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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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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형태의 갑과 을
작성자 전주기전여자고 등록일 20.03.12 조회수 142

장인균 <전주기전여고 교장·호남기독학원 상무이사>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세상은 변화한다. 사회 구성원의 가치변화에 따른 인식 변화가 세상을 바꿔 간다. 계절에 따른 기후나 환경의 변화만큼이나 사람들 생각이나 사회 현상의 변화도 빠른 듯하다.

 


 
‘갑질’이란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듯싶다. ‘갑질’이란 갑-을 관계에서 ‘갑’의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파생어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갑질’이란 용어가 일반화된 이후, 우리가 뉴스를 보면서 한마음으로 분노했던 갑질 사례를 잠시 떠올려보자. 아마  ‘땅콩’ 때문에 비행기를 돌린 재벌 회장 딸! 그리고 서류를 집어 던지며 욕설을 퍼붓는 모 재단 이사장, 운전기사를 발로 차며 욕설을 하는 모 회사 사장 등이 생각 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왜? 저런 부족할 것 없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저런 행동을 할까? 한진 일가, 미스터 피자, 몽고식품 등 이번 생(生)에서는 절대 을이 될 수 없는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갑질. 이런 갑의 심리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내가 곧 갑이 되고 또 을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의 갑질도 있다. 백화점 매장에서 판매원에게 행패를 부리던 모 백화점 모녀, 교수 지위를 이용해 제자와 인턴 여학생을 성추행한 어느 교수. 상대가 바뀌면 내가 곧 을이 되는 사람들의 갑질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직간접으로 경험하는 ‘부장은 과장에게, 과장은 대리에게, 대리는 사원에게’ 행하는 갑질도 여기에 속한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이, 우리 역시 전후 사정을 충분히 살피지 못하고 지금의 심리 상태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사회의 변화와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에 따라 기존의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뀐 갑질도 있다. 제품을 구매해 사용한 뒤, 하자가 있다며 환불이나 교환을 요구하거나, 혹은 음식에 고의로 이물질을 넣어 보상금을 요구하는 사례 등 제품의 하자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보상을 원하는 블랙컨슈머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인터넷에 기업에 대한 나쁜 평판을 올리겠다고 협박하는 을의 요구를 갑은 수용할 수밖에 없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요즘 각급 학교 교장이 하는 푸념이 있다. 그 좋던 시절에 ‘교장’하지 못하고, 이 좋은 시절에 ‘교사’하지 못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것이다. 교사는 이제 교실에서 학생이 갑이고 선생님이 을이라고 하소연을 한다. 이미지나 평판, 명예 등이 매우 중요한 연예인, 정치인 또는 기관장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지위의 강자-약자 위치가 바뀌었다고 할 수 없을지라도 갑의 힘이 약해졌음은 분명하다.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데 스스로 갑과 을이 되어버린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텔레비전 화면 속 대정부 질문을 하는 국회의원은 갑이고, 답변하는 정부 관료는 을로 인식하고 있다. 인사청문회에서도 국회의원은 갑이고, 후보자는 을로 각인되어 있다. 이들이 갑-을 관계가 아님이 분명한데 국민의 눈에는 왜 갑-을의 모습으로 보일까? 왜 국회의원들은 호통치고 나무라듯 다그치고, 정부 관료나 인사 청문 대상자들은 변명하고 죄인인 듯 머리를 조아릴까?

 


청문회는 의견을 듣기 위하여 만든 제도이다. 질문하는 의원님들이 재판관은 아니다. 국회의원은 질문만 하고, 판단은 국민이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부 관료나 후보자들은 죄인이 아니다. 질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나 사실을 답하면 된다. 판단은 역시 국민이 하는 것이다.
 

 


합법적인 갑도 생겨났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지 못했을 때 법의 취지와 상관없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줄기차게 민원을 제기하여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 당사자는 합법적인 방법이기에 어디에 하소연하지도 못하고 그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우리 사회에 갑과 을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갑과 을이 주종의 관계가 아닌 법적인 관계로서 존재해야 한다. 주종의 관계로서 갑을의 관계는 범죄 행위일 뿐이다.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심재철 의원과 김동연 장관의 공방은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갑과 을의 관계는 아닌 듯싶다. 또한, 이낙연 총리의 답변 모습도 일방적 을의 모습은 아님이 분명해 보인다.

 

 

갑은 법이 허용하는 갑의 역할을, 을은 법이 정하는 을의 역할을 하면 된다. 그랬을 때 ‘갑질’이란 단어는 자연히 사라지게 되는 건강한 민주 사회가 되리라 믿는다.

 

http://www.jeonbuktimes.co.kr/news/view.asp?idx=45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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