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온 편지146(2024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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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송창우 | 등록일 | 24.10.28 | 조회수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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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온 백마흔여섯 번째 편지, 2024년 10월 29일 화요일에
연탄 한 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들선들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 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하느님과 천사들이 독거노인을 위한 연탄 봉사를 하러 아침 일찍 시골 마을에 도착했어요. 한 집 걸러 빈집이 군데군데 있는 마을 골목 입구에는 연탄을 가득 실은 트럭이 대기하고, 골목 안에는 연탄을 나르기 위해 길게 줄은 선 자원봉사자들이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지요. “땅속 깊이 박혀 있던 연탄이 이렇게 세상 구경을 하니 기분이 좋겠어요. 우리도 연탄을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께 전해드리는 기분이 좋아요.” 하느님 말씀에 세실리아 천사가 말했어요. “지하 막장에서 땅 위로 솟아오르는 기쁨을 누가 알까요? 22개의 구멍에서 나오는 환호성이 들리지 않나요? 사실 알고 보면 우리도 우주라는 암흑의 갱도에서 구출된 기적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마르첼리나 천사가 말했어요. “맞아요. 연탄을 만들기 위해 석탄을 캐러 들어가는 갱도의 깊이는 보통 1000m나 되고, 냉방장치를 해도 습도와 온도가 한여름의 폭염처럼 고통스런 작업이라고 해요. 우리나라의 막장 길이만 해도 500km가 넘어 서울지하철 노선보다 길다고 해요. 그 속에서 해방되는 연탄의 열락을 누가 제대로 알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보다 더한 연탄의 설렘은 다른 데 있답니다. 온몸을 전부 태우고 난 후에 하얗게 변신하는 기쁨 말이죠. 미백의 치아를 원하고 뽀얀 얼굴을 하려고 비싼 돈과 위험을 무릅쓰고 온갖 성형을 하는데, 연탄보다 완벽한 것이 어디 있겠어요? 온몸을 불살라 가장 낮은 바닥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새까만 몸을 다 태우고 나면 뽀얗게 변하는 자신을 보고 얼마나 놀라겠어요. 이런 보람과 기쁨을 맘껏 누리는 연탄의 해피엔딩은 연탄 말고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거예요. 연탄에 구멍이 저렇게 많지 않다면 아마도 그 기쁨을 뿜어내지 못해 아궁이 속에 들어가기도 전에 숨 막혀 죽을지도 몰라요. 남을 위해서 뻘뻘 땀 흘리며 일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열락 아니겠어요?” 마리아 룻 천사가 말했어요. “기후 위기 대응으로 연탄에 보조금이 없어지면서 1장에 천 원도 못가는 신세로 떨어져, 연탄 산업도 사양길로 들어섰지만 연탄이 세상에 나오는 까닭은 좀더 깊은 뜻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바로 연탄의 검은 색깔에는 모든 황홀한 색깔이 들어 있다는 거죠. 새까만 연탄을 캐고, 연탄을 만들고, 연탄을 나르다 보면 옷도 얼굴도 손도 새까매지지만 그런 고통이 없다면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는 결코 볼 수 없다는 것을 연탄은 가르쳐 주고 싶은 거지요. 가장 낮은 밑바닥에서 온갖 더러운 물을 다 받아 주지만,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바다야말로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가요. 낮고 깊은 아궁이에서 따뜻한 불길로 바닥을 덥혀서 밑바닥 인생들을 품어주는 시커먼 연탄들이 하느님의 다른 얼굴 아니겠어요?” 하느님 입술이 살포시 열리더니 가느다란 목소리가 새어나왔어요. “빙고~”
▷ 시월의 마지막 화요일입니다. 아쉬운 화요일을 멋진 화요일로 우리 함께 바꿔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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