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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약 시대, 먹는 대신 이식한다

이름 장선재 등록일 15.10.27 조회수 1070
약을 먹지 않고 몸속에 설치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올해 초 비만치료에 효과적인 전자약(electroceutical)의 한정적 시장 판매를 승인했다. 전자약은 배터리와 전기신호를 발생시키는 전자기기로 구성돼 있다.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전자약은 90분 정도의 시술을 거쳐 위장을 관장하는 신경다발에 이식된다. 위장은 신경계를 통해 식욕을 자극하는 미세한 전기신호를 뇌로 보내는데 전자약이 이런 신호를 차단해 허기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제조사인 엔테로메딕스는 특허 등을 이유로 구체적인 작동 방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162명의 비만환자를 대상으로 1년 동안 진행된 임상시험에서 평균 24.4%의 체중 감량 효과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FDA는 까다로운 조건을 들이대며 초고도 비만환자로 판매를 한정했지만 전자약 승인은 이번이 처음이라 제약업계에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화학약품이 전자부품으로 대체되는 등 약의 진화가 진행 중이다. 세계적인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2013년 전자약 핵심 부품 개발에 상금 100만 달러를 내걸었다. 상금은 신체에 삽입 가능하고 몸속 장기(臟器)를 자극하는 전기신호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발명한 이들이 차지하게 된다. GSK는 60일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약은 일종의 화학적 결합물로 체내에 흡수된 다음 각종 대사를 일으키면서 병을 치료한다.

 고혈압치료제를 예로 들어 보자. 고혈압치료제는 다양한 약품이 사용되는데 그중 하나가 교감신경(위급한 상황일 때 대처하는 역할을 맡는 신경계)을 차단해 심장박동 수를 줄이는 약물이다. 전자약은 이를 대체할 수 있다. 비만치료에 활용된 것처럼 심장박동을 증가시키는 교감신경을 차단하는 전기신호를 꾸준히 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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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약은 새로운 치료제 개발에도 응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다. 아직까지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류머티즘 관절염은 자가면역반응으로 발생하는 질병이다. 몸속 면역체계는 외부에서 들어온 바이러스나 세균 등을 공격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아군(我軍)’을 공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바로 자가면역반응이다. 류머티즘 관절염은 면역세포가 관절을 공격해 염증을 일으키면서 발생한다. 증상이 심하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미국의 케빈 트레이시 박사는 2012년 전자약으로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를 치료했다. 그는 환자의 몸속에 전자약을 삽입해 비장(脾臟)을 관장하는 신경계에 전기신호를 줬다. 180g에 불과한 비장은 면역 기능을 담당하는데 이를 통해 T세포 등 면역체계를 관장하는 세포 발생을 줄였다. 트레이시 박사는 “환자는 8주 만에 탁구까지 가능할 정도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전기신호로 자가면역반응을 조절했고 이를 통해 류머티즘 관절염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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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학과 의학의 결합은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다. 의공학을 전공한 경희사이버대 정지훈(모바일융합학과) 교수는 칼럼에서 “완전히 다른 학문 분야라고 생각했던 전자공학과 의학이 시간이 갈수록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전 세계에서 삽입형 전자약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기재홍(의공학부) 교수는 “공학기술을 활용하면 알려진 문제점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했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전자약은 부작용 최소화라는 장점이 있다. 화학약품으로 만들어진 기존 약품은 혈관을 타고 돌면서 작동한다. 이런 이유로 멀쩡한 세포에서 약품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독한 항암제를 투여할 경우 머리털이나 손톱이 빠지는 게 약품 부작용 사례다. 널리 쓰이는 아스피린은 빈속에 자주 복용할 경우 위궤양을 일으킬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전기신호를 사용하는 전자약은 흡수 과정이 없어 화학적 부작용 발생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물론 전자약도 단점은 있다. 우선 신경계에 장비를 이식하는 과정에서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 전자기기가 오작동할 경우 신경계 이상을 초래할 위험도 있다. 비만치료 전자약을 만든 엔테로메딕스는 “감염·설사·우울증을 비롯해 장기 손상이 발생할 수 있고 급격한 신체 움직임으로 인해 전자약을 재설치해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전 세계 제약회사는 전자약 개발에 적극적이다. 천식과 같은 호흡기 질환이나 치매·간질 등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분야에 활용할 수 있어서다. 면역반응도 촉진할 수 있어 새로운 항암제 개발도 가능하다. 활발한 연구가 진행 중인 나노(nano·머리카락 두께의 5만 분의 1) 의약품과 전자약을 병행해 사용하면 원하는 세포에서만 약물이 작동하는 ‘표적’ 효과가 높아질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권익찬 의공학연구소장은 “전자약과 나노 의약품은 전달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라며 “부작용이 없는 약품을 만들기 위한 연구는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한국은 아직 전자약의 불모지에 가깝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접수된 전자약 승인 요청은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없다. 한국 GSK 홍유석 사장은 “10년 내에 전자약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시대가 온다. 현재 주요 제약회사들은 생명공학과 전자공학을 접목한 연구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전자약(electroceutical)

전자(electronic)와 제약(pharmaceutical)의 합성어다. 세계적인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2013년 처음 사용했다. 전자약은 화학물질로 만들어진 일반적인 의약품과 달리 전기신호를 발생시키는 전자기기를 인체에 이식해 약과 같은 효과를 거둔다. 신경계를 자극해 면역 기능을 조절하는 등 다양한 질병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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