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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4.3.7 [심리톡톡 나와 만나는 시간]
작성자 김기애 등록일 14.03.13 조회수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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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톡톡, 나와 만나는 시간](2)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치유할까. 단연 공감이 꼽힌다.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30대 중반 여성이 어렵게 얻은 아기를 불치병으로 채 백일도 안돼 잃고 말았다. 비통해하는 그에게 남편과 친정 식구들은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아기를 잊으라”고 말했다. 1년여 지난 어느 날 그가 너무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정신과 문을 두드렸다. 의사의 첫 질문은 “아기 이름이 무엇이었나요”였다. 아기 엄마는 통곡하며 속이야기들을 꺼내놨다. 그러면서 또렷이 느낀 감정은 아기의 존재를 무시했던 주변 사람에 대한 분노였다. 주변의 위로가 고통과 상실감에 빠진 그에게는 공감이 아닌 상처가 됐던 것이다.

공감은 단순하면서도 어렵다.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공감은 아니다. 상대에게 내 존재 자체가 온전히 다 받아들여졌다고 느껴야 내가 그에게 공감한 것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평가받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함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 자기 감정이 떠오르고 치유가 일어난다. 공감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질문 2번 하신 분. 아이들은 6~7세 넘으면 또렷한 자기 생각이 있다. 꼬투리 잡는 느낌이 없는 질문에는 자신의 이야기로 응답한다. 개인적으로 세 아이를 키우면서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아이의 생각을 궁금해하면 된다.

정신과 의사 훈련에는 자기치유가 포함된다. 내 안의 유치한 욕망들과 꺼내보기 부끄러운 감정들을 그 과정에서 보게 된다. 누구나 상처가 있고 심리적으로 왜곡된 부분이 있다. 나는 직업상 그런 것들을 열심히 대면하고 치유받는 과정을 겪다보니 어떤 경우를 봐도 화가 잘 안 난다. 분노는 하지만 그 분노 때문에 고통스러울 정도로 감정에 압도되지 않는다. 질문 7번 하신 분. 나를 자꾸 들여다보면 타인에게 폭넓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괜히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나 받는 것 없이 좋은 사람은 다 자기 문제다.

상담과 치유를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나는 ‘조언이나 충고, 판단이나 평가를 멈추고 계몽이나 교훈을 멈추는 순간 치유가 시작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자식과의 대화, 부부 간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충고 빼고 할 말이 없다면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없구나’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된다.

질문 5번 하신 분, 스무 살 딸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겠지만 참으시면 된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얘기를 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 이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말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엄마가 아무 말 않고 “네가 그런 상황인 거 같아서 마음이 안타깝다” “뭐라고 해줄 말이 없네”라고 하면 ‘엄마가 나를 비난하지 않았구나, 나를 평가하지 않았네’ 같은 많은 메시지가 전달된다. 계몽과 교훈은 거의 반동적으로 거부감을 부른다. 일방적으로 나온 모든 말은 무의식적으로 튕겨져 나간다.

한 회사는 ‘인간 존중’을 사훈으로 두고 있더라. 그러다보니 존중과 관련된 사내 정책이 많았다. 기념일도 챙겨주고 생일도 챙겨준다. 그렇게 사람들은 ‘방법’을 통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공감은 무의식적이다. 설명이 필요한 게 아니다. 내가 공감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방법론에서 찾는다면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할까 고민한다면 내가 공감을 진짜 못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자기 성찰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질문 1번 하신 분. 심리적인 고통이 있을 때 정신과 의사와 곧장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중간에 일상에서 공감을 해주는 사람만 있어도 여기에서 문제의 90%는 해결된다고 본다. 치유의 본질이 그렇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은 달에 가는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 물 길어 나르는 아프리카 여성과 아이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물항아리 같은 ‘적정 기술’이다. 그처럼 적정심리학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공감’이다. 사람이 가장 절실한 순간 생각나는 것이 최고급 요리가 아닌 집밥인 것처럼 ‘공감’이 인간에게 더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심리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치료하자고 하면 그들은 화를 낸다. 자신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만 같아 받아들이기를 꺼린다. 그 마음부터 이해해줘야 한다. 남편에게 “그동안 왜 힘들었던 것을 얘기 안 했느냐”고 하면, 남편은 아마 “내가 어떤 마음 때문에 이야기 안 했는지 전혀 모르는구나” 하는 서운한 마음에 더 상처를 받을 것 같다. 부인은 미안했을 것이고 남편은 책임감에 힘들었을 것이다. 그 ‘괄호’ 속에 숨겨둔 마음이 통할 때 진정한 대화가 이뤄진다. 사람은 끝까지 자기의 감정을 두려움 없이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비난하지 않고 공감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가진 심리적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 순간 내가 그 사람에게 치유자인 것이다.

질문 3번, 6번 하신 분. 온전한 공감을 받는 인간관계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공감을 하기 어렵다. ‘엄마성’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누구에게나 엄마처럼, 내게 온전히 공감해주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깊은 공감과 충분한 인정과 사랑 덕에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내 문제와 내 문제가 아닌 것을 구분짓는 치열한 연습이 필요하다. 고문 피해자처럼 명백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의 경우에도 명백한 가해자가 있는데도 자책과 자기비하감에 빠진 경우를 보곤 한다.


원래 내 문제인데 상황판단을 잘못해 남 탓을 하게 될까봐 걱정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자기 성찰은 물론 큰 틀에서 중요하지만,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다.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이 아니라면 무의식적 건강성에서 균형감각이 발현된다.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생긴다. 상담하다보면 대부분 남 탓 하기보다는 자기 탓을 하다가 망가지는 경우를 압도적으로 많이 본다. 내 문제인 것과 아닌 것을 잘 구분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나는 ‘노력’을 별로 믿지 않는 편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요즘 자기계발서에서 노력 강조하는데, 노력하는 건 어쩌면 에너지를 헛되이 쓰는 것이다. 지나치게 노력하며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 한껏 놀다가도 공부하게 되고, 창의적인 에너지도 생긴다.

그리고 질문 4번. 공감을 많이 하다보면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셨는데, 젊은 시절 트레이닝 초기에 그런 적이 많았다. 나는 상담할 때 많이 우는 편이다. 끔찍하고 힘든 얘기를 들으면서 그 감정에 압도되어 공명하는 상태를 느낄 때가 있다. 깊이 공명함으로써 내 힘이 되고 용기가 되고 더 깊은 얘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되레 내가 어마어마한 기를 얻는다. 직업 치고 이런 직업이 없다. 정말 큰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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