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代 張準錫 理事長(1962.3~1962.10)
선생은 日帝時 중국 北京에서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 北京 지국장으로서 독립운동에 활약한 바 있으며 東京 日本大學 文科를 마치고 귀국하여 전라북도 평의원에 선출, 道政에 직접 관여한 바 있다. 5.16 군사혁명 후 정치인의 학원 관여 불허로 제 2대 李春基 이사장이 이사장직을 사암하게 되자 3대 이사장직을 맡게 된 것이다. 학교 발전에 노력하던 중 취임 8개월 만인 1962년 10월 60세를 一期로 他界했다.
2代, 4代(2代 1948.6~1962.3, 4代 1962.11~1989.8) 李春基 理事長
春田 李春基 前 理事長은 南星 草創期부터 他界하실 때까지 40년간 理事長으로서 南星 살림을 맡아오는 동안 南星 발전에 온 힘을 기울여 명실상부한 名門校가 되게 한 제1인자라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春田 선생은 1905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 함흥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원으로 17년간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아 설립자 李潤成 여사를 도와 南星 학원을 설립했고 설립한 후 理事長직을 맡아 학원을 훌륭히 이끌어 갔다. 1945년 12월 25일 南星中學校가 문을 연 후, 51년 中, 高가 분리됨에 따라 高等學校 校舍 신축, 58년 南星女中, 高 설립으로 校舍를 신축해야 하는 어려운 일들을 도맡아 원만히 나아갔다. 春田 선생은 政界에도 뜻을 두어 50년도 2대, 60년도에 제 5대 국회의원 선거에 裡里에서 출마하여 당선된 바 있다. 春田 선생은 全北私學 재단 연합회 회장, 대한문교재단연합회 理事로 있으면서 사학의 발전과 권익을 위해 크게 활동하였다. 春田 선생은 지역사회 발전에도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원광대학이 종합대학으로 발돋움하는데 추진위원장직을 맡아 성공을 거두었고 전북애향운동 본부장직을 맡아 큰 공적을 남겼다. 春田 선생은 천품이 온후 강직하고 성실하여 추호의 사심도 없이 오로지 南星과 더불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온갖 정성을 쏟다가 1989년 84를 일기로 他界하였다. 春田 선생의 공적은 南星과 함께 영원할 것이며 南星人의 가슴속에서도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