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 경건회 시간-오늘 이 시대에 어른다움은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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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한승진 | 등록일 | 22.11.21 | 조회수 | 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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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시대에 어른다움은 무엇일까? 에베소서 6장 4절-어버이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며 잘 기르십시오. 나이가 든다,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어려서는 나이가 많아지는 걸 바랐다.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차단되는 것들에 대한 불만과 동경도 많았다. 꼭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19세 미만이라고 술과 담배를 살 수도 없고 19세 미만으로 제한된 영화는 볼 수도 없다. 또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릴 유권자의 권리인 투표도 할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부모님이 가라고 하는 곳에 가야만했고 종교도 부모님이 정해준 것만 허용되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과 사회적 책임의 영역에서 배제된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친구들 중엔 이런 배제에 거부하듯이 일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일로 더러는 처벌을 받기도 하고 더러는 교묘하게 피해가기도 했다. 나는 용기가 없어 그러지 못하고 꾸욱 참고 참았다.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갔다. 드디어 내게 주민등록증이 교부되었고 투표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주어진 어른의 시기는 감격시대만은 아니었다. 그토록 어른 되고 싶었고 이제 되었는데 어른의 기쁨은 잠시이고 어른으로서 짊어질 부담과 책임과 불편함이 엄습했다. 그제야 어릴 때가 좋았음을 깨달았다. 어릴 때는 돈을 벌어야한다는 부담이 없었다. 우리 집의 가정환경이나 지역사회나 나라 걱정도 없었다. 이는 모두 어른들의 몫이었다. 처음 어른이 되어 느낀 부담감과 책임감은 나이가 들수록 더해져만 간다. 이제 나는 한 가정의 남편이고 아버지로서 가정을 책임져야한다. 사회에서도 목사와 교사라는 직책과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한다.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역에 봉사도 하고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우리나라가 잘되도록 염원하면서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으로 살아가야한다. 어느새 내 나이 오십대 중반 대에 이르렀다. 세월을 가리켜 쏜 살과 같다더니 그런가 보다. 지난 날에 대한 후회와 자책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때도 많다. 그러나 그럴 수 없음을 잘 안다. 한 번 흘러간 시간은 돌이킬 수가 없다.
인생은 연습 삼아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게 처음 해보는 일이다. 그러니 실수연발이고 실패의 연속이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교육을 받고 자격을 취득해서 교사가 되었다. 21년 동안 한 학교에서 교육을 해왔는데도 교육자적 자질은 늘 부족한 것만 같고 아이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남편과 아버지는 이에 대한 준비나 교육도 없이 된 것만 같다. 교사는 교사자격증을 취득해서 교사자격으로 임하는 데 남편이나 아버지는 자격과정을 거치지 않은 무자격으로 임하고 있다. 언젠가 부부나 부모도 그에 대한 전문교육을 시켜서 자격을 취득하고 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을 본 적이 있다. 다소 뜻밖의 주장에 황당함도 있었으나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교회나 민간단체 등에서 결혼예비학교나 부모교실이나 아버지학교 같은 프로그램을 하는 걸 보니 그럴 필요성이 느껴졌다. 사실 나도 처음 해보는 남편과 아버지이다보니 늘 서툴고 미흡하다. 얼마 전 교육기관에서 4회에 걸쳐서 “아버지들의 수다”라는 주제로 일종의 아버지학교를 한다기에 참여하고 보니 참 좋았다.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아버지로서 나를 이해하고 아이들을 이해하는 너그러운 마음을 조금은 갖게 되었다. ?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다움은 무엇일까? 요즘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질문이다. 우리 집 아이들이나 내가 가르치고 함께하는 아이들은 나를 어떤 어른으로 생각할 까? 한 해 두 해 나이 들어가다 보니 아이들과의 나이 차가 점점 벌어진다. 아이들의 생각과 감정과 의견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데 쉽지 않다. 내가 가르치는 중학교 아이들과 나는 40여년의 차이가 난다. 그러니 내가 아이들을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할지 모른다. 내가 살아온 세월은 내게는 소중한 추억이고 교훈이지만 이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면 별 나라 이야기로 공감이 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나 때는 말이야~”는 자기 무덤을 파는 꼰대대화법이다. 엄청난 나이 차이에도 아이들이 나를 밀어내지 않는 것만도 감사하게 여겨야한다. 내 맘 같지 않지만 꾸욱 참고 기다려 주어야한다. 요즘 내가 되뇌이는 말이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네.” “말을 줄이고, 듣기를 즐겨하기.” “고정관념과 선입견 금지” 휴... 어른노릇도 참 힘들어졌다. 어른으로 존중받고 존경받는 걸 당연시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신인류들과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이들을 노엽게 말고 이들의 심기를 건들이지 말고 이들을 존귀히 여기면서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한다. 이제는 어른들이 지시하고 지도하고 강요하는 시대가 아니다. 조심스럽게 도와주고 함께해야만 한다. 이런 의식의 전환이랄까 낮아짐의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이런 자세가 오늘날 어른다움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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