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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돌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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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말
작성자 이태윤 등록일 21.07.13 조회수 97

맛있는 말

 

1. 그러니까 비밀 

 

학교 갔다 오는 길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올 때

팔딱, 멋진 생각 하나

호수에 물고기처럼 튕겨 올랐지

 

눈군가 보았을 거야

내 머리 위에서 번쩍,

빛나던 그 생각

 

엄마야!

대문 박차고 들어서자

엄마가 물었지

"좋은 일 있었니? 말해 봐. 무슨 일이니?"

 

그건 비밀!

내가 말하면 엄마는 그럴 걸

"에이, 난 또....."

 

그럼 도망갈지 모르잖아

그 멋진 생각

 

그러니까 비밀!

 

2. 우산

 

비를 맞으며

걸어간다

 

아빠 우산

내 우산

 

우산에서

우를 빼면

 

아빠 산

내 산

 

아빠 산은 높고

내 산은 낮고

 

낮은 산 앞세우고

높은 산 걸어간다

 

3. 네가 엄마니?

 

수학책 밀어 놓고

공책을 접어 놓고

신문지 펴 놓고

손톱깎이를 꺼냈다

허가 싫은 숙제 대신

손톱을 깎으며

발톱도 깎으며

내가 내게 말한다

 

네가 엄마니?

왜 걱정을 해?

그깟 숙제 하면 되잖아

언제?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을 때 하면

30분 걸릴 것도

 

10분 안에

뚝딱 끝낼 수 있어

 

4. 좀

 

밥과 많이 먹어라

사이에 있는 좀

밥과 고만 먹어라

사이에 있는 좀

텔레비전과 고만 봐라

사이에 있는 좀

공부와 해라

사이에 있는 좀

 

옷을 갉아 먹는 좀이란 벌레도 있고

엉덩이를 들쑤시는 좀도 있지

왜 있잖아

공부하려고 의자에 않으면

곧잘 찾아오는

고 좀이란 놈

 

5. 엄마 생신

 

엄마는

새 달력에, 4월 7일에

동그라미 쳤다

동그라미 밑에

큼직하게 써 놓았다

<엄마 생신>


나는

한 장 넘겨 5월 24일에

동그라미 쳤다

동그라미 밑에

엄마처럼 큼직하게 써 놓았다

<엄마 생신>


6. 코풍선


우리 아기 풍선 붙었다!

피이, 거짓말, 아기가 어떻게 풍선을 불어?

거짓말 아니다, 우리 아기 코로 코풍선 불었다!


7. 아기


더 불래요

자꾸만 더 불래요


그럴 줄 알았어요

풍선이 빵 터졌어요


그럴 줄 알았어요

으앙, 울음보도 터졌어요


8. 다 빼놓고


  헐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동생

  다리에 깁스한 나만 빼놓고 고모네 아기 돌잔치에 가

더니 사진을 찍었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동생, 작은아빠 작은엄마

  고모네 아기 돌 사진에 다 있는데 없네, 없네

  나만 없네


  빙그레 벙그레 방그레 방글방글


  나만 빼놓고

  찰칵! 사진을 찍었네


  나만 빼놓고

  그래서

  그랬다 뭐


  나는

  그랬다 뭐


  그날,

  그랬다 뭐


  다 빼놓고

  다 빼놓고


  나 혼자 읽었다

  갈갈갈 동화책을 읽고 내 마음 같은 동시도 읽었다아


9. 꽃길


엄마염소 아기염소

돌랑돌랑 지나간다


엄마도 깜장

아기도 깜장


유채꽃밭 가운뎃길

깜장깜장 지나간다


깜장깜장 깜장꽃

노랑꽃밭 지나간다


10. 못 팝니다


못 팝니다

못 팝니다

못은 팔지만

순동이는

못 팝니다


좀도둑 하나

못 잡지만

우리 식구인걸요


못 팝니다

못 팝니다

철물점 아저씨

손까지 내젓습니다


개장수 아저씨

못 사고

망치 사고

개는 못 사고

그냥 돌아섭니다


11. 그리움


엄마는


어머니가


먼 곳,


필리핀에 계시고


외할머니는


딸이


먼 곳,


대한민국에 있고


12. 첫눈


어젯밤에 첫눈이 왔대


정말?

근데 어딨어?


나도 못 뽰어,

왔다 갔나 봐


어디로?


글쎄,

산 너머 북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산 너머 북쪽?

엄마, 눈 저깄다!

도봉산 꼭대기에 하얗게 앉아 있어


어머, 그러네

하얗게 앉아 우릴 내려다보고 있네


13. 거미의 장난


거미 한 마리

천장에서 뚝 떨어진다

대롱대롱 공중에 매달려

빌딩 벽을 청소하는

우리 아빠를


엉덩이가 콩알만 한

저 녀석


아빠 땀방울보다

작은 저 녀석


모르나 보다

저를 보고 놀라는 내 마음도


몰라서

몰라서

장난을 치나 보다


14. 맛있는 말


바닷마을 아주머니

텔레비전에 나오네


가마솥

뚜껑 열고


펄펄 끓는 송어국

한 국자 떠 주며


집사 봐!

집사 봐!


후후

불어 주며


집사 봐!

집사 봐!


그 참

맛있는 말


침이

꿀떡 넘어가네!


15. 포도


너도

포도

나도

포도


우린

포도


나도

작고

너도

작고


근데

참 크다


한 송이

우린


16. 고놈 물들었네


나뭇잎에 청개구리

고놈 물들었네


나뭇잎 보고

나뭇잎 색 물이 들었네


배춧잎에 배추벌레

고놈 물들었네


보고 들고 먹고 들고

고놈들 물들었네


17. 냄새 무덤


급하긴 하고

화장실은 없고


누가 볼까

둘레둘레

흘끔흘끔

엉덩이 내놓고

볼일을 보았다

아이고 냄새!


납작한 돌을 주워

흙을 긁어모아

냄새를 덮었다

꽁꽁 숨어라!

자꾸자꾸 덮었다


작음 무덤 하나

뒷산에 새로 생겼다


18. 여기는 내 밭


'그 참 맛있다!'


염소는 꼴깍꼴깍

침을 삼키며

배추밭을 지나

풀밭으로 가지요


풀밭으로 가서

여기는 내 밭!

마음 편히 냠냠

풀을 뜯어 먹지요


배추밭에선

여기는 내 밭!

배추벌레가

마음 놓고 냠냠

배춧잎을 먹지요


19. 호랑이강낭콩


볼록볼록 콩깍지

안 깐 콩깍지


헤벌렁 두 쪽 콩깍지

깐 콩깍지


안 깐 콩깍지나 깐 콩깍지나

다 같은 껍데기


벌레야 얼씬 마라, 어흥

나 호랑이다, 어흥


어흥 어흥 강낭콩 키운

호랑무늬 껍데기


제 껍데기 닮아

강낭콩도 호랑무늬


나도 호랑이다

어흥 어흥


요놈도 어흥 어흥

조놈도 어흥 어흥


20. 수박 불기 대회


여기는 수박밭!

푸르고 푸른 대회장!

풍선을 불듯

수박 불기 한창입니다

메추리알만 한 수박

점점 커집니다

누가 더 크게 부나?

넝쿨마다

쉬지 않고 붑니다

수박은 나날이 커집니다

어느 사이

축구공만 해집니다

 

더 큰 것도 있지만

크다고 일등은 아닙니다

하얀 속 빨갛게 만들기

하얀 씨 까맣게 익히기

남은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잎사귀들 파랗습니다


21. 호박잎이 넓어진 까닭


호박잎도 처음엔

고춧잎처럼 조그마했을 거야


사람들이 애호박을 좋아하니까

뚝뚝 따니까

-얘야, 이 속에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 숨어라

밀가루 반죽 늘리듯

점점 늘려 넓어졌을 테지


넓은 호박잎

푸른 호박잎

할 일을 다하고 누렇게 시들어 갈 때

사람들은 발견하지


어머나, 여기 이 호박 좀 봐!

아유, 크다 커, 언제 열렸었지?

누렇게 잘도 익었네


22. 뻥튀기 기계


뻥! 뻥!

강냉이 튀기는

뻥튀기 기계

이라크에 보내면 좋겠다


가서

대포 대신 총 대신

뻥! 뻥! 뻥!

신나게 쏘아라


화약 대신 총알 대신

고소한 강냉이

펑펑 쏟아 주라

 

천 대 만 대

이라크에 보내면 좋겠다


23. 진흙 과자


모래알로 떡 해 놓고

조약돌로 소반 지어

언니 오빠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

이건

우리나라 옛 어린이들의

소꿉놀이 노래


진흙으로 과자 구워

맛있게도 냠냠.....

이건

아이티 어린이들의

소꿉놀이 노래


그렇담 얼마나 좋을까

진흙 과자 굽는 건

놀이가 아니라네

노래가 아니라네


지진으로 엄마 잃고 아빠 잃은

아이티 어린이들

진흙 과자 진짜로 먹는다네

배가 고파 먹는다네


24. 똥은 거짓말 안 한다


어젯밤은 어스름 달밤

-가자!

짝을 지어 산을 내려와

콩밭으로 들어갔을 테지

-아이구 맛있어!

모작모작 콩잎 훑어 먹다가

그만 콩꽃까지 먹어 치우고

-아이구 배불러!

뿔룩 배 뛰룩뛰룩

숲 속으로 돌아갔을 테지


그런데

똥이 말을 하다니?

나는 못 들었는데

할아버진 언제 들었지?

밭고랑에 소보록한 똥,

고 새까만 놈들과


눈 마주친 할아버지

"고라니 짓이다,

똥은 거짓말 안한다."

했으니 말이야


겅중겅중 긴 다리 고라니

귀는 쫑긋, 눈이 머루 같은,

오물오물 주둥이도 예쁜 고라니

너희 한 짓

너희 똥이 다 말했다

오늘 밤도 오지 말고

내일 밤도 오지 마라


우리 할아버지

작대기 들고 기다린다

여름내 오지 마라

콩바심 끝날 때까지 오지마라


25. 농약 덩어리


복숭아벌레가 버린

농약 덩어리


사과벌레가 버린

농약 덩어리


흠 없다

크다

달기도 하다


26. 방울토마토


하얀 귀

하얀 가슴

하얀 발


하얀 공양이 목에 

달아 주고 싶다


빨간 방울


27. 방귀 귀신


내 앞자리 진수 녀석

아닌 척 스을쩍

왼쪽 궁둥이 들어 올릴 때

나는 알아보았다


"나오신다."

하마터면 입을 열 뻔했다


내 짝꿍

뒤늦게 코를 싸쥔다


28. 새 아닌 새에게


황새. 뱁새. 물총새. 소쩍새. 박새. 딱새. 파랑새. 할미새.

굴둑새. 억새. 참새. 콩새. 벌새


어, 억새야 

왜 네 이름이 그속에 있니?

너도 새니?


29. 당나귀


나귀 나귀 당나귀

먹이는 누가 주나


아저씨


똥은

누가 치워 주나


아저씨


등은

누가 다독여 주나


아저씨


나귀는 

무얼하나


아저씨를 

등에 태우고 다니지


30. 뿔난 컴퍼스



말뚝은 꼼짝 않고 

염소는 뿔났다


말뚝아 뽑혀라

고삐야 풀려라


매에매에

매에매에

빙빙 돌아간다


말뚝은 꿈쩍 않고

고삐는 감기고


원 안에 원

원 안에 원

원만 그려진다


염소는 컴퍼스

뿔난 컴퍼스


31. 가을 산에 가 보면


오리나무가 떨어뜨린다

동그란 잎


참나무가 떨어뜨린다

갸름한 잎


싸리나무 떨어뜨린다

쬐끄만 잎


소나무도 보탠단, 바늘 잎 보태서

산 식구들의 겨울 이불 만든다


겨울밤은 춥다고

바람이 세차다고


꼭대기 집, 까치도 내려와

이불 속에 발을 묻고 자라고


32.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 중 하나


까망염소가

풀잎 따 먹고

나뭇잎 따 먹고


까망염소 떼가

풀뿌리 캐 먹고

나무 껍질 벗겨 먹고


무인도에 사는

풀이 사라지고

나무가 사라지고

.

.

.

.

 

사라지겠다

사라지고 말겠다

무인도에 사는 까망염소도


33. 산동네 나무소개


옷 말고 옻나무

닭 말고 닥나무

십 리 마르고 오리나무

생각 말고 생강나무

거짓 말고 참나무

돈 없는 은행나무

쥐똥 없는 쥐똥나무

딱총 없는 딱총나무

가시 많은 가시나무

향기 많은 향기나무

잣나무 비슷 소나무

소나무 비슷 잣나무

밤 여는 밤나무

도토리 여는 도토리나무

아기 손 단풍나무

 

아유 숨차,

소개 못 한 나무들아

섭섭해하지 마

다음번에 꼭 소개해 줄게


34. 물총고기


옛날 옛적

물고기 한 마리

강물은 잔잔

날씨는 좋고

심심은 하고

-어디까지 올라가나?

물 한 방울 쏘아 봤지


강둑에  서 있는 나무 향해

입으로 푱!


그런데 글쎄,

여치가 뚝 떨어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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