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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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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 경건의 시간-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작성자 한승진 등록일 22.11.07 조회수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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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무엘상 167절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겉모습이나 키를 보지 마라. 나는 그를 이미 버렸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르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여호와는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우리는 사람을 선택하고 중요성과 가치를 평가할 때 눈에 보이는 서류를 중요하게 본다. 이것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측면이 있다. 채용에 있어서 서류 한 줄에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성실한의 증명이고 능력의 입증이고 미래의 가능성이다. 그러니 서류를 중요하게 보는 것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서류에 다 담을 수 없는 그 사람의 능력, 성품, 잠재력도 있다. 또한 서류의 내용으로 인한 선입견이 자칫 공정성을 훼손할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외모나 집안도 전부는 아니다. 물론 사람의 인상과 자라온 집안 분위기는 그 사람을 아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다는 아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주관적인 경험과 편견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규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규정짓는 학력과 외모와 집안환경 등을 중요하게 볼 수는 있으나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 그것에 가려진 것들이 있음을 알아야한다. 자칫 우리가 선입견과 사회통념과 단편적인 인상에 사로잡혀 사람의 진면목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미국은 대통령을 평가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고 한다. 출신 가문과 출신학교, 경제력, 배우자의 지성과 인격 등이다. 이런 기준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평가된 사람이 존 F.케네디이다. 그는 경제력을 갖춘 명문가의 출신에 하버드대학 출신자였다. 반면 가장 맞지 대통령이 바로 아브라함 링컨이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 출신으로 명문 대학은커녕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오늘날까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고 존경하는 대통령은 케네디가 아니라 링컨이다. 케네디도 훌륭한 대통령이었지만 링컨만은 못했다는 평가이다. 왜 그럴까? 탁월한 외모와 젊음과 경제력과 학력과 배우자의 조건 등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데 말이다. 케네디에 비해 링컨은 너무도 부족한 것 투성이다. 대통령이 된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케네디는 매사에 자신만만하였다. 자신이 워낙 뛰어나다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더 믿었다. 이런 자신감은 좋으나 그것으로 인해 집단지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에 반해 링컨은 자기 자신이 부족함을 잘 알다보니 자신보다 뛰어난 인재들을 존중했고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에게 일을 맡긴 지도자였다. 어느 국민이 링컨의 외모가 날카로워 보인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수염을 길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우리가 잘 하는 항우와 유방의 경우도 그렇다. 항우는 명문가 집안 출신으로 힘이 장사였다. 이것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그는 매사에 자신만만했다. 그로 인해 동료는 없고 부하만 있었다. 그에 반해 유방은 가난한 농부 출신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았다. 이것이 단점이자 장점이었다. 그는 매사에 그 어떤 사람의 이야기도 존중하고 경청했다.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여기고 함께하는 이들을 부하가 아닌 동료로 스승으로 여겼다. 그 결과 처음엔 항우가 우세했으나 결국 유방이 항우를 꺾고 한 나라를 세웠다. 이런 예는 우리가 아는 역사와 현실에서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다.

 

성경은 겉모습이 아니라 중심을 보아함을 전한다. 사무엘상 167절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겉모습이나 키를 보지 마라. 나는 그를 이미 버렸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르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여호와는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우리가 지혜롭다고 자부하면서 겉모습과 서류로 사람을 선택하고 평가해선 안 된다.

 

고린도전서 127절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고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와 조건이 다가 아니다. 자칫 그것에 마음을 빼앗겨 낭패를 볼 수 있다. 보이는 것 그 너머의 가능성과 깊이를 볼 수도 있어야한다. 더욱이 우리가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더욱 그렇다. 지금의 모습, 지금까지의 모습이 미래도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그러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추측일 뿐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달라질 것으로 믿어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 희망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다르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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