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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임초빈
작성자 *** 등록일 22.12.19 조회수 54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월남전에서 돌아온 병사를 주제로 노래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발전을 위해 미국의 지원을 받고 월남 파병에 동의한다.

비록 월남 파병은 결국 미국으로 하여금 패전국이란 오명을 주기를 했지만 대한민국에게는 국가발전과 국방력을 높이는 수단이 된다.

당시 베트남 전쟁에 파병 갔다가 무사히 훈장을 달고 돌아온 김 상사를 온 동네가 환영한다는 내용이다. 원래는 말성 많은 동네의 우환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큰 출세인 셈이다.(베트남 파병 내용) 


베트남은 1954년 제네바협정을 통해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쪽은 자본주의 월남, 북쪽은 공산주의 월맹으로 양분됐다.

이후 남쪽에서 월맹을 따르는 월남민족해방전선과 반정부주의자들이 연합세력을 형성했고, 이에 미국은 군사고문단을 파견해 월남을 지원했다.
미국에 반기를 품은 베트콩은 1964년 8월2일과 4일 두차례에 걸쳐 통킹만에서 작전 중이던 미 구축함 매독스 DD-731호를 어뢰정과 기관총으로 공격했다.

8월7일 미국 하원은 ‘통킹만 결의안’을 의결, 베트남전 개입을 본격화했다.

당시 제36대 미국 대통령 존슨은 우리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다.
국군은 1964년 9월 제1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이 부산항을 통해 출국했고, 1965년 비둘기부대와 맹호부대가 베트남으로 떠났다. 같은 해 주월 한국군사령부가 창설됐다.

이어 1966년 백마부대, 백구부대와 청룡부대가 파병됐다.
1968년 5월 미국과 월맹은 전쟁종식 협상에 들어갔으며, 1971년 7월 미군이 철수했다.

국군은 1971년 12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철수했다.

이때 파병된 국군 32만여명 가운데 4000여명이 전사했고, 5만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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