 전투력이 있는 자원이든, 아니든 군에서 내보내지 못하고 국가가 다 책임을 져야 한다. 실제로 군에는 전투에 부적합한 자원을 지나치게 운용하고 있다. 군에서는 연간 2~3만 명에 달하는 입실환자가 발생하고 있고, 그 중 70%는 치료를 요하지 않는 정양환자들이다. 일반 병원 같으면 퇴원시키면 그만이지만, 군에서는 완전히 회복되기 이전에 야전으로 보낼 수 없기 때문에 군 병원에서 장기간 입원해 있는 임무수행의 부적격 자원들이다.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대규모의 군 의료진과 병원시설, 의무행정 조직을 필요로 한다.
 군은 또한 대규모로 전과자를 보유하고 있다. 연 평균 6000여 건의 범죄가 발생하는데 이들을 사법처리하고 수용하기 위해 또다시 6000여명의 헌병을 투입하고 있고, 영창, 교도소를 운영해야 한다. 수천 명 규모의 법무조직도 필요하다. 범죄자는 아니지만 군 복무수행 중에 발생하는 연간 300명에 육박하는 사망자와 그 관리를 위해 별도의 업무와 조직이 필요하다. 문제 사병을 특별 관리하기 위해 비전캠프도 운용하고 있지만, 지휘관은 ‘사고예방’에 전념하다보니 정작 해야 할 전투발전에 전념할 수 없다. 현재 1개 대대 당 문제 사병은 15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다가 징집된 자원은 국민이 공짜로 제공한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여 전투와 무관한 군 골프장, 복지시설, 휴양소에 5000명 이상의 병력을 투입하고 있다. 또한 군에서 민간에 아웃소싱해도 문제가 없을 인쇄창, 정비창, 보급창 등 창급 기관에 2~3만 명을 투입하고 있다. 총을 쏠 줄 모르는 군인들이다. 이 외에도 군 종교시설과 학교기관에도 인력을 투입하고 있고, 정훈, 통역과 같은 행정 업무도 상당수의 병력을 요하는 분야다. 게다가 군의 5000여명에 달하는 취사병, 민간 건설회사에 비해 효율성이 지극히 낮은 공병에 수 만 명 등등, 병력 소요는 끝이 없다.
 이런 식으로 징집된 자원을 전투 임무와 무관하게 너절너절한 기관들에 분산시키고 나면 65만 대군이라 하더라도 실제 전투임무에 투입된 인력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적다. 게다가 지난정부에서 수립한 국방개혁 2020을 기준으로 2020년경의 우리 군의 상황을 예측한다면 육군의 경우 전방 전투부대에 투입될 징집 사병은 아무리 많게 잡아도 20만 명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징병제라는 이름하에 대규모의 징집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운영 면에서는 전사를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 조직을 유지하는 그 자체에 매몰된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든다.
 그러면 전투임무의 최일선에 투입된 병력들의 운용 실태는 어떠한가? 가장 많은 병력이 투입되는 한국군 보병대대의 현실을 보면 암담하기 짝이 없다. 무기는 한국전쟁과 월남전에서 사용했던 2세대 급 무기에다가 적을 볼 수 있는 눈이 미흡하여 야간전투능력이 제한되어 있고, 지휘통신과 데이터 공유가 미흡하여 아직도 육성 지휘에 의존하며, 기동수단이 미비하여 아직도 도보이동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보병 부대의 화력이 거의 보강되지 않은 결과 연대 화력이 대대화력보다 뒤떨어지는 어처구니없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고, 지금도 57mm 무반동총과 같은 2차 대전 영화에나 나올 법한 화력을 보면 한국군이 어느 시대의 군인지도 의심스럽다. 지금 서방 국가의 군대는 거의 다 모바일 전투체계로 전환하였는데, 한국군은 아직도 이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건 두 세대가 뒤쳐졌다는 의미다.
 여기에다가 십 여 년 전부터 병영시설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30년 이 넘은 노후시설에서 열악한 주거생활을 하는 곳이 태반이고, 개인 장구류나 의복 역시 형편없는 수준에서 월 10만원으로 버티는 실정이다. 이러한 보병부대 운용 양상은 산업혁명 시기의 근대전쟁에서 보여 진 소모전의 양상을 답습하는 것으로, 전투원의 생명가치가 거의 존중되지 않는 비윤리적 군대 운영이다. (…)
 이런 징병제도는 방치하면 할수록 군 발전도 지체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 막대한 희생을 요구하는 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식으로든 손을 봐야 할 대상일 뿐만 아니라, 근원적인 성찰이 요구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군대가 청년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은 힘들고 어려운 임무수행 때문이 아니라 군대의 내무생활, 즉 인간관계다. 일상생활에서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억압적이고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하다보니 강압적인 질서에 순응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군대가 통제와 규율이 강하다는 특성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국군의 경우는 임무수행 과정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그것을 강요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 정신적 피해는 계산조차 되지 않는다.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한겨레> 2012-08-21,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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