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으로 강남역 인근 추모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남녀 간 성대결마저 고조되고 있다. '여성혐오(여혐) 범죄'라는 규탄과 동시에 '편가르기'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사건 발생 엿새째인 22일 오후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시민 발길로 여전히 붐볐다.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메모지가 입구 주변에 빼곡히 붙었고, 헌화한 꽃이 인도에 넘쳤다. 조용히 찾아와 몰래 눈물 훔치는 추모객도 적잖았다.
차분한 애도 분위기와 달리 한쪽에선 여성과 남성들 간 설전이 벌어졌다. 이번 사건을 '여혐 범죄'로 보고 규탄하는 여성들과 이에 반박하는 남성들이 언성 높여 서로를 공격했다. 한쪽에선 여성을 혐오하는 사회 분위기가 결국 범행을 낳았다 주장했고, 다른 쪽에선 되레 또다른 혐오를 조장하는 주장이라며 맞섰다.
남녀 간 혐오 갈등이 빚어진 곳은 강남역 10번 출구 바로 옆이다. 남성 10여명은 저마다 '이곳은 추모의 장소이지 혐오의 장소가 아닙니다. 혐오는 절대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추모가 남성과 여성의 편가르기로 변질돼 안타깝습니다' 등 여혐범죄를 부정하는 내용의 피켓팅을 들고 섰다.
같은 장소에서 여성 30여명은 남성들과 3~4m 거리를 두고 언성을 높였다. 대다수는 "여혐범죄가 아니면 뭐냐"고 지적했고, 일부는 "추모 분위기를 왜곡하고 있다"고 소리쳤다. 지나가던 시민 수십명이 둘러싸 현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시민들 의견은 엇갈렸다. 대학생 이모씨(22·여)는 "여성이 오길 기다렸다가 저질렀다는 점에서 분명한 여혐 범죄"라며 "혐오 사실을 거부하는 남성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 혐오에서 벗어나 이번 범죄를 바라보자는 건 남성들의 자기 합리화 아니냐"며 "진정 추모하는 마음이 있다면 여혐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직장인 노모씨(33)는 "내가 당사자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안타깝다"면서도 "이걸 계기로 남성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선 안 된다"고 우려했다.
또 "추모는 추모에서 끝나고 원인 규명은 수사하는 경찰에게 맡겨야 한다"며 "지금 사태가 남혐(남성혐오)과 여혐으로 커지는 건 옳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언쟁은 심해졌다. 심지어 몇몇은 서로를 잡아당기는 등 몸싸움을 벌이다 경찰에게 제지 당하기도 했다. 추모 분위기는 사라졌고, 남녀가 상대를 헐뜯는 인신 공격이 주로 오갔다.
상황을 달갑게 보지 않는 시민들도 많았다. 주부 임모씨(50대·여)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된다"며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고,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논의를 모아야지 남녀가 서로 나와 싸우는 건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대학생 강모씨(28)도 "여혐을 비판하는 쪽도, 혐오주의 확산을 반대하는 쪽도 이해는 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남녀 서로 간에 쌓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민할 시점"이라며 "상대방을 향한 질타와 공격은 이번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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