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사이배슬론에 나가서 금메달을 딴 로봇이거든요.” 승환이 팔을 들어 로봇을 만지며 말했다.
‘사이보그 올림픽’으로 불리는 사이배슬론은 신체장애인들이 첨단 보조 장비를 이용해 누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지 겨루는 국제대회다. 4년마다 수십 개 국가 참가팀들이 스위스에 모여 진검승부를 벌인다.
2020년 대회 당시 카이스트 연구팀이 참여한 ‘엔젤로보틱스’팀은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이 보행 로봇을 입고 겨루는 경주에 출전했다. 장애물을 피하고, 앉았다가 일어나고, 경사로와 계단을 걷는 등의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경기였다. 첫 출전인 2016년엔 동메달, 2020년엔 금메달을 따며 전 세계의 이목을 단번에 끌어모았다.
승환은 내년 10월 스위스에서 열리는 사이배슬론 2024에 출전해 자신이 직접 입을 새 로봇을 연구 중이다. 그는 배꼽 아래로는 움직이는 것은 물론, 아무 외부감각을 느낄 수 없는 ‘하지 완전마비’ 장애를 가졌다.
비장애인에게 ‘걷기’는 본능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행위지만 하반신 마비 장애인들에겐 한 걸음을 떼는 것조차 어렵다. 이들이 걸을 수 있도록 로봇은 여러 기능을 수행한다. 지난 두 번의 사이배슬론에 모두 출전했던 김병욱 선수가 2020년 대회 때 사용했던 로봇을 착용하고 걷기 시범을 보였다.
물론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로봇만 입으면 비장애인과 같은 일상을 즐길 정도의 상용화가 단숨에 이뤄지기는 어렵다. 상용화는 기술 발전뿐 아니라 사회 인프라와 법률, 문화까지 복잡하게 얽힌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이동성이 좋은 휠체어를 넘어서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승환이 보행 로봇 개발에 매달리는 이유는 다시 걸어봤기 때문이다. 로봇을 처음 탄 순간 ‘걸었던 삶’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가족과 산책하고, 사람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하고, 맛집에도 문턱 걱정 없이 드나들던 예전의 일상이 눈에 선했다. 승환은 “어떻게든 서서 걸을 수 있다는 걸 느껴보니, 더 포기할 수가 없어졌다”고 그는 말했다.
하반신 장애인에게 걸음은 그 자체로 도전이자 스포츠다. 휠체어가 몸의 일부라면, 로봇은 극한에 도전하려 서킷을 달리는 스포츠카다. 승환이 덧붙였다. “자동차도 100년 전에는 첨단 기술의 집약체였잖아요. ‘걷는 로봇’이 지금은 스포츠카처럼 소수를 위한 고도의 기술이지만 10년 뒤에는 달라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