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에서 상경한 농민 백남기씨가 14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동료들이 옮기고 있다.  뉴시스
전남 보성에서 상경한 농민 백남기씨가 14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동료들이 옮기고 있다. 뉴시스
물대포에 쓰러진 농민 백남기씨

보성 가톨릭농민회장 맡고 있어
“그래, 밀도 다 심어불고(심어놓았고) 한가하니… 가자!”

전남 보성에서 농사를 짓던 백남기(68)씨는 “농민대회에 가자”는 동료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보성에서 가톨릭농민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14일 아침 농민 120여명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이날 오후 3시께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리는 서울에 도착한 백씨는 4시간 뒤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졌다. 서울 종로구청 앞 사거리에서 차벽을 치고 막아선 경찰은 이날 저녁 6시57분께 집회 행진을 하다가 차벽 앞으로 다가간 백씨를 향해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쐈다. 백씨는 강한 수압의 물대포를 직접 맞고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분사는 그가 쓰러진 뒤에도 15초 이상 이어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백씨는 현재 외상에 의한 뇌출혈로 의식이 없는 상태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15일 오전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농민 한 분이 안타깝게도 경찰의 살인적인 폭력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 이는 명백하게 경찰의 살인행위”라고 비판했다. 병실을 다녀온 가족과 동료들은 “머리뿐만 아니라 코뼈도 부러진 듯 부풀어 있고, 깨어나도 왼쪽 몸이 마비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수십개의 약물을 단 상태로 백씨가 누워 있다”고 전했다.

주변 사람들은 오랫동안 농민운동에 앞장서온 백씨의 부상을 안타까워했다. 백씨와 30년 넘게 알고 지냈다는 최영추(68)씨는 “학생운동을 하고 가톨릭 수도원 생활을 거쳐 1981년부터 보성에 자리를 잡고 친환경·유기농업을 시작했던 사람이다. 순수한 농사꾼이자 우리 지역 농민운동의 선구자 같은 분”이라고 했다. 백씨는 유기농 쌀과 밀, 콩을 기르고 직접 고추장, 된장을 담가 팔았다. 동료들은 백씨가 이날도 “경제논리에 밀려나는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해 서울로 나왔다”고 전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백씨를 포함해 14일 집회에서 뇌진탕으로 인한 단기 기억상실, 골절, 홍채 출혈 등 중상을 입은 참가자 가운데 우리가 확인한 수만 15명에 이른다”고 15일 밝혔다. 같은 날 경찰은 보도자료를 내고 “시위대의 폭력 행사로 경찰관 113명이 다치고, 경찰버스 50대가 부서지는 등 상당한 경찰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