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파기 명분 ‘병사 납치’ 알고보니 이스라엘의 오판
이스라엘이 자국 병사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납치됐다고 주장하며
잠정휴전 합의를 깨고 가자지구에 폭격을 퍼부었으나 이 병사는 교전 중에 숨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휴전 파기 뒤 사흘간 집중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에서는 300명 이상이 숨지고 수천명이 다쳤는데, 사상자 대부분은 민간인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전력의 상당 부분을 파괴했다고 보고
가자지구 일부에서 지상군을 철수시키며 ‘일방적 휴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종군 수석 랍비는 3일 하마스에 납치된 것으로
추정됐던 병사 하다르 골딘이 전투 중 숨졌다는 과학적 증거를 얻었다고 밝혔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이스라엘군과 하마스는 지난 1일
오전 8시를 기점으로 72시간의 인도주의적 휴전을 하기로 합의했으나, 휴전을 전후해 가자지구 라파에서 양쪽의 교전이 벌어지면서 골딘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이 병사를 납치했다고 주장하며, 휴전 두시간 만에 라파 등지에 집중 폭격을 퍼붓는 공격을 재개했다.
하마스는 병사 납치를 부인하고 교전 중 이스라엘의 공중 폭격에 이 병사 등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미국은 휴전 파기 책임 논란과
관련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하마스가 직접 병사 납치에 나섰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하마스가 납치에
책임이 있다”며 병사 석방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런 납치 주장은 섣부른 오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숨진 병사의 사망
정황이나 주검 소재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납치가 아닌 교전 상황에서 숨졌다는 점은 명백히 했다. <비비시>(BBC)는
“디엔에이 증거를 검증한 뒤 지금의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전했다. <알자지라>는 “하마스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폭격에 의해
병사가 숨졌다는 추측이 나온다”고 전했다. 결국 이런 오판으로 이스라엘이 공격을 재개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1760명을 넘어 치솟았고
부상자도 9000여명에 이르렀다. 한편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대한 양보가 필요한 휴전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전투 중단을 선언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2009년에도 이런 방식으로 교전을 끝낸 적이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일 방송연설에서 “군은 안보 필요에 따라 지속적인 전투를 준비할 것”이라면서도 병력 재배치를 시사했고, 이스라엘 방송들은 군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북부 주민에게 안전하니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통보를 했다고 전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의 국경 봉쇄
상태가 해결되지 않는 휴전은 “조용한 죽음”으로 판단하고, 봉쇄 해제 없는 휴전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스라엘은 3일에도 가자 일부
지역에 대한 공습을 이어가 사상자는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다. 정세라 기자, <한겨레> 2014-08-03, 기사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이기는 했지만, 이처럼 전쟁이 만연한 것은
처음이다. 지금 중동은 온통 전쟁터다. 중동 분쟁의 원조 팔레스타인 땅에서 시리아, 이라크까지 유혈이 낭자하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내전은
이미 연동화돼, 하나의 전장이 되었다. 여기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가열되면서 본격적인 지상전이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7월17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지상군 투입을 감행했다. 가자지구를 당분간 완전히 점령해서 평정하려는 의중이 깔려 있다. (…)
이라크
침공으로 시작된 ‘정권의 공백’ 중동에 광역전쟁의 먹구름을 끼게 하는 요인은 많다. 무엇보다 역내의 기존 국가와 정부가 몰락하거나 약화된
것이 배경이다. 이 공백을 각종 종파들이 메우고 있다. 종교·민족·부족·이념 등에 기반한 각종종파, 정치학 용어로 말하면 ‘비국가
인자’(non-state actor)들이 각개약진 혹은 합종연횡하며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모든 시작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중동에 잠재해 있던 모든 분쟁의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먼저 중동에서 세력 균형의 한 축이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몰락했다. 이를 대체할 체제는 들어서지 못했다. 이라크 내외에서 생긴 거대한 세력 공백은 각종 종파 분쟁으로
채워졌다. 이라크 내에서의 공백은 먼저 이슬람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쟁이 채웠다. 형식은 종교 종파 분쟁이나, 내용은 입장이 바뀐
주류와 비주류 주민 사이의 분쟁이었다. 이라크에서 소수이나 주류를 차지했던 수니파 주민들이 비주류로 밀려나자 미군에 저항하는 내란을 주도했다.
후세인 체제에 복무했던 수니파 군인과 경찰 등 보안세력, 바트당 관료 등이 내란의 불을 댕겼다. 수니파 주민들도 부족 중심으로 자기 지역에서
내란에 가담했다. 여기에 알카에다 등 국제 이슬람주의 세력인 지하디스트 무장세력들이 본격적으로 끼어들었다. 이들은 내란을 수니파 대
시아파의 본격적인 내전으로 비화시켰다. 9·11 테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멸 직전까지 갔던 알카에다는 물론 다른 국제 이슬람주의 세력도이라크에서
회생의 기회를 찾았다. 시아파 역시 궐기했다. 시아파 이슬람주의에 영향받은 과격한 사드르군 등 시아파 민병대도 미군에 맞서 사드르시티
등에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
중동 7대 분쟁 응축된 시리아 내전 후세인 체제의 몰락으로 이런 힘의 균형이 붕괴되고
세력 공백이 생겼다. 이란-시리아-레바논의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시아파 연대는 이라크에서 시아파와 시아파 정부의 지원으로 세력 확장에 나섰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보수왕정들은 이에 위협을 느꼈다. 팔레스타인에서의 지상전은 분쟁을 주변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팔레스타인
분쟁은 과거처럼 레바논으로 불똥이 튈 개연성이 높다. 이 경우 중동은 팔레스타인-레바논-시리아-이라크로 이어지는 거대한 광역전쟁의 불길 속에
휩싸일 수 있다 . 2010년 말에 시작된 중동의 민주화운동인 ‘아랍의 봄’의 영향으로 시리아에서도 아사드의 독재체제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 사우디 등 수니파 보수왕정들은 시아파 세력 견제를 위해 개입했다. 시아파 연대의 중간축인 아사드 정권을 타도하는 데
적극나섰다.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도 곧 개입했다. 애초 아사드의 권위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민주화시위로 시작된 시리아 사태는 곧 중동의
모든 분쟁이 응축된 내전으로 발화됐다. 시리아 내전은 중동의 7대 분쟁이 고스란히 응축된 전쟁이 됐다. 수니파 대 시아파라는 이슬람
종파분쟁, 권위주의 체제 대 시민사회라는 민주화투쟁, 세속주의 대이슬람주의의 분쟁, 서방 대 반서방의 분쟁, 다수민족 대소수민족의 민족분쟁,
이슬람 대 기독교의 종교분쟁, 중동 역내 국가 간의 분쟁이다. 크게 아사드 진영 대 반아사드 진영으로 나뉘어 이 7대 분쟁이
녹아들었다. 아사드 진영은 시아파, 권위주의, 세속주의, 러시아와 중국 등 반서방, 소수민족, 이슬람, 이란-시리아-레바논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이란 진영을 대표한다. 반아사드 진영은 수니파, 시민사회, 이슬람주의, 미국 등 서방, 다수민족, 기독교, 사우디로 대표되는 수니파
보수왕정 축이 얽혀 있다. 아사드 진영은 아사드 정부를 중심으로 비교적 단일 대오를 유지하는 반면, 반아사드 진영은 각개약진하며 혼란스런
이전투구까지 벌이고 있다. 아사드 독재체제에 반대하는 시민사회, 수니파 다수 주민, 비이슬람 소수 종교 주민, 친서방 반군, 알카에다 등 반서방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이 얽혀들었다. (…) 연동화된 시리아-이라크 내전은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 사태까지 치달은 지금의
팔레스타인 분쟁도 배태했다. 가자지구를 장악한 팔레스타인의 무장정파 하마스는 수니파 계열의 이슬람주의 세력이지만, 그동안 시아파인 이란과
헤즈볼라의 지원을 가장 많이 받아왔다.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가장 적대적인 이란과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 가장 강경하게 투쟁하는 하마스를 종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으로 지원해왔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이 중동 지역의 전면적인 종파전쟁으로 비화하자, 하마스는 반아사드 진영에
가담했다. 이란과 헤즈볼라의 반대편 진영에 선 것이다. 이란은 하마스에 제공하던 매달 2천만달러의 지원을 끊어 버렸다. 이 돈은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정부를 운영하는 데 쓰던 사실상의 모든 자금이었다.
가자지구를 점령하기는 쉽겠지만… 이에 더해 하마스는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이 군부쿠데타로 실각하면서 더욱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새로 들어선 이집트의
군사정권은 가자지구에서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남쪽 국경의 터널 등을 완전히 폐쇄했다. 이미 이스라엘의 철저한 봉쇄를 받고 있는 가자지구의
하마스는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팔레스타인 내의 경쟁 정파인 서안지구에 있는 파타
계열의 마무드 아바스 수반이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단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이스라엘이 이를 인정하지 않자, 이스라엘과의 대결 자세를
더욱 강화했다. 이스라엘 10대 3명의 납치와 살해, 이에 대한 보복인 팔레스타인 소년의 화형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불렀다. 이에 하마스는 전통적인 대응인 로켓포 발사로 응수했다. 국제사회가 무조건적인 휴전을 주선하고 이스라엘도 이에 응했으나
하마스는 응하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휴전은 하마스에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해제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봉쇄가 풀리지 않는 한 달라질 게 없고, 오히려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고사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본다. 이스라엘 군 관계자는 “가자지구를
점령하는 것은 간단하다”면서도 “안정화에는 며칠이나 몇 주가 아니라 몇 달이 걸릴지 알수 없다”고 말했다. 이스라엘도 가자지구에 다시 들어간
이상 하마스의 무장력을 발본색원하려 할 것이다. (…)
미국이 수렁에 빠진 것처럼 문제는 이스라엘이 상대할 대상이 실체가
분명한 국가나 정부군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종파라는 점이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사담 후세인 정부를 타도했으나, 그 뒤 실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종파의 무장세력 수렁에 빠져버린 것처럼 말이다. 가자지구로의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중동 광역전쟁으로 향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정의길 <한겨레21> 국제부 선임기자,
2014-07-28,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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