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고등학교 로고이미지

성원 문학상

RSS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네이버밴드 공유하기 프린트하기
수필 1,약속2, 할머니의 기억
작성자 강용현 등록일 24.10.22 조회수 74
첨부파일
약속.hwpx (82.23KB) (다운횟수:24)

                                                        약속

                                                                            강용현

 오늘은 하늘이 유난히도 맑다. 파란 하늘 사이로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보면서 세월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내가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2학년이 되었으니 말이다.

초등학교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면 몸도 마음도 한층 성장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몸과 마음이 자라면서 생각도 많아지고 자잘한 고민도 많아졌다. 즐겁고 행복한 일들보다 힘들고 고단한 일들이 더 많아진 것도 같아 참 슬픈 생각이 든다. 그중에서도 학업에 대한 고민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가만히 앉아 지나버린 시간을 되돌아보면 역시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그때가 참 좋았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열심히 뛰어놀고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하게만 지내도 되던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시절을 생각하니 한때 나의 절친이었던 친구 A가 문득 떠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으로 배정되면서 친구 A를 알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마냥 개구쟁이였고, 해맑기만 한 아이였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비슷한 성향의 A가 다가왔다. 성격과 체구와 취미도 비슷한 A를 만나며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급속히 가까워졌다. 그 뒤 A와 나는 어느 곳이든 함께 했었다. 급식도 함께 먹고, 쉬는 시간도 늘 함께했으며, 심지어 학교가 끝나고 실시하는 방과 후 학습도 같이했었다. A는 내가 재미없게 하는 말에도 즐겁게 웃으며 공감해 주었고, 내가 무슨 말을 하든 항상 내 편에 서있었던 든든한 친구였다.

A는 또한 웃음이 무척 예쁜 아이였다. A가 웃을 때면 왼쪽 뺨에 예쁘게 보조 개가 파이고, 두 눈은 귀여운 초승달 모양으로 변했었다. 마음씨는 또 얼마나 착한지 천사가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했었다. A는 피아노도 수준급으로 쳤었는데, A가 아로하로 피아노 연주를 할 때면 그 모습이 너무도 멋져서 나도 A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등록해서 그 노래를 배우기까지 했었다. 그렇게 A와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항상 함께했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학교 전교생이 함께하는 운동회가 있었다. 오미자 던지기, 줄달리기, 이어달리기, 떡 따먹기, 공굴리기 등.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얼마 후 반 대항 이어달리기를 했는데, 친구 A의 차례가 되었다. 나는 A를 향해서 목이 터지도록 열심히 응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A는 힘차게 달리기는커녕 절뚝이며 뛰는 바람에 우리 반이 꼴찌를 하고 말았다. 나는 A에게 다리가 아프냐고 물어봤지만, A는 힘없는 모습으로 고개만 가로저었다. 그런 A의 모습을 처음 접한 것이라서 나는 당황했다.

며칠 후 친구 A가 할 말이 있다고 학교 뒤뜰로 나를 불렀다. 심각한 표정으로 그랬기에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A가 말을 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에게 A는 충격적인 말을 털어놓았다. A가 어렸을 때 교통사고를 당해서 오른쪽 발가락 몇 개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걸을 때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지만 빠르게 달릴 때는 어쩔 수 없이 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너만 알고 있으라고 말했다. 나는 A에게 평생 나만이 아는 비밀로 간직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A의 고백을 들은 후 A가 나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해주어서 너무도 고마웠다. 동시에 A가 사고 이후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냈을까를 생각하니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그런 있고부터 A와 나는 더욱 친해졌고 더욱 서로를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일이 생기고 말았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학교에서 교육문회회관 수영장으로 생존 수영을 배우러 가게 되었다. 그때 친구 A는 양말 벗는 것이 두려워 수영을 하지 않고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런 친구 A를 보니 마음이 너무도 아팠다. 그때 같은 반 친구 B가 친구 A를 바라보며 비웃듯이 말했다.

“A 쟤 뭐냐? 물이 무서워서 저러고 있는 거야? 달리기도 정말 못하고, 정말 멍청하고 바보 같은 애야.”

나는 친구 B의 이죽거림을 참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욱하는 마음에 친구 A의 비밀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 후 친구 A의 비밀은 B에 의해 삽시간에 번져나갔다. 그날 내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말실수한 것을 알게 되었고 후회를 했지만, 그때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는 친구 A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그 후 A를 만나 거듭 사과했지만, A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나 역시 너무 미안한 나머지 자꾸만 A를 피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A와 나는 반이 갈렸고, 어느덧 육 학년이 되었다.

교정에는 빨갛게 나뭇잎이 물들고 하늘도 더없이 높고 푸른 날이었다. 친구들과 축구하고 수돗가에서 땀을 식히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아 뒤를 돌아보니 놀랍게도 친구 A였다. 그사이 훌쩍 큰 A는 몰라보게 자라있었고 내 모습 역시 A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었다. 우리는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봤고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문득 옛날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친구 A가 먼저 말을 했다. 예의 그 보조개 미소와 반달눈으로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곧 있으면 졸업이네.”

그래 벌써 그렇게 됐네. 잘 지내고 있었지?”

나는 기어들어 갈 것 같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초등학교 입학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육 년이 지나가네.”

A가 다시 말했다.

한순간 우리들 사이로 지난날 함께했었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나는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 먼 하늘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말이야 너를 생각하면 항상 고맙고, 미안했어. 그래서 너에게 선뜻 다가가지도 못했어. 그때 비밀 지키지 못한 거 정말 미안해. 진심으로 사과할게.”

나의 말에 친구 A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미소와 함께 화답했다.

에이,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마음에 두고 그러냐? 난 이미 오래전에 잊었어.”

그날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서 있었다.

친구 A와 짧은 만남 이후 우리 모두 중학생이 되었고, A와 나는 아쉽게도 다른 중학교로 배정받아 영영 헤어지게 되었다.

나도 어느새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업의 압박이 더욱 거세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가끔 친구 A를 생각한다. 잘 지내고 있는지? 꿈은 무엇인지? 꿈을 이루기 위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는지? 너도 나처럼 얼굴에 여드름이 피어나고, 변성기가 시작되었는지? 목소리는 걸걸해지고, 키는 얼마나 컸는지? 나처럼 학업 스트레스는 없는지? 모든 것들이 정말 궁금했다.

하늘이 유난히 이쁜 오늘 뭉게구름 사이로 A의 천사 같은 얼굴이 떠올랐다. 웃으면 왼쪽 뺨에 보조개가 파이고. 피아노를 잘 치며, 두 눈이 귀여운 초승달로 변했었던 내 친구 A. 너무너무 보고 싶다. A, 우리 언젠가 꼭 다시 만나자.

                                              할머니의 기억

                                                                              강용현

 가을이 짙어지면 가끔 할머니가 생각날 때가 있다. 할머니는 내가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셔서 희미한 기억 속에서만 머무르고 있지만 이렇게 구절초가 하얗게 피는 계절이면 이상하게도 할머니의 기억이 뚜렷하게 떠오르곤 한다.

음력 구월 구월 이면 나는 부모님과 함께 제사를 지내러 산내에 있는 할머니 집으로 갔었다. 아름다운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할머니 집으로 갈 때면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를 만난다는 생각에 기분도 덩달아 들떠있었다.

할머니 집 마당에는 구절 초가 가득 피어있었는데 우리 차가 골목길로 들어갈 때면 구절 초가 피어있는 마당 사이로 할머니가 활짝 웃으시며 득달같이 달려와서 나를 안아 주시곤 하셨다.

그때의 할머니 품이 얼마나 따스했는지 세월이 지닌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난다. 차에서 내린 내가 할머니를 향해서 달려가면 할머니는 나를 안아서 번쩍 안으시면서 아이고 내 강아지 왔네.” 하시면서 내 뺨에 당신의 뺨을 갖다 대곤 하셨다. 나는 어렸었지만, 그때 할머니가 얼마나 나를 사랑 하시는지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할머니는 나를 이끌고 집 안으로 들어가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잔뜩 내어 놓았는데 평소에는 엄마가 이가 썩는다고 주지 않던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것들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슬쩍 먹지 말라고 눈을 흘기면 할머니는 이내 눈치를 채시곤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 정도는 먹어도 되겠다. 이 깨끗이 닦으면 되지 강아지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할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포기의 한숨만 내어 쉬었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내가 좋아한 것들을 가득 풀어 놓으시고 맘껏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할머니랑 먹었었던 달콤했던 아이스크림의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엄마께서 제사 음식을 하신다고 정신없이 바쁠 때면 할머니는 나의 손을 잡고 집 주위에 있는 우물 등을 돌아다니시면서 자연 학습 비슷한 것을 해주셨는데, 연못 옆에 호두가 조롱 조롱 달린 호두나무를 비롯해 그 옆 우물 속에 살고 있는 다슬기들을 다감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셨다. 그리곤 담 옆에 다정한 모습으로 익어가는 모과, 그리고 홍시가 되어가는 감, 또는 바람에 살랑이는 아름다운 코스모스랑 감국 등,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목소리로 그들의 생태를 조곤조곤 알려주곤 하셨다. 이렇듯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할머니 집 마당에는 각종 가을의 전령들이 주렁주렁 익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여덟 남매 중 막내 아들에게서 태어난 손자였는데, 우리 아빠가 늦게 까지 결혼을 안 해서 할머니 속을 몹시 태우다가 사십이 다 되어서 겨우 결혼해서 낳은 손자였다. 그 때문에 할머니께서는 칠순이 훌쩍 넘어 본 손자인 나를 더욱 애틋하게 생각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가끔 할머니는 나를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면서 내가 너를 앞으로 얼마나 더 볼 수 있겠냐?”고 하시며 고사리 같은 내 손을 잡으시고 중얼거리듯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나는 할머니의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그 뜻을 정확하게 알 것 같다. 그 말씀처럼 할머니는 나와 딱 육 년을 함께 하고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세상을 작별하셨을 때 그 당시의 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나이였었다. 그래서 그런지 엄청난 슬픔을 느끼지는 못했었지만, 세월이 조금씩 흐르고 해가 거듭될수록 할머니의 부재를 점점 느끼게 되었던 것 같았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계절도 구절 초가 봉우리를 내밀던 가을이었는데 고모들이 소리 내어 울고 있었고. 아빠, 엄마 큰 아빠들이 슬픈 얼굴로 가을 하늘을 바라보던 기억이 떠오른다. 굉음 소리를 지르며 굴착기가 땅을 파고 그 속으로 할머니가 들어갔을 때 어린 나는 그제야 닥쳐온 이별을 실감하며 잠깐 큰 소리로 울었던 것 같다. 그것은 그 상황이 슬퍼서라기보다는 낯선 두려움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뭔가가 툭 떨어져 나가는 듯한 상실감 어쩌면 그런 유의 감정일지도 몰랐다. 당시의 나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느낄 수 없기에 더욱더 그랬을 것이다.

그 뒤 세월이 흐르고 나는 어느새 훌쩍 자라서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험이라는 것을 치르고 우리들은 공부 순위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공부의 중압감도 많아지고 여러 가지 고민도 많아졌다. 부모님의 학업 잔소리도 더욱 많아지는 요즘 가끔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사랑으로 바라보시던 할머니가 자꾸만 생각난다.

오늘은 할머니의 이미지를 떠올려봤다. 조그마한 몸집에 하얗게 센 흰머리의 우리 할머니, 걸을 때면 허리가 구부러져 두 손을 등 뒤로 해서 걸어야 하셨던 우리 할머니, 나를 부를 때면 항상 이름 대신에 우리 강아지라고 불러주시던 우리 할머니, 나를 바라볼 때면 눈동자 속에 하트가 새겨져 있던 우리 할머니. 어쩌면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던 날 내 하나의 별도 함께 져 버렸는지도 몰랐다.

내가 태어나서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할머니는 대구에 있는 산후조리원까지 오셨다고 했다. 유리 속에 있는 나를 보여주는 간호사에게 내가 정말 고추를 달고 나왔는지 보고 싶다고 하셔서 간호사가 어이없어하면서 보여줬다고 했다. 그 얘기를 엄마에게 들었을 때 나는 어이없어서 헛웃음을 웃었지만, 엄마는 할머니의 세상에서는 그것이 매우 중요했었다. 라고만 말씀하셨다.

우리집 장롱 속에는 내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께서 사주신 옷과 신발이 아직 그대로 있다. 노란 헝겊 신발에 까만 줄무늬가 들어간 앙증맞은 아기 신발과 옷들은 할머니가 거친 손으로 힘들게 농사지으셔서 사준 것들이라고 엄마께서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또다시 해주셨다. 할머니께서 얼마나 너를 예뻐했었는지 얼마나 사랑했었는지를 말이다. 나는 엄마와 함께 할머니를 생각하는 그 시간이 참 따스하고 좋았다.

요즘도 음력 99일이 오면 할머니 집으로 제사를 지내러 간다. 그곳에는 이제 큰아버지 큰엄마가 살고 계신다. 하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할머니의 손때가 묻은 가재도구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할머니가 고추장 된장 등을 담아 놓으셨던 커다란 항아리며 할머니가 쓰시던 농기구며 아직도 깨끗한 물이 고이는 우물이며 모든 것들이 그대로다.

올해도 99일을 맞이해 큰집을 향했다. 유난히 더웠던 한 해여서 구절 초는 겨우 봉우리가 맺힌 상태였다. 마당으로 들어섰다. 할머니가 쉬실 때면 늘 앉아 계셨던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군데군데 부식되어 있었다. 조용히 그것을 쓸어 보았다. 할머니의 손처럼 거칠하고 딱딱했다. 할머니가 따주셨던 대봉 감나무를 올려보았다. 올해도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처럼 실하게 익은 감들을 먹음직스럽게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뒤뜰로 갔다. 할머니가 고추 따위를 갈 때 쓰셨던 돌확이 보였다. 그것은 오랜 세월 쓰지 않아 흙이며 나뭇잎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나는 돌확을 쓸어 보며 조용히 할머니를 이름을 불러 보았다. 선한 이름, 착한 이름, 아무도 부르지 않았던 이름. 우리 할머니 이름 김순례를 말이다.

오늘은 산내 할머니가 살았었던 큰집에 갔다. 할머니가 웃으며 뛰어나오실 것 같아 마당 쪽을 한번 두리번거렸다. 올가을에도 여전히 구절초가 환하게 피어서 나를 맞이하고 모과와 호두 감등이 풍성하게 열려있다. 모두가 그 자리에서 나를 맞이하는데 할머니만 안 계신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이전글 성원문학상
다음글 김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