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4년이나 걸려 완공
전주부 송광사 개창지비(1636년 건립)에 따르면 송광사는 1622년(광해군 14년) 승려 응호승명, 운쟁, 덕림, 득정, 홍신 등이 보조국사의 뜻에 의하여 세운 것이라 한다.
고려시대의 도승으로 우리나라 조계종의 창시자인 보조국사 역시 종남산을 지나다가 영천수를 발견하고 이 곳이 절터임을 표시한 후 전남 순천으로 내려가 자신은 그 곳에 송광사를 짓고 제자들에게 종남산에 절을 세우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자들은 즉시 절을 세우지 못하고 그가 죽은 후인 1622년 절을 짓기 시작했는데 무려 14년이 걸린 1636년(인조 14년)에야 완성을 보았다. 당시 무주 안국사 주지인 벽암대사를 개창조로 삼았으며 절터는 승려 승명의 증조부인 이극용이 희사했다고 한다. 종남산 송광사라는 현판이 걸린 원기둥 2개와보조기둥 2개를 사용하여 세운 건물로 다포식 맞배지붕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균형잡힌 조선중기의 건축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으로 균형이 잘 이뤄져 깨끗하고 단정한 맛을 풍긴다. 일주문을 거쳐 금강문을 통과하면 곧바로 눈을 부릅뜨고 사바세계의 악귀를 내쫓는 사천왕문이 절을 지킨다.
송광사 중앙에 세워진 대웅전은 1857년(철종 8년) 제봉선사에 의해 세워져 보물 제1243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건물의 형태는 조선후기 건축의 기본적인 양식을 본뜬 정면 5칸, 측면 3칸에 다포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대웅전의 벽과 천장에는 춤을 추는 여인을 그린, 19세기 무렵의 작품으로 보이는 민화 20여 폭이 그려져 있다. 또한 소조삼불상(보물 제1274호) 뒤에는 십왕불탱화가 있다. 대웅전 쪽에 있는 종루는 범종각이라고도 하는데 12개의 기둥을 사용한 2층 누각형태로 보물 제124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안에는 1716년에 만들고 1796년에 보수한 동종이 걸려 있다.
한편 송광사 입구에서 동쪽으로 냇가를 따라 1백m쯤 올라가면 돌로 쌓아 울타리를 만든 부도군이 있는데 여기에 송광사에서 수도하다 열반한 20여 스님이 묻혀 있다.
석간수(石間水)는 약수중의 약수
송광사의 뒤편으로 기암괴석과 울창한 잡목숲을 헤치고 오르면 해발 617m의 종남산 정상에 다다르고 이곳에서 서쪽을 향해 소양면 일임마을로 내려서면 중간 지점에는 전주제지 임산관리소가 있는데 이곳 석간수는 약수중의 약수로 정평이 나있다.
또한 정상에서 용진면 간중리쪽으로 내려가면 조선 중기(1562∼1633년)의 가장 뛰어난 기인으로 알려지 진묵대사의 행적이 남겨진 봉서사를 접하게 된다. 팔만대장경을 무난히 암송했던 진묵대사가 기거했던 봉서사는 727년 창건되고, 고려 31대 공민왕때 중건됐다. 그러나 6·25때 완전 소실되어 1963년과 1975년에 중수하여 현재는 대웅전, 산신각, 요사 등이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