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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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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 09.12.29 조회:438
    초대교장 강용구교장 선생님의 비문
    雄美한 大自然이 깃든 古都完山 이 땅에 偉大한 敎聖 蒼岩姜龍求先生이 계시었다. 先生은 단기 四二二七 甲午에 晋州姜氏의 名門에 誕生 不遇한 倭帝下에도 民族開化의 先驅者로 水原農林(現農大)을 率先出衆畢業 警世濟民의 大志를 抱持하사 단기 四二五五年 若冠時에 우리 全農에 情들어 白髮이 星星토록 春風秋雨 四十餘星霜을 오로지 英才敎育에만 一路盡瘁 及其也 停年退任하시니 崇高한 生涯며 淸廉한 天稟 連綿不朽의 그 精神宏遠한 저 業績이 모두가 靑史에 輝煌할지니 이를 기리 龜鑑 삼고저 全北敎育同志 및 數千門生 微誠을 모아 이에 感佩의 表를 銘記하노라 단기 四二九三年 庚子 十二月 日 <管見> 1. 警世濟民에 대하여 0. 『周易』의 원문에 경제를 뜻하는 經世濟民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세상을 경영하여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위 비문에서 警世濟民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은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쉽게 誤字표기라고 단언하는 일은 위험스런 일이다. 왜냐하면 교육적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警世濟民인 “세상을 깨우쳐 백성을 구제한다.”라는 해석이 훨씬 타당하고 매끄럽기 때문이다. 2. 若冠에 대하여 0. 『禮記』에 20세를 칭하는 弱冠이라는 말이 나온다. 20세에 관례를 하기 때문이다. 위 비문에서 若冠이라고 표기된 것을 誤記라고 단정하는 일은 단순히 고전의 문자만을 숭배하여 다른 상황을 재단하려는 교조적 해석의 위험이 있다. 문장의 전후 맥락을 살펴 보건데 단기4227년에 탄생, 4255년에 본교에 부임하신 바 28세 때의 일이다. 20대이므로 弱冠으로 칭해도 되지만 전후 맥락으로 보면 若冠이라 표기해서 “20대 무렵”으로 해석해도 가능하다. 3. 논란의 소지에 대하여 비문에서 유명문구를 인용하되 한두 字를 변용하여 사용하는 경우 혼란을 유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으로 오히려 훌륭한 문장으로 재탄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피해야할 諱(휘)와 겹칠 경우는 다른 한자로 고쳐 쓰기도 한다. 다만 비문에 충실해서 읽어야 하는 것이 후손의 몫인 것 같다. ---문채병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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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 09.05.14 조회:566
    충혼탑(교내)
    □ 건립취지 : 6.25 당시 학생의 신분으로 조국을 지키기 위한 일념으로 학도의용군으로 입대하여 각지의 전투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우고 전사한 28명 영령의 넋을 추모하고 이 분들의 공적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건립 □ 건립개요 〇 현충시설 관리번호 : 52-2-30 〇 위 치 : 전북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2가 18(전주생명과학고 교정내) 〇 건립주체 : 학도자원병 참전 동지회,전주 농림고등학교장 〇 건립일자 : 1989-05 〇 시설규모 : 비 2mX2mX5.6m 〇 관 리 자 :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 관련행사 : 현충일 추념행사(6.6) □ 비문내용 아! 어찌 잊으랴. 1950년 6월 25일 民族의 悲劇 바로 여기 배움의 터전에서 나가자! 救하자! 血書쓰며 祖國을 위하여 戰線으로 出征하여 위태로운 祖國을! 젊은 피로써 막았도다. 전몰학도지원병 전우들이여 배움의 터전으로 우리들은 돌아왔건만 그대들 모습이 보이지 않음은 꽃다운 나이 푸른 꿈 배움의 뜻 이루지 못한 채 눈감았도다. 오늘 보아라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우리의 자랑 조국에 바쳐진 꽃봉오리 모두 아늑한 모교의 품안에 이제사 돌아와 조국의 영광과 더불어 영원히 여기 쉬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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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 09.04.07 조회:491
    전라북도 농업전문계고 현황
    전라북도에는 순수농고 3개교, 농공고 3개교, 종합고 1개교 등 7개 농업계 고등학교에 1,576명의 학생 전원이 영농학생회에 가입하여 미래 과학영농인의 꿈을 안고, 무한경쟁 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라북도 단위 영농학생회의 활동 사항을 살펴보면 먼저 전주농림고등학교는 전라북도 중심학교로서 화훼류와 고급관상수 재배, 첨단유리온실 운영기술 실습, 애완동물 사육 실습과, 한식 조리 기능 실습 등 다양한 분야에의 실습활동을 통해 자립 영농의 꿈을 키우고 있으며, 평야부인 김제자영고, 정읍제일고, 부안농공고, 영선고에서는 넓은 호남평야와 야산 개발지를 이용한 축산, 원예작물 및 식용작물 재배와 분재재배 실습을 통해 기능을 익히고 있고, 준산간부인 한국경마축산고, 남원용성고에서는 경마, 축산 및 준고랭지 채소, 화훼 및 특용작물 재배 기능 실습을 익히는데 중점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라북도 농업교육도 학교별 특성화에 중점을 두고 WTO 체제의 무한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과학 영농인을 육성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농학생회의 주요 활동 사항을 소개하면 첫째, 전라북도 영농학생 전진대회, 영농학생 수련회, 선진지 견학 활동 및 영농 학생 해외연수 등을 통해서 상호 정보의 교환 및 협동성을 기르고 우의를 다지며, 둘째, 양액재배, 조직배양, 첨단 유리온실 관리능력 배양을 통한 과학영농인의 자질을 기르고 있고, 셋째, 고급 관상수, 분재, 국화 재배 및 목공에 제작활동과 전시활동을 통해서 영농 학생으로서의 보람을 찾으며, 넷째, 특별 활동시간을 통해서 전통 농악, 전통 음식의 보전을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기능을 연마하는 등 이와 같은 내용으로 학생 개개인의 취미와 적성에 맞는 분야를 선택하여 기능 신장 활동을 하고 있고 미래 한국농업의 선구자적 역활을 다 할 수 잇는 자질을 기르며, 사명과 긍지를 갖고 노력하는 영농 학생상을 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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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 09.04.04 조회:410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역사(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에 있는 공립 실업계 고등학교. 1910년 3월 농업기술 인재양성을 위하여 공립전주농림학교로 설립되어 같은 해 5월에 개교하였다. 사립함육학교에서 교지 일부와 건물 1동을 기증받고 필요한 교실을 증축하여 농과학생 50명으로 개교하였다. 1911년 11월에 전주공립농업학교로 개편하고 1914년 강습과를 신설하였으며, 1930년 3월에 수업연한을 3년으로 연장하였다가 1931년 3월 다시 5년으로 연장하고 토목과를 신설하였다. 1943년 7월 현재의 위치로 교사를 신축 이전하고 4년제로 개편하였으며, 1945년 10월에 재개교하여 초대 교장에 강용구(姜龍求)가 취임하였다. 1946년에 수업연한을 6년으로 연장하고 1947년 8월 전주공립농림중학교로 개칭하였으며, 농업교육의 확충을 위하여 1948년에 축산과와 1949년에 원예과를 신설, 학급수 30학급에 학생정원 1,500명으로 확장하였다. 1950년 5월에 교명을 전주농림중학교로 바꾸었다가 1951년 8월 〈교육법〉 개정에 따라 전주동중학교와 전주농림고등학교로 개편하였다. 1964년 11월 원예과와 식품가공과를 신설하고 1965년 3월 전주동중학교를 분리하였으며, 1970년 12월에는 농업의 기계화 추세에 따라 농업기계과를 신설하여 농과·임과·축산과·원예과·잠업과·농업토목과·식품가공과·농업기계과 등 8개 학과로 편제하였다. 1980년 9월에 체육관을 건립하고 1984년 12월 대통령하사금으로 농업박물관을 건립하여 농업발달사의 산교육장을 마련하였으며, 1987년 11월에는 전국4H기능경진대회를 성대하게 가진 바 있다. 1997년 3월 현재 8개 학과 30학급에 재학생 1,335명, 교원 81명이며, 졸업생은 총 1만8000여 명을 배출하였다. 교육목표는 다양하게 분화하는 오늘의 농업실태에 비추어 분야별로 적응할 수 있는 과학영농교육을 통한 유능한 중견영농인과 농업기능인의 양성에 있으며, 그 바탕은 올바른 가치관에 의한 전인교육에 주안점을 두고 교훈을 ‘성실·근면’으로 설정하였다. 학생활동으로는 일제강점기인 1941년 11월 2학년 전원이 항일투쟁에 가담, 20명이 구속되기도 하였다. 1인1기 신장을 목표로 한 특별활동의 강화로 1970년 10월 농악부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일본에서 개최된 세계잼버리대회에 참가하여 민속예술을 과시하였다. 배드민턴부는 전국체전에서 우승은 물론, 서울올림픽대회 전시종목에서 금메달로 세계를 제패한 선수를 길러내었다. 밴드부는 KBS전국고교관악제에 출전하여 금상을 휩쓸었으며, 미술부는 고교실기대회에서의 특선과 대한민국미술대전입선 등 전통을 과시하였다. 전국농업학교 농장심사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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