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양현초등학교 4학년 4반입니다
논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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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윤시연 | 등록일 | 23.05.26 | 조회수 | 8 |
별명/열 가락지 논개
특기/손깍지 세게 끼기
<논개 이야기> 논개는 분단장을 곱게 하고 촉석루 아래 가파른 바위 꼭대기에 서 있었으니 아래는 만길 낭떠러지였다. 사람의 혼이라도 삼킬 듯 파도가 넘실거렸다. 왜병들은 멀리서 바라보며 침을 삼켰지만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왜장 하나가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며 곧장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가? 논개는 요염한 웃음을 흘리면서 왜장을 맞았다. 왜장의 손이 그녀의 연약한 몸을 잡자 논개는 왜장을 힘껏 끌어안는가 싶더니, 마침내 몸을 만길 낭떠러지 아래로 던졌다. 두 사람은 모두 익사했다.
논개는 1574년 음력 9월 3일 밤에 태어났다고 한다. 논개라는 이름 자체가 본명이 아니라 일본군이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붙인 별명이라는 설도 있다. 의기 주씨, 의암 주논개 라고도 불린다.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로 투신한 지역인 진주시의 대표 캐릭터로 사용된다. 논개가 태어난 곳인 장수군 또한 논개를 캐릭터로 사용해서 이 문제를 둘러싸고 분쟁까지 벌어져 국사편찬위원회에 논개가 어디 사람이냐는 민원까지 제기된 바 있다. 논개양첩설의 요지는 논개는 원래 양첩인데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장을 죽이기 위해서 '스스로 기적(妓籍)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도 KBS에서 단막극으로 1980년대 방영했으며 이규태도 이 설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2] 최경회와 논개를 엮는 것은 1987년 최경회의 집안인 해주 최씨 가문에서 발간한 <의일휴당실기(日休堂實記)>에서 최경회의 부인이 왜장을 유인해서 자살했다는 식으로 묘사했는데 여기서는 기생 출신은커녕, 천첩이라는 묘사마저 없다. 현재 최경회와 같이 무덤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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