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경건의 시간(가족의 소중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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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한승진 | 등록일 | 22.05.02 | 조회수 | 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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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경건의 시간(교목 한승진 목사)
가정의 소중함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장 1-4절) 아이들이 코로나에 걸리면 대부분 부모나 조부모가 걸린다. 아이들이 무섭다고 하는 데 격리조치하고 떨어져 지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안아주고 같이 있어주다 보면 여지없이 감염되고 만다. 이를 뻔히 아는데도 확진된 아이에게 손 내밀고 안아주는 그 마음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다. 필자도 그런 경우이다. 우리 집 막내아들은 무섭다고 늘 아빠랑 같이 자는 아이이다. 확진으로 가정에서 격리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혼자 자기 무섭다고 하여 제가 좀 떨어져서 마스크 쓰고 같은 방에서 잤다. 그 날 바로 감염되었다. 필자는 자식으로 인해 확진되었다. 막내는 미안해하는데 필자는 전혀 막내를 원망하는 말이 안 나왔다. 자식을 원망하는 마음이나 생각이 없었다. 감염된 이후 막내와 대놓고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미안해하던 막내는 물 만난 고기마냥 신이 났다. 필자와 막내는 증상도 비슷하니 막내가 더 좋아했다. 어려울 때, 외로울 때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우리 집은 농촌마을이다 보니 주변에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한다. 자녀들이 도시권으로 취업과 결혼으로 떠나고 나니 연로한 부부만 남은 것이다. 이런 걸보니 필자도 제 아내에게 잘해야겠단 생각을 해본다. 나중에 늙어서 자녀들은 다 떠나면 부부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에겐 소중한 가족이 있어 복된 삶이다. 늘 필자를 위해 매일 새벽기도하시는 어머니. 말은 별로 없으시나 아들 걱정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필자에겐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 가족은 내 삶의 이유이고 참된 가치의 별견이다. 때론 사랑하는 아내를 이해 못해 말다툼도 하고 그런다. 집안 일에 게을러서 핀잔도 받는다. 그래도 필자를 버리지 않고 데리고 살아주는 아내가 고맙다. 서툰 아빠인데 함께해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겨본다. 바라기는 가족처럼 사랑스러운 직장, 사제동행이면 좋겠다. 우리는 잠 자는 시간 빼곤 가정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직장에서 보낸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부모님의 사랑, 형제자매의 사랑을 되새겨본다. 우리 학교 아이들 중에는 가족의 사랑이 아쉬운 상황들이 많다. 이 아이들에게 부모일 수는 없지만 부모의 마음으로 조금 더 다가가면 좋겠다. 또한 우리 주변에 가족의 사랑이 부족하거나 결립된 이웃을 돌아보면 좋겠다. 우리 주변에 고아원이나 장애복지시설, 노인요양시설이 많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돌아보면 어떨까 싶다. 오늘 필자는 우리 집과 결연을 맺은 고아원에서 생활하는 아이에게 선물을 보냈다. 어린이날을 맞아 작은 선물이나마 보냈다. 크고 거창하게가 아니라 그저 한 달에 한 번 선물을 보내고 기회 봐서 방문하는 결연이다. 너무도 작고 가끔이기에 자랑하거나 이야기하기도 부끄럽다. 그러나 안 하는 것보단 낫단 생각에, 우리 집 아이들에게도 소중한 교육이라는 생각에 실행해본다. 우리 가족이 누릴 행복을 조금만 덜 누리면 나눔이 가능하다. 그 나눔으로 우리 가족도 더 행복해진다. 나눌수록 나를 넘어서는 행복으로 세상을 조금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박목월의 시가 생각난다. 가정(家庭) 박목월 ? 지상(地上)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 1968> 이 시는 힘겨운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생활인으로 돌아온 시인이 아버지로서 고통을 토로하는 한편, 자식들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스스로 확인하는 작품이다. 이 시는 하루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어느 소시민 가장의 일상을 그렸다. 그러나 시적 차원에서 보면 다르다. 그것은 시인이 이를 통해 인생의 의미 혹은 사랑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은 같은 피를 나눈, 자기희생적 사랑의 인간관계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모든 가정은‘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꾸며진다. 즉,‘집’은 가정을 영위하는 물질적 토대이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삶은 가정과 집의 조화로운 합일에서 가능하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물질적 토대인‘집’이 만족할 만큼 가정을 감싸 안고 있지 못하다. 아니, 오히려 궁핍과 고통에 처해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3연)‘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여기는/지상’과 같은 표현이 그것이다.‘가정’은‘집’의 위기상황에서도‘가정’의 가치를 소중하게 지켜 나가는 꿋꿋함과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집’이 당면한 고난을‘가정’의 자기희생적 사랑으로 극복해 가는 삶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어설프고 설익은 아버지다보니 늘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내게 소중한 가정을 주심에 감사하면서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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