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 120년? 새 역사 만들지 못하면 의미 없다 - 오마이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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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 | 등록일 | 20.09.17 | 조회수 | 3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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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 120년? 새 역사 만들지 못하면 의미 없다"[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682] 임희종 전주신흥고등학교장
또한 120년이란 역사만큼 신흥학교는 전주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대한민국을 섬기는 인재를 배출하며 명문 사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120주년에 대한 소감 등이 궁금해 지난 2일 임희종 전주신흥고등학교장을 교장실에서 만나 보았다. 다음은 임 교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오는 9일이면 전주신흥학교가 개교 120주년을 맞이합니다. 소감이 어떠세요? "보통 120년이라고 하면 우리나라나 동양권에서는 60갑자가 두 번 돌아가는 해잖아요. 신흥학교 120년은 한민족의 역사가 그대로 숨 쉬고 있어요. 우리 신흥학교는 또 한강 이남에 최초의 학교로 알려져 있지요.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120년의 좋은 전통을 이어 온 학교에서 그 전통에 걸맞은 일들을 선생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교장이 되어서 자랑스럽고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올 3월 1일 교장에 취임했는데 120년이라는 역사의 무게감에 비해서 제가 많이 부족해요. 충분히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부담도 됐어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 그리고 기도보다 앞서지 말자는 마음으로 우리 선생님들과 함께 이 일을 같이 감당하면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꿋꿋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 코로나19 때문에 아쉬운 게 많을 거 같아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서 저는 3월 1일 교장이 됐는데도 취임식도 못 했어요. 모든 행사도 유튜브 영상으로 진행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개교 120주년 기념주간을 9월 첫 주로 정해, 신흥 120년을 성찰하고 각 분야별로 잘 정리하기도 하고, 대외적으로 크게 학교 공개도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모든 행사를 영상으로 녹화하여 온라인으로 방영할 수 있게 돼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 120주년 기념행사를 이번 주간하려고 했다고 하셨는데 왜 이번 주인가요? "9월 9일이 시간적으로 보면 다음 주 수요일이에요. 9월 9일 우리 학교 개교기념일, 즉 학교 생일이니까 재량 휴업일로 정해 쉬는 날이어요.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쉬는 날이기 때문에 그 앞 주를 120주년 기념주간으로 정해서 행사를 계획했던 것이죠." - 120주년 기념행사로 어떤 걸 계획하셨어요? " 처음 계획할 때는 9월 첫 주를 120주년 기념 주간으로 정해서 8월 31일에는 교사, 학생, 동문이 함께하는 120주년 기념 예배를 먼저 드리고, 9월 1일은 선교 부문, 9월 2일은 교육 부문, 9월 3일은 학생운동 부문으로 나눠서 120년 동안의 역사를 부문별로 성찰하고 정리하는 심포지엄을 하고요, 9월 4일엔 동아리발표대회 및 희현 축제와 신흥동문의 홈커밍데이로 정하고 선배 멘토-멘티 행사까지 하기로 했고, 9월 5일에는 총동문회와 학교가 함께하는 기념식을 하기로 했지요. 이때는 정세균 총리님도 오셔서 축사도 할 계획이었어요. 그러나 아쉽게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서 모든 프로그램을 줄이거나 녹화를 해서 온라인으로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 120주년의 의미는 뭐라고 보세요? "120주년은 우리 학교가 어쩌면 하나의 큰 흐름을 한번 바꿀 수 있는 시간이라고 봐요. 특히 우리 학교는 90년사를 편찬하고, 100주년이 되었을 때 90년사에서 정리한 역사의 오류나 미진한 부분을 채워 신흥 100년사를 간행하고자 했는데 못 했어요. 올 120주년을 맞이하여 '신흥학교 120년사'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신흥 120년 역사를 정리하고 새롭게 200년을 준비해 나간다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 신흥학교는 처음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죠? "1900년 9월 9일 레이놀즈 선교사가 당시 16살 김창국이란 학생을 당신의 사랑방에서 가르치는 것을 시작으로 신흥학교가 출발했어요. 당시 기록을 보면 김창국에 대해 훌륭한 학생이란 평가가 나와요. 김창국 학생은 최초의 신흥인으로서, 잘 성장하여 호남지역의 선교를 담당하는 업적을 이루었어요. 신흥 개교 120주년을 맞이하여 총동문회는 최초의 신흥인, 김창국 목사에게 자랑스러운 신흥인상을 수여하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가족인 손자 73회 졸업생 김창배 동문께서 수상할 예정이고요." 진리를 탐구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를 실현한다 - 신흥학교가 3.1운동에 참여하고 한국전쟁 때는 학도병에 지원하기도 했죠? "신흥학교는 전주 3.1만세운동 중심에 있었던 학교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문 앞에 전주 3.1운동 기념비가 서 있죠. 신흥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고 교회로는 서문교회 남문교회 완산교회 교인들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신흥학교 지하실에서 태극기를 인쇄하여 남부시장에 있는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 주면서 만세운동이 촉발된 것이죠. 이번 학생운동 부문 심포지엄에서도 자세하게 다뤄질 거예요. 그리고 학도병 지원도 6.25 한국전쟁 때 고등학교로서는 최고 많은 학생이 학도병에 참전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2012년 육군본부에서 직접 찾아와 우리 학교에 6.25 학도병 참전 명패 증정식을 해주셨어요." - 1937년 신사참배를 거부해서 폐교되기도 했어요. "그렇습니다. 신흥학교는 일제 강점기 때 1937년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과감하게 자진 폐교한 일이 있습니다. 당시 다가 신사로 신사참배를 하러 갔는데, 우리 학생들이 신사참배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하나도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그냥 내려와 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을 두고 일제는 신흥학교를 폐교시키려고 했어요. 그러자 당시 선교부에서 '그럴 필요 없다 우리는 자진 폐교하겠다'고 결정해서, 일본제국주의가 학교를 폐교하려는 강압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스스로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폐교를 선언했던 거죠." -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전국에서 광주 이외 고등학교에서 유일하게 신흥학교가 봉기했죠? "그걸 신흥학교는 '5.27 신흥민주화운동'이라고 명명해서 붙이고 있는데요. 당시 5.18 항쟁 때에 우리 신흥학교는 유일하게 고등학교 학생으로서 항거를 한 학교로 알려져 있어요. 그때 많은 학생이 계엄군의 요구로 퇴학 및 정학을 당하기도 했는데 그 아픔을 딛고 그 동기들이 신흥학교 후배들이 그 정신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우리 학교 뒤뜰에 '5.27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주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5.27 신흥민주화운동은 우리 학생들이 직접 재연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처음 만났을 때 신흥학교 교가와 같은 멜로디인 용진가가 울려 퍼져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잘 알다시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갔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영접하러 나왔을 때 울려 퍼졌던 노래가 용진가였죠. 그 곡이 우리 신흥학교 교가 하고 곡조가 똑같아서 깜짝 놀라 동문이 학교로 전화를 많이 했었어요. 용진가는 북한에서 굉장히 많이 연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용진가와 신흥학교 교가 중 어떤 게 앞선 것이냐는 이야기는 가사를 보면 용진가는 무력항쟁의 가사예요. 그리고 우리 학교 교가는 학생들을 키워서 계몽을 해서 나라를 살리고 애국을 하자는 그런 가사입니다. 그러면 전체적 역사를 살펴볼 때 애국계몽 시기하고 무력항쟁 시기를 비교해 보면, 애국계몽 시기가 앞섭니다. 그렇다고 봤을 때 우리 학교 교가가 오히려 용진가 보다 앞섰을 것이라고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 신흥학교가 한국 현대사에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선교사님들은 선교하기 위해서 학교를 처음에 왔을 거예요. 그러나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선교사들이 주로 하기는 했지만, 한국인 선생님들하고 협력해서 교훈을 지·인·용으로 세웠어요. 지·인·용은 진리를 탐구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정신이어요. 이 정신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학생들이 애국정신이나 민족정신,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이런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학생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한민족의 역사 가운데 어려울 때마다 한복판에 서서 신흥인들이 3.1만세운동도 하고 또 신사참배 거부도 하고 한국전쟁 때에 참전도 하고, 그리고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같이 동참하는 '5.27 신흥민주화운동'을 했다고 생각해요." 신흥 200년을 다시 도약해야 할 시점
"우리 학교가 1908년부터 '신흥'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됐는데요. 신흥은 신 새벽(new dawn), '새로운 여명'이라는 말에서 따온 거예요. 새롭게 흥한다는 뜻이 아니라, 척박하고 어두운 조선 땅에 선교사들이 마음을 먹었던 것은 '이 학생들을 가르쳐서 이 어두운 세상을 빛의 세상으로 바꾸자'는 의미에서 신흥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거죠." - 신흥학교 자리에 조선 시대 땐 희현당이라는 학당이 있었다던데요? "1700년 김시걸이라는 관찰사가 여기에 '희현당'이라는 학문의 전당을 세웠어요. 당시 전주에서 10명, 호남 전 지역에서 20명 등 호남지역의 최고 인재들을 모아서 공부를 시켰어요. 희현당은 전라감영이 직접 관리하는 학교였어요. 모든 숙식비와 학비를 전라감영에서 지원하는 학당이었어요. 그 학생들은 선발할 때 각 지역의 수령이나 이런 사람들이 시험관이 되어 호남지역에 있는 학생들을 선발해서 그 학생을 가르쳤던 거지요. 그리고 그 학생들은 과거 시험을 통해서 관리가 되어 전국 방방곡곡에서 관리로 활동을 했던 거죠. 그 자리에 신흥학교가 이어서 세워졌다는 것은 의미가 있고, 어떤 의미에서 보면 신흥학교는 120년 역사가 아니라 1700년 김시걸이 희현당을 세웠던 터에 우리 신흥학교가 세워졌으니까 성균관대학교처럼 생각한다면 우리 학교는 320년이 된 거죠." - 학교는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잖아요. 120년이면 인재도 많을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우리 학교 역사에 걸맞게 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다 거론하기가 어렵지만, 우리가 서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도 김형민이라고 하는 초대 서울시장이 이름을 붙인 거거든요. 그다음은 안병무 박사하고 민중 신학을 집대성하고 정리한 죽재 서남동 교수도 우리 학교 동문이고요. 중국에서 3대 음악가로 알려져 있는 정율성 작곡가도 동문입니다. 활동을 주로 광주에서 해서 광주에서는 '정율성음악제'를 크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창고등학교를 최고 학교로 성장시킨 전영창 교장 선생님, 교육자로서는 최고죠. 서울대에서 근무하셨던 백병동 교수라고 작곡가로 굉장히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역시 우리 학교 동문입니다. 또 <코리아타임즈>를 창간하고 사장을 지냈으며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하경덕 박사, 이분도 자랑스러운 신흥인상을 수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단 종파 연구가로 이름을 날렸던 탁명환 선생, 또 바울선교회 총재이신 이동휘 목사, 지금 활동하고 있는 분으로는 국회의장을 역임하시고 현재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계신 정세균 총리님을 들을 수 있지요. 또 요즘 <대통령의 글쓰기>로 잘나가는 강원국 작가도 졸업생입니다." - 신흥학교가 역사만 내세운다는 비판도 있어요. "굉장히 날카로운 질문 해주시네요,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부담을 가졌던 부분이에요. 과거 역사 속에 우리는 살 수 없어요. 과거는 과거잖아요. 에드워드 핼릿 카(E. H. Carr)가 얘기했듯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데, 과거 역사를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이번에 제가 기념사에서도 '지금 여기서'를 강조 많이 했어요. 지금 여기서 우리 아이들이 새 역사를 만들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 없다고요." -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려요. "저는 신흥 120년을 맞이한 학교장으로서 신흥 120년사 역사 편찬과 함께 개교 120주년 기념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것보다 큰 중압감도 느낍니다. 왜냐하면 120년은 그동안의 일들을 다 살펴보고 성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신흥 200년을 다시 도약해야 할 시점이거든요. 그러면 제가 그 부분을 우리 선생님들과 5만여 동문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서 한 단계 더 도약해야 될 텐데, 이 부분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준비하고자 하는 것이죠. 이제 앞으로 신흥학교는 지역의 학교가 아니라 지구촌에서 우뚝 서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 선생님이나 학생들이나 5만 동문들이 이제는 더 큰 비전을 품고, 가르치는 선생님은 더 열심히 가르치고 학생들은 더 열심히 배우고, 우리 동문들도 더 열심히 후원하고 섬겨서 신흥학교 200년의 역사를 새롭게 써 갈 수 있도록 열정을 불사르면 좋겠다는 게 제가 꿈꾸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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