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샘(문예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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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 김유진

이름 김유진 등록일 13.11.04 조회수 820

감기 - 2506 김유진

 

 

 

몇일 전부터 정신이 몽롱하다. 콧물, 기침, 두통. 

입에선 시큼거리는 맛이 돌아다닌다. 그렇다고 누워있을 수만은 없다.

일어나 밖으로 나가야 한다. 감기가 심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차가운 공기를 마주해야 한다.

 

  앞이 흔들거리고 흐릿하다. 안개낀 듯, 꿈 속인듯, 선인의 세계인 듯, 체르노빌인 듯.

무엇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아도 걸어간다. 깊숙히, 또 깊숙히.  

어디를 향해 걷는걸까. 그저 발 가는 대로. 아, 바른 뇌로 인해 움직이지. 그러면 뇌가 가는 대로.

아, 뇌는 마음이지. 그래, 마음가는 대로. 하지만 내 마음은 어디를 가기를 원하지? 무언가를 갈망하고는 있나?

  그저 뜨거운 몸을 식히기 위해 걷는건가.

 

 걸음이 점차 흐느적해진다. 그래. 약을 먹자. 약을 먹고 맑은 정신으로 걷는거야. 약을 먹으려면 약국에 가야지.

목적지가 생겼다. 그렇다 하여도 발은 빨라지지도, 똑부러지지도 못한다. 그래. 그럴 필오갸 있는가?

모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되는 것을. 조금 돌아가지도 않고, 제대로 된 길로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걷는 것이

 뭐 어떻다고.   세상사는 100년동안 이깟 시간 아쉬워 서두를 필요가 뭐있을까.

 

  그래. 나는 약국을 지나쳤다.  그렇다고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

그냥, 천천히. 또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아니요,

머무르는 것도 아니지만 구지 약을 먹어 제정신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나.

 

  아니 어쩌면 이게 제정신이고 약이 환각제일지도. 너무 뚜렷해 현실같은 꿈인 마약일지도.

걷는 걸음의 속도가 빨라졌다 느려졌다 한다.

그래, 멈추지만 않으면 되지.  멈추면 눈바람에 파묻혀 다시는 움직이지 못하게 될지도.

  아, 어쩌면 멈추는 것이 현명한가.

 

  저 앞에 눈 무덤이 보인다. 움직임 하나 없이 그저 짐덩어리인냥 땅에 파묻혀 간다.

그래, 일어나지 말아라. 그 곳에선 감기 걸린 채 평생 눈 감을 수 있지 않은가. 

몸이 점점 더 뜨거워져 온다. 덥다. 더워. 외투를 눈무덤 위에 올려두고 그 옆에 나도 누웠다.

 

 자, 눈들아. 나도 덮어다오. 영원히 감기에 걸리도록, 나를 묻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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