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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와 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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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수연 | 등록일 | 23.04.06 | 조회수 | 7 |
화석상으로 제일 오래된 것은 동양에서는 중국 윈난성 북서부의 허칭 분지(좌표: 26°31′N, 100°09′E) 플라이오세 초기 시절 지층에서 발견된 것이며 영어 논문
서양에서는 폴란드에서 중신세 지층에서 발견현대 딸기의 시초는 17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의 식물학자 '아메데 프랑수아 프레지에(Amedee-Francois Frezier)'가 칠레의 야생 딸기를 조사하기 시작했던 것이 그 시초로, 당시 프레지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쉬지 않고 칠레의 해안가를 뒤지며 야생 딸기 종자를 채집하며 기록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하나 있었으니, 프레지에는 사실 교수나 학자가 아니라 프랑스 육군 정보국 소속 현역 중령, 즉 스파이였다. 프리지에의 진짜 목적은 칠레를 점거 중이던 스페인군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딸기를 조사하는 척 하면서 사실 해안가에 설치된 요새와 주둔 병력, 대포의 수와 병참공급 현황 같은 군사정보는 물론이고, 스페인 총독의 근황과 원주민의 움직임까지 정치, 경제, 사회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즉 딸기 조사는 위장으로, 프레지에가 수집한 기록물들은 겉으로는 딸기 관련 정보만 담고 있었으나 비밀리에 스파이 활동으로 수집한 정보들도 군사암호로 같이 수록되어 있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열심히 딸기를 조사한 건 실은 정탐 중이었던 것.
참고로 딸기라는 단어 자체가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조선시대 중엽에 간행된 훈몽자회다. 물론 이 때 딸기라고 가리킨 대상은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산딸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딸기가 지금의 모습으로 재배된 것은 신대륙의 발견과 함께 북미의 버지니아 종과 남미의 칠레 종이 유럽으로 건너와 교배되면서부터다.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딸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품종이 개발되었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딸기 지역별 재배 면적은 충남이 35%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경남이 34%, 전남 12%, 전북 9% 순이며, 시·군별로는 논산, 진주, 밀양, 담양이 전체 딸기재배 면적의 약 35% 정도를 점유하고 있는 딸기 주산지이다.
노지 딸기 수확시기. 5월 중순 ~ 6월초 월동 중인 딸기 . 하우스 딸기와 달리 노지 딸기는 5월 중순에서 말 정도가 제철입니다. 아래 사진처럼 딸기가 다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월동 중이며
감귤나무 열매로 모노지 딸기 수확시기. 5월 중순 ~ 6월초 월동 중인 딸기 . 하우스 딸기와 달리 양은 둥글납작하고 빛깔은 주황 혹은 붉은색이다. 수분이 풍부하고 맛이 시큼하면서도 달며 껍질을 벗기기 편리한 것과 같은 여러 장점들을 지니고 있어서 인류에게 오랜 기간 사랑 받고 있다. 사과처럼 겨울 제철 과일이다. 같이 주스로 갈아 먹어도 맛있다. 귤 말고도 천혜향, 한라봉, 오렌지, 레드향 등 다른 종도 넣어도 된다. 귤의 과육을 귤육, 귤의 껍질을 귤피(橘皮, flavedo)라 하는데, 껍질 안쪽의 하얀 부분을 귤백(橘白, albedo), 귤피에서 귤백을 제거한 것은 귤홍(橘紅)이라 한다. 이때 귤육 쪽에 붙어있는 귤백은 귤의 근락(筋絡)이라는 뜻의 귤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이외에 잘 익은 귤피를 말린 것은 진피(陳皮)라 하고 덜 익은 파란 귤피는 청피(靑皮)라 한다. 귤백, 진피, 청피 등은 주로 약재로 쓰거나 차를 달여 섭취한다.
화석상의 기록으로는 윈난성 린창시에 있는 중신세 후기인 800만년경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귤을 어감 때문에 순우리말인 줄 아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데, 한자어로 '귤 귤(橘)'이다. 이 한자가 들어간 사자성어로는 귤화위지(橘化爲枳), 남귤북지(南橘北枳), 회귤유친(懷橘遺親) 등이 있다. 감귤(柑橘) 또는 밀감(蜜柑)이라고도 한다. 과거에는 감자(柑子)[3]라고 불렸고,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일본어 단어로 '미캉' 내지 '미깡'(みかん)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제주도에서는 이게 거의 사투리급으로 쓰인다.
감귤류의 과일을 통틀어서 Citrus라고 하며, 감귤을 영어로는 만다린(mandarin)이라 한다. 현재 한국에서 귤이라 불리는 것은 온주밀감, 영어로는 Satsuma라는 품종명으로 불린다. 영어 사용권에서 과연 만다린 mandarin, 탄제린 tangerine, 클레멘타인 clementine, 온주밀감 satsuma을 일일이 구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는 의구심이 들 만도 하지만 마트에서는 모두 구분하여 판매할 정도로 잘 알려졌다.[4] 온주밀감(溫州蜜柑)이란 이름은 중국 저장성 원저우(溫州)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감귤을 최초로 재배한 것은 중국인들이다. 기원전 4세기경 중국에서 발간된 <화식전 (貨殖傳)>에는 '촉한강 땅에 귤 1천 그루를 심은 농가는 천호의 제후왕과 같다'는 기록이 전한다. 당시부터 귤은 주인에게 부를 안겨다주는 효자식물이었음을 알려준다
우리나라에서는 귤을 삼국시대 이전부터 재배해왔으나 한반도 본토에서 기르기 힘들어, 제주도 정도를 제외하면 왕족이나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탐라지에 따르면 백제 문주왕 2년(476) 탐라국에서 지역 특산물로 귤을 바쳤다고 하며, 고려사에 고려 문종 6년(1052)에 탐라국에서 세금으로 받아오던 귤의 양을 늘린다는 부분이 있어 이때부터 귤을 진상했음을 알 수 있다.
산남지역의 생활상이 보편적으로 크게 개선된 것은 귤이 상품작물로써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이후였다. 남원읍 지역은 그 중에도 최상품의 감귤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예전부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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