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5)
짧으면 삼 초, 길어봐야 삼 년.
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그 시간을
훌륭히 마무리 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곳은,
그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줄 3학년 2반 입니다.
그들의 노력에 결실은 찾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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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최주영 | 등록일 | 21.03.27 | 조회수 | 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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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란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말한다.』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 제 2조’에 나와 있는 장애인의 정의이다. 이것에 따르자면, 장애인은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물론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 제약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장애인들 역시 눈이 나쁘다거나, 키가 작다거나, 공부를 못한다는 등의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 그리고 이 제약들 역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다만, 장애인들의 제약은 비장애인들의 제약보다 좀 더 눈에 띄고, 좀 더 크게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도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좋지 못한 사회에서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또한 클 것이다. 물론 키가 작거나 공부를 못하는 것도 사람들에게 놀림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장애인’이라는 것만으로 불편해하거나,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키가 작거나 공부를 못한다고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지는 않지 않은가. 이러한 환경 때문에 장애인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능력과 성격 등에 상관없이 비장애인보다 몇 걸음 뒤에서 시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와 환경 속에서도 크게 성공하여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장애인들이 있다. 청각 장애를 가지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명곡을 써낸 음악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 어떻게 살아가나 싶을 정도로 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호주의 목사이자 강연가 닉 부이치치, 루게릭병에 걸려 뇌병변장애와 지체 장애를 갖게 됐으나 물리학의 아버지라 불릴 만한 업적을 세운 스티븐 호킹, 보지도, 듣지도 못하지만, 사회운동가로서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준 헬렌 켈러 등, 장애라는 큰 제약이 있음에도 비장애인 만큼의, 혹은 비장애인 이상의 업적을 이룬 위인들이 많다. 이들이 이러한 업적들을 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들이 장애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가? 그들의 장애가 업적을 이루는 데에 제약이 될 만한 장애가 아니었기 때문인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들도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좌절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심히 고뇌하며, 어쩌면 심각한 스트레스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며 위험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그러한 업적을 세우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단순히 노력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은 본인들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찾아냈으며, 그것을 이룰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노력을 해냈다. 또한, 그들의 주변에는 그들을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그들이 했던 노력은 어쭙잖은 각오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들을 뒷받침해주는 사람들은 그들이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한다 해도 반드시 성공할 거란 보장도 없다. 아니, 오히려 성공할 가능성이 더 작을 것이다. 세상의 15%를 차지하고 있다는 10억 명의 장애인 중에서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장애인이 몇 명이나 되는가. 크게 성공하여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는 것만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아니고 비장애인들에게도 성공이라는 것이 쉽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으로서 세상에 자그마한 발자국이라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꿈꾸는 일이고, 전술했다시피 장애인은 환경적으로 몇 걸음 뒤에서 출발하게 된다. 그런 만큼 장애를 가지고 있는 몸으로 비장애인 이상의 업적을 세운 이들에게 존경의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혹자는 그들이 업적을 세운 것은 ‘특별한 사람’이기에 가능했고, 뛰어난 재능도 없고 주변에 받쳐줄 만한 사람도 없는 장애인은 업적을 세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고 할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들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에 반박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뛰어난 재능도 없고 주변에 받쳐줄 사람이 없는 장애인’ 또한 ‘특별한 사람’이다. 베토벤이나 스티븐 호킹 등의 경우는 재능의 차이가 관여하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헬렌 켈러의 경우를 보라. 평범한 가정집에서 태어나 19개월 만에 뇌척수염으로 시력과 청력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소녀가 자신과 같은 장애인이나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회운동가가 될 때까지 그녀의 특별히 뛰어난 재능이 빛났던 적이 있는가? 닉 부이치치의 경우 또한, 날 때부터 왼쪽 발 하나와 머리와 몸뚱이로만 먹고 움직이고 살아가야 했던 그가 목사가 되고, 강연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데까지, 그에게서 어떠한 천재적 재능을 발견할 수 있던가? 그들은 특별한 재능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런 재능 없이도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났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들은 그들을 받쳐줄 사람이 있지 않았는가? 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물론, 헬렌 켈러에겐 인생을 구원해준 스승인 앤 설리번이 있었고, 닉 부이치치 또한 그를 포기하지 않고 그가 살아가는 동안 도와주고 격려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장애인 또한 있을 것이다. 그럼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대로 포기하고 적당히 살 만큼만 살아야 하는 걸까? 그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그들의 ‘앤 설리번’이 되어주고, 그들의 도우미가 되어주면 된다. 인간이 모여서 사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서로 도우며 살기 위해 모여서 사는 것 아니었던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오르막길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때 그 등 뒤를 밀어주고, 시각장애인이나 청각 장애인이 다가오는 위험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때 알려주고, 그들이 세상의 고난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격려해주는 등.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고 함께 미래로 걸어가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그렇다고 장애인들이 우리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제 불능의 인간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걸어가는 동안 그들을 방해하는 ‘제약’들을 우리가 함께 넘어가도록 도와주자는 것이다. 세상이 자신에게 맞춰주지 않아 자신이 세상에 맞춰 살아가고, 세상이 계속해서 뒤로 밀어내려 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삶을 이루어 나가려는 그들에게, 그들보다 조금은 제약이 적은 우리가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다면 함께 이 세상을 좀 더 밝고 화합 넘치는 모습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가끔 장애인들을 보면서 ‘나는 눈도 귀도 멀쩡하고, 팔다리도 정신도 멀쩡하니 참으로 행운아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이 장애인들을 ‘불행아’로 치부해버리는 생각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그들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제약'이라는 것이 좀 더 눈에 띄고 커 보일 뿐이지, 그들도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삶을 즐기고, 삶 속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그 삶의 주인공이 결정하는 것이다.
큰 벽에 부딪혔을 때가 그 벽을 뛰어넘을 때다. 그리고 그 벽을 오르는데 그 위에서 끌어 올려주는 존재가 있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존재가 비장애인일지, 장애인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비장애인들 또한 삶 속에서 장애인들 못지않게 커다란 ‘벽’을 대면한다. 그리고 그때에,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도와준 것처럼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을 도와줄 수 있다. 우리는 서로 돕고 돕는 존재이지, 한쪽만 도움받는 존재가 아니다. 그 점을 명심하면서, 장애인이 차별의 시선을 받지 않고 비장애인과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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