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전에 인접해 있던 향교를 서원너머로 옮기고 화산서원(華山書院)을 설립, 요즘 말로 학교군(學校群)을 형성한 현재의 예수병원 주위는 선비들로 항상 들끓었다. 이렇듯 많은 선비들의 통행로가 된 예수병원 길은 당시 노송이 우거진 오솔길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오르내리는 선비들이 글을 읊는 소리는 바위와 나무에 부딪쳐 골짜기는 온통 글읽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이런 연유로 학문을 닦는 교실을 강당이라고 했으며, 강당을 향해 오르내리는 고개라고 하여 강당재라고 했다. 서원너머의 화산서원비(華山書院碑)만이 홀로 당시의 애환을 지켜보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