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奇男子'의 奇行을 칭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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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성태수 | 등록일 | 09.01.31 | 조회수 | 1223 |
열등한 자의 비열했던 역사는 '반드시' 후세에 전해집니다.. 장래의 두 정신병자들은 무럭무럭 크고 있겠지요~
'For wonderful day of you' of you든 your든 표현에 있어서의 사소한 실수는 중요하지 않다. 부모라면 자식에게, 스승이라면 제자에게, 벗이라면 그의 벗에게, 어쩌면 대상의 능력 너머에 있을 경이까지도 기원하는, 인간미 듬뿍 담긴 축원이다. 하지만 표현은 역시 꾸밈에 불과한 것일까.
동일한 기회를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좋지 못한 머리를 가진데다가 태만하고 나약했던 그는, 자신이 하염없이 바라만 보던 이상, 그냥 선생이 아니라 의사 선생이 되고 싶었다는 그것을 제 욕심껏 쟁취하지 못한 채(실제로 그가 의대를 지망했었는지의 여부에는 의문이 들기도 함), 그럼에도 자신은 본디 다른 곳에 있었을 사람이라 여기며 차별화 전략을 시도해봤으나 그마저도 사기와 협잡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한 초기 증세가 갈수록 악화되어 자기보다 조건이 나은 특정인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그 특정인의 이상을 의심하거나 막무가내로 부정하지 않고는 자신의 육신마저 안정을 취하지 못할 위독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는 그렇게 병들어 갔던 것이다.
그는 약이 올라 견딜 수 없었다. 남들보다 못한 조건(그것이 의지력이든 지능이든), 그 조건에 의해 맺어진 학벌, 다시 그 학벌에 의해 맺어진 사회적 지위와 명예, 개인의 성취감 등에 대한 불만이, 20대를 보내고 30대의 반을 꺾어 애 아버지가 될 때까지도 그의 내면에 불안하게 잠재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특정인의 자극에 의해 되살아나면서 그는 다시 괴로워했다. 그는 그 특정인을 대상으로 화풀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화풀이에 있어서도 자신의 귀속 지위가 스스로를 제약하기에, 우매한 그가 특정인을 상대로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방도는 따로 없이, 주위 사람들을 선동하고 상황을 조작하며 그 특유의 저능함으로 약아빠진 흉계를 꾸며 거기서 고소함을 느끼는 게 고작이었다.
또한 그의 세계관은 두루뭉술 그 자체이다. 그에게 '확실함'이란 부담을 주는 요소일 뿐이다. '일 곱하기 이'를 삼이라고 우기다가, 자신이 틀렸음을 알게 되면 슬그머니 x를 +로 돌려 놓는다. 그의 시야는 늘 그렇게 뿌옇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해놓고 일단 넘어갔다 생각되면 당당해진다. 자신의 딸자식, 마누라, 모친까지도 팔면서 태연하게 우긴다. 어쩌면 그는 호구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순해빠진 사람이기도 하다. 궁지에 몰리면 금세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 같은, 그게 연기만은 아닌 여성성도 지니고 있다. 그의 무모한 경쟁심과 심술이 그러한 그의 여성성과 경합하며 보이는 추태는 특정인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키고 남는다. 특정인으로서는, 그렇게 이중적인 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가 애매했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가를 톡톡히 치른 우매한 그는 앞으로 소시민의 소박한 일상에서 작은 행복이나마 건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겠으나 그러한 자세가 남은 그의 반평생을 지속할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너무 분한 나머지 넋나간 사람처럼 부르르 떨더라는 그 우매한 모습에서 어쩌면 또다시 비슷한 흉계를 꾸밀 소지가 얼핏 보이긴 하나, 한번 시도한 방법으로 재차 상대를 낚아채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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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복의 형수, 즉 만돌의 아내는 조그만 미인대회 출신이었다. 지역의 특산물을 팔기 위해 그것의 명칭을 따 '곶감 아가씨'니 '호두 아가씨' 따위로 불리우는, 해마다 각지에서 으레 열리는 볼품없는 규모의 행사였으나, 그렇다고 가진 밭뙈기 하나 없이 소작이나 짓던 만돌에게 그만이나 한 색시를 얻은 것은 순전 장님 문고리 잡은 식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어쨌거나 칠복은 형 만돌이 그렇게 신통할 수가 없었다.
"우리 형수가 '곶감 아가씨 뽑기'에서 자그마치 2등을 했었어! 2등! 천하절색이란 말이여!" .... 물론 의좋기로 동리에서 소문난 형제인 만큼, 칠복이 남몰래 형수를 사모하여 형인 만돌을 시기한다든지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볼품없는 제 색시를 마다하고 칠복은 어느새 마음 속으로 형과 둘이서 형수를 공유하는 데에까지 이르렀으니, 그러한 자신의 속내를 형이 눈치채는 날이면 아무리 혈육지간에라도 그만한 창피가 없는 것이다. 형제간에라도 공유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형으로서는 공들여 농사를 지어놨더니 어느 밤에 누군가가 벼 이삭을 싸그리 다 뽑아놓는 참사가 일어났는데 그것 역시 동생 칠복의 소행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형으로서는 그러한 동생의 작태가 심히 기이하게 여겨질 뿐이었다. 과연 칠복은 무슨 연유로,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형의 논에 들어가 그런 기행을 일삼았을까?
사람이 제대로 생겨먹질 못하고 그리 엉뚱하며 멍청하다 보니, 늘 치이며 산다. 주로 손아랫사람들에게 농락당하는데 앞으로도 그의 인생 자체가 굴욕의 연속일 수밖에 없음이 훤히 보인다. 그가 제자들에게까지 존경받진 못하더라도 가정에서나마 아버지와 남편의 위신을 잃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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