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다고 합니다.
아직은 여리고 어린 꽃들이 5학년 4반에 모였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꽃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아름다움을 지키며 성장하기 위해서는 「함께」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이해」할 줄 알아야 자신의 아름다움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 인정하고 이해함을 바탕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5학년 4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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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강민율 | 등록일 | 20.11.30 | 조회수 | 60 | |||||||||
조선 제20대 왕인 숙종과 화경숙빈 최 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699년(숙종 25년) 6세 때 연잉군에 봉해지고, 1721년에 왕세제로 책봉되었다. 그러다 그의 이복형인 경종이 재위 4년 만에 후사 없이 승하하자, 1724년 조선의 21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영조는 52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탕평책 등으로 정치적 안정을 구현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국정 운영을 위한 제도개편이나 문물의 정비, 민생대책 등에서 많은 업적을 이뤄낸 왕이다. 영조는 노론과 소론 사이의 치열한 정쟁 속에서 즉위하였기 때문에, 당쟁의 폐단을 지적하고 탕평의 필요를 역설하는 교서(敎書)를 내려 탕평정책의 의지를 밝혔다. 1749년(영조25) 왕세자(훗날 사도세자)를 둘러싸고 외척 사이의 갈등이 일어나고, 이러한 갈등 속에서 1762년 임오참변(壬午禍變,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만든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후에도 왕세손(후일의 정조)을 보호하는 세력과 이를 모해하려는 세력 간의 암투가 벌어지면서 갈등이 심화되지만, 영조는 승하하기 몇 달 전 홍인한 등의 방해를 물리치고 왕세손의 대리청정을 성사시킴으로써 세손의 즉위를 순조롭게 하였다. 1750년에는 균역법을 시행하여 오랫동안 계속된 양역 변통의 논의를 종결지었다. 이는 단순한 감필이 아니라 모두 1필역으로 부담을 균일하게 함으로써 양역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양역민의 부담을 크게 줄인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조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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