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깊고
마음은 넓으며
행동이 바른 어린이로 자라겠습니다.
서희를 소개합니다! (완) |
|||||
---|---|---|---|---|---|
이름 | 황지후 | 등록일 | 23.11.07 | 조회수 | 42 |
서희는 942년에 태어나 자라는데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지리에 밝았고 무예에 능했다. 993년, 거란이 고려를 쳐들어왔는데 서희의 대표적인 외교담판은 이때 이루어진다. 소손녕은 다음으로 "고려는 거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도 어째서 바다건너 송나라와만 교류하고 있는가?"라고 본색을 드러냈다. 즉, 거란은 거란과 송의 전면전이 발생시 배후에 있는 고려의 침입이 두려워 먼저 고려가 송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실질적인 거란의 침략목적이었다. 소손녕의 말을 통해 이와 같은 거란의 속마음을 간파한 서희는 "고려와 거란 양국의 국교가 통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이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여진이란 핑계거리를 만들어낸다음 "만일 우리가 여진을 쫓아내고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여 그곳에 성과 보를 쌓아 길을 통할 수만 있다면 어찌 귀국과 국교를 통하지 않겠소?"라 하며, 서희의 애초 목적은 거란군의 철수였으나 오히려 이 담판기회를 통해 고구려의 옛땅 회복이라는 난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결국 서희는 거란과의 협상에 성공하며, 서경 이북땅을 잃으며 항복하는 것이 아닌, 강동 6주의 땅을 가질 기회를 얻어냄과 동시에 소손녕은 서희에게 낙타 10두, 말 100필, 양 1,000마리와 비단 500필을 선물로 주고 떠났다. 소손녕과의 담판 이후 서희는 태보내사령에 임명되었으나 996년 병이 생겨서 개국사에서 오랫동안 치료와 요양을 했다. 이때 성종이 직접 문병을 와 어의 한 벌과, 말 세마리를 사원에 나누어주고 개국사에는 곡식 1천 석을주었다. 개국사에서 요양하던 서희는 998년에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출저 : 위키백과 |
이전글 | 세종대왕을 소개합니다. (4) |
---|---|
다음글 | 김유신 소개글(완) :P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