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7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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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후 기자의 오늘의 이슈 6월

이름 유건후 등록일 23.07.30 조회수 21

노래 만들던 의대생, 히트 작곡가로 성장하다

의대생이라고 하면 공부에만 몰두해 특별한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조민형(의학과 06학번) 교우에게 취미였던 작곡은 이제 직업이 됐다. 남을 돕길 좋아해 의사가 되길 꿈꿨던 소년은 이제 노래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하고 있다. Dr.JO로서 아이유, 유빈, 트와이스 등 유명 가수들 노래의 작곡과 작사를 맡으며 실력도 인정받았다.

  흥 많던 아이, 작곡에 빠지다

  “어머니 말로는 제가 노래 틀고 다니는 카세트 장수를 따라가기도 했대요.” 조민형 작곡가는 유치원 때부터 노래 부르고 춤추는 ‘모태 음악인’의 면모를 보였다. 그의 집에는 늘 음악이 흘러나왔다. “누나가 케이팝을 좋아해서 자연스레 케이팝을 많이 들었어요. 지금 제가 작곡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죠.” 보아, g.o.d, 비 등 당대 인기 가수의 무대를 비디오 테이프에 녹화하던 그에게 음악 수업 시간은 힘든 공부 생활 중 유일한 힐링 순간이었다. 노래를 진정으로 즐긴 경험은 작곡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중학교 2학년 때 한 친구가 작곡을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친구 말에 저도 해보겠다고 나섰죠.” 시작은 단출했다. 누나가 쓰던 컴퓨터에 간단한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작곡을 시작했다. “친구와 작업물을 공유하며 많이 놀았어요. 친구는 작곡에 대한 흥미가 식었지만, 저는 꾸준히 관심을 가졌죠.” 제작한 음악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작업물을 보며 작곡 실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느끼기도 했다. “화려한 사이트는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의 작업물에 댓글도 달며 작곡에 점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작곡가와 의대생의 경계에서

  음악으로 치유 받으며 고된 재수 생활을 마친 그는 2006년 본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돈을 잘 버는 직업을 떠나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도 부모님도 의사를 꿈꿨죠. 기적처럼 고려대 의대에 오게 됐어요.” 힘들게 입학했지만 집단을 중시하는 ‘고대문화’에는 쉬이 적응하지 못했다. 워낙 내향적인 성격 탓에 입실렌티, 고연전 등의 행사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음악이 좋아서 들어갔던 학과 내 음악 동아리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작곡 동아리인 줄 알고 들어갔던 학과 동아리가 민중가요를 부르는 운동권 동아리였어요. 제 예상과는 너무 달랐죠. 이후로 공부를 제외한 학교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빈 시간, 홀로 작곡에 몰두하며 그의 실력은 크게 발전했다. “예과 때 낙원상가에서 좋지 않은 장비를 사 모았어요. 집에 장비를 세팅하고 곡을 만든 다음 방시혁 PD가 운영하던 인터넷 카페에 올렸죠. 거기에서 피드백을 많이 받아 작곡을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 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방시혁 PD가 그에게 혼성 그룹 ‘8eight(에이트)’의 노래를 맡긴 것이다. “본과에 들어간 직후 제가 만든 에이트의 ‘또 한걸음’이라는 노래가 음원 사이트에서 발매됐어요. 해부학실에서 그 소식을 듣고는 너무 행복했죠.” 작곡가로 입봉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작품의 질도 중요하지만 노래가 선택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예과 시절부터 꾸준히 작곡을 연마한 덕에 운 좋게 빨리 데뷔했다.

  방시혁 PD는 의대생과 작곡가 모두 꿈꾸는 그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방시혁 PD는 실습과 공부로 바쁜 그에게 곡을 모집하는 *A&R이 있을 때마다 지원해 보라며 연락처를 알려줬다. 덕분에 본과 생활 중에도 곡을 쓰며 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작곡과 학업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엔 힘들 것이라고 조언하셨어요. 하지만 전 둘 다 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박진영 PD에게 조언을 듣기도 했다. “예과 시절에 썼던 곡이 JYP 연습생이던 2AM의 연습곡이 되기도 했어요. 당시 박진영 PD님과 1차, 2차로 면담하며 작곡에 대한 많은 조언을 구했죠. 청담동 사옥에 가서 잔뜩 긴장하며 얘기를 듣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두 가지 모두 해내고자 고군분투했지만 전부 손에 쥘 순 없었다. 조민형 작곡가는 의과 생활과 군 복무를 마친 2016년에 진정한 작곡가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의과 생활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면서도 작곡에 대한 갈증이 남아있었어요. 군 복무를 마치면 이후 하고 싶은 것을 전부 하고 살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서울에 저렴한 집을 얻어 음악에 매진하고자 했다. 하지만 작곡에만 몰두하다 보니 전반적인 삶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작업에 열중하다 보면 아침에 잠들어 저녁에 눈뜨기 일쑤였다.

  “제대로 된 일상을 되찾고 싶어서 2020년까지 의료 활동과 작곡가를 번갈아 했어요. 병원에서 X-ray나 도수치료를 도맡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저녁에는 노래를 만들었죠. 겸업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병원에서 의사로서 일할 때는 작곡으로 생긴 잡념이 전부 사라졌다. 작곡할 때는 병원에서 사람들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도 했다. “지금도 작곡하다가 머리가 복잡해지면 드라마를 보거나 다른 일에 집중하려 노력해요.” 그는 단순히 겸업의 방식을 배운 것이 아니다. ‘분리’를 통해 자신을 진정으로 돌보는 방법을 깨달았다.조민형 작곡가는 2020년부터 본격적인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시작은 유빈의 ‘숙녀’였다. 소속사의 요청으로 시티팝이라는 생소한 장르에 도전해야 했던 그는 가수의 목소리, 톤, 음의 대역 등을 하나하나 분석해 가수에게 어울리는 노래를 만들었다. 유빈은 원더걸스 활동 당시 랩을 주로 했기에 시티팝 장르인 ‘숙녀’는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대표곡인 아이유의 ‘라일락’도 이때 탄생했다. 그는 설명하기 힘든 신기한 경험을 했다. “처음에 만든 멜로디가 마음에 들지 않아 며칠을 고민했는데, 잠시 샤워하던 중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이건 되겠다는 확신에 바로 녹음해 들려줬는데 모두 좋다고 해줬죠.” 그가 직접 녹음 현장에 방문했을 때, 아이유는 따로 조언할 필요도 없이 노래를 척척 완성해 나갔다. “어머니가 제 작곡 생활에 크게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는데 ‘라일락’ 발매 이후 카카오톡 프로필 음악으로 설정하셨더라고요. 어머니가 응원해 주시니 뿌듯했죠.”

  트와이스의 ‘JELLY JELLY’라는 곡을 시작으로 단독 작사에도 도전했다. 그에게 작곡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라면, 작사는 따라 부를 수 있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드는 작업이다. “예전에 작사를 공부할 땐 ‘내 곡이니까 마음대로 써야지’라는 마음이었다면 이젠 다른 사람 곡을 어떻게 더 돋보이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어요.”

  작곡은 뿌듯함보다 더 많은 걱정과 긴장을 수반한다. “제 노래의 성적에 따라 가수에게 해가 가진 않을지 늘 걱정해요. 그렇기에 연예인과 하는 작업이 마냥 즐겁다기보다 늘 긴장한 상태로 작업하곤 하죠. 제 노래로 가수가 발전했다는 평가를 들으면 정말 뿌듯해요.” 작곡가로서의 삶 속에서도 그는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선사하기를 소망한다.

  그는 2020년부터 개인 유튜브를 시작했다. 작곡을 배우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음악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자신도 해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는 현재 가수 ‘루이드’를 육성하며 프로듀싱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지금 가진 전공으로 평생 먹고사는 건 지루하지 않나요? 많은 걸 겪어보며 새로운 나를 발견해 보면 좋겠어요. 적어도 죽을 때 후회하진 않을 거예요!”

출처 : 고대신문(http://www.kunew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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