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에는 그 발걸음 함부로 하지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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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정영수 | 등록일 | 23.03.16 | 조회수 | 76 |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에는(踏雪野中去), 그 발걸음 함부로 하지 말라.(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걷는 이 발자취는(今日我行跡), 뒤에 오는 누군가의 길이 되리니.(遂作後人程) 위 글귀는 김구 선생이 1948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의거 기념일을 맞아 조선시대의 문신 이양연의 시 『야설(野雪)』을 인용해 쓴 글귀로 김구 선생의 삶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김구 선생은 조국의 독립과 통일된 민족을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다. 구한말에는 교육사업과 농촌계몽에 정성을 쏟았고, 3·1운동 후엔 상해 임시 정부에서 주석직을 포함하여 여러 직함을 가지고 항일 무력활동과 외교적 노력을 통해 조국의 독립 역량을 키우려는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광복 후 미·소에 의해 남북이 분할 점령된 시기에는 통일된 조국을 염원하며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지 않은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의 삶은 오직 조국의 온전한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고민하며 행동했던 겨레의 큰 스승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수갈채와 꽃다발을 받기 위한 삶을 추구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이기도 했던 김구 선생은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삶을 일관되게 유지하였다. 그래서 호도 그저 천하고 평범한 ‘백정과 범부’가 되고자 ‘백범(白凡)’이라고 하였고, 1919년 4월 13일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내무위원으로 선출되었을 때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하게 해달라고 당시 내무총장이었던 안창호에게 부탁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자신을 내세우지 않은 삶은 광복 후에도 일관되게 유지되었는데 개인의 영광을 찾고 안주하기보다는 나라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된 민족을 위해 고심하고 행동했다. 소련이 일본의 무장해제를 이유로 북한 지역을 점령하였고 한반도 전역이 소련에 의해 점령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 미군이 38선 이남을 점령함에 따라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이남 지역은 미국이, 이북 지역은 소련이 각각 분할 점령하였다. 이후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남과 북에 단독정부가 수립되는 분위기로 흘러갔고 김구 선생은 이를 극렬하게 반대하였다. 남북의 분단을 막고 통일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이 한 몸 조국이 원한다면 제단에 바치겠다는 각오로 38선을 넘었던 그의 모습에서 일신의 영달과 당리당략에만 치우진 우리네 정치인들은 물론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1949.6.26. 12시 30분 경 안두희가 쏜 총탄에 맞고 서거하심으로써 선생의 (온전한) 조국의 독립과 통일된 민족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선생의 위대한 꿈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우리 민족의 역사 전개 방향의 커다란 물줄기가 되어 그 꿈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전진해 나아갈 것이다. 김구 선생이 눈 덮인 들판을 신중하게 걸어가면서 만든 그 길을 후대에 태어난 우리는 따라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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