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온 편지147(2024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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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송창우 | 등록일 | 24.10.29 | 조회수 |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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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온 백마흔일곱 번째 편지, 2024년 10월 30일 수요일에
꺾인 나뭇가지 / 조향미
나는 한때 내 생이 꺾인 나뭇가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폭풍우가 치고 숲이 휘청거리고 다시 말짱하게 개인 하늘 아래 숲이 몸을 추스르고 정신 차려 보면 그 풍우 속에서도 의연히 버틴 나무들 그러나 가지 몇 개는 부러지고 몇 그루 나무들은 둥치째 넘어져 있기 일쑤다
어찌하랴 우주가 있으므로 풍우가 있고 나무가 있으므로 꺾이는 가지도 있는 것을 저 나무는 튼실한데 왜 나만 꺾였냐고 오래 슬퍼할 일은 아니다 산에는 솟은 봉우리가 있고 가라앉은 골짜기도 있다 오래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있고 먼저 비로 내리는 구름도 있는 것이다 봉우리는 운이 좋고 골짜기는 운이 나쁜 게 아니다 구름은 즐거운 것이고 비는 슬픈 거라고 말해선 안 된다 봉우리는 밝은 햇볕을 쬐고 골짜기는 맑은 물을 품을 것이다 또한 저 구름도 머잖아 비가 되고 이 비도 곧 구름이 될 것이다
꺾인 나뭇가지가 숲에 놀러 온 동네 개구쟁이의 손에 들려 숲을 떠나면 그 아이가 동무들과 신나게 휘두르는 나무칼이 될 수도 그 어머니 맵차게 후려치는 회초리가 될 수도 있겠지 숲에서 다람쥐와 넝쿨 식물의 즐거운 버팀목이 되었지만 이제 마을에선 한 아이의 삶을 받드는 지렛대가 될지 모른다 설사 아궁이에 던져져 하룻밤 불쏘시개가 되어도 그 더운 연기는 넓디넓은 우주 속에 스며들 것이다 그리고 다시 우주는 한 그루 어린 나무를 키우리라
《칠판에 적힌 시 한 편》(창비, 2011)
▷ 10월 29일, 하느님이 천사들과 이태원참사 추모제에 갔습니다. “하늘은 저렇게 파랗고 구름은 저렇게 하얗고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다운데 유가족들은 저 하늘을 얼마나 원망할지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려요.” 하느님이 눈물을 글썽이자 세실리아 천사가 말했어요. “오체투지, 삼보일배, 159배, 1만 5천 배를 해도 어찌 슬픔이 떠나겠어요.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도 그들을 위해서 오늘만큼은 꿈쩍도 않고 기도를 해주리라 믿어요. 오늘 밤은 나무의 뿌리도 가지도 한 뼘씩은 더 자랄 거예요.” 마르첼리나 천사가 말했어요. “거리에서 숨을 못 쉬고 죽은 자식들을 떠올리는 엄마아빠는 골목 위에서, 눈 쌓인 아스팔트 위해서 온몸으로 절을 하며, ‘우리 아들이 거리에서 죽었는데, 그래 내가 여기서 죽어도 좋다는 다짐으로 악착같이 버티자’고 지금도 거리를 떠돌고 있지요. 그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 숲속의 대왕참나무도 팔다리 같은 나뭇가지를 떨구며 오늘밤은 스무이레 달님과 밤을 지새며 그들을 위로하는 추모제를 지낼 거예요.” 마리아 룻 천사가 성호를 그으며 말했어요. “여기 벚나무는 사월에 꽃을 피워 온몸으로 4·16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 제를 올리더니, 이제는 두 번째 꽃인 단풍으로 피어나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를 위해 곡(哭)을 울리는군요. 머잖아 대지에 내려와 느티나무 뿌리를 덮어줄 상여꽃 같은 붉은 단풍잎은 엄마아빠를 위한 자식들의 웃음꽃일지도 몰라요, 엄마아빠 탓이 아니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잠시 눈물을 멈춰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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