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샘(문예창작)

글샘

*글이 끊이지 아니하고 솟아 나오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꿈과 글이 샘솟는, 문예창작 동아리 입니다.

마지막 릴레이.

이름 송애숙 등록일 13.11.07 조회수 690

오랜만의 흥분으로 인해 떠올리기 싫었던 기억들은 내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 놓았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다 나가고 난 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내게 이재원이 다가왔다. 이재원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어릴 때부터……남자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

“…….”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있었는데 항상 그러지를 못했어. 성격이 꽤나 소심하거든.”

“.....”

“그래서 항상 괴롭힘을 당했어. 네가 전학 오기 전에도 난…….”


이재원은 말을 잇지 못하며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다 다시 말을 이었다.


“한민지가 망을 봐주면 괴롭히지 않겠다고 했어. 나쁜 짓인 거 아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어.”


이재원의 기분이 어땠는지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을 것만 같아 입술을 깨물었다. 떠올리기 싫었던 기억의 향연들은 자꾸만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 뒤로 다시 내 이름을 되찾았으니까. 적어도 이재원이라고 불러줬으니까.”

“그 말을……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나는 가까스로 되물었다. 이재원의 눈빛에는 텅 빈 공허함 같은 것이 있었다. 그 눈빛이 자꾸만 나를 찌르는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차피 내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니까…….”


이재원은 작게 중얼거리며 등을 돌리고는 교실을 빠져나갔다. 문을 닫으며 이재원이 했던 작은 목소리가 나의 귀에 박혀 빠지지를 않았다.


“너는 어쩌면 다를 줄 알았는데…….”


‘너는 어쩌면 다를 줄 알았어.’


그 전에도 이와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내 기억 속의 나는 그렇게 소리쳤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너랑 같이 놀아주기를 바라? 그럼 나는? 나도 같이 왕따 당하라고?’

‘세현아.’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 내가 너랑 친했다고 해서 같이 죽을 수는 없잖아!’


떠올랐다. 결국 기억하기 싫었던 그 끝은 너무나 아픈 것이었다. 그 때 그 아이 이름도 재원이었다. 눈물이 차올랐다. 그 아이의 눈빛이 떠올라서, 더 이상 서있을 수가 없어서 나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미안해…….”


지켜주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우정을 맹세했던 나는 먼저 그 아이에게 등을 돌려버렸다.


계속되는 악몽에 잠을 여러 번 깼던 것 같다. 학교를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재원은 내게 아무 말도 걸지 않았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한민지는 내게 다가오더니 나오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나는 이재원을 바라보았다.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나는 끝내 묻지 못하고 한민지를 따라 나섰다.


“어제 일은 신경 안 썼으면 좋겠어. 네 물건은 돌려줄게.”


한민지는 내 물건을 내밀고는 턱을 조금 치켜 올렸다.


“입 다무는 게 좋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한민지는 자신의 말만을 끝내고는 뒤돌아섰다. 그 모습이 묘하게 겹쳐 나는 킥킥. 헛웃음을 터뜨렸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이재원은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지금 이 아이 손을 잡고 이곳을 나갈 수 있다면. 한민지는 이런 애이다. 떠들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여기를 벗어날 수만 있다면. 순간적으로 충돌이 일었다. 떠나버린 재원이에 대한 미안함과 이재원의 텅 빈 눈빛이 뒤섞여 나를 방말이질 쳤다.


“세현아, 오늘 1교시 뭐야?”


다정하게 물어오는 다솜이의 말로 인해 내 생각은 끊겨 버렸다. 어, 어? 어수룩하게 되물은 나는 혹시나 내 생각들이 들켜버릴까 조마조마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그 전의 나로 되돌아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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