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신경과학자 야크 팬크세프는 실험실의 쥐도 기쁘면 웃고 자기가 신뢰하는 인간과 교감하며 우정을 나눈다는 사실을 최초로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즉 동물(포유류)과 인간의 감정 구조가 뇌 신경학적으로 같아서, 동물의 감정을 연구하면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자폐증 등 다양한 감정질환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주립대
인간이 아닌 다른 포유동물에게도 감정이 있다. 그들도 신나는 일이 생기면 기뻐하고, 아주 기쁘면 웃고, 위협 당하면 두려워하고, 어미 곁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애타게 운다. 다만 오랜 세월 인간의 과학은 그걸 감정이 아니라 ‘반응’이라 여겼고, 인간이 그 반응 행동에 제 감정을 투사해 인간의 감정언어로 의역하는 것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런 생각이 실은 인간의 오만이라는 사실, 불과 5만년을 산 호모사피엔스의 무지와 무능의 결과임을 과학적으로 밝힌 게 1990년대 말 에스토니아 출신 미국의 신경생물학자 야크 팬크세프(Jaak Panksepp)였다. 그는 실험실 쥐들이 저들끼리 노는 동안 인간은 못 듣는 초음파로 왁자지껄 떠들고 웃는다는 사실, 신뢰할 만한 인간이 그들의 배나 등을 간질여주면 똑같은 소리로 좋은 감정을 표현한다는 사실을 정밀한 통제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그는 기쁨과 슬픔 등 몇 가지 원초적 감정은 대뇌 피질이 아니라 뇌의 하부(혹은 심부)에서 작동하며, 인간의 뇌는 750만 년 전 파충류에서 포유류가 진화한 이래 모든 포유동물이 지니고 있는 그 원시뇌(포유류뇌)를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쥐를 미로 속에 가두고 먹이를 찾게 하는 식의 행동주의 보상 학습실험 일변도 생물학에서 ‘감정’의 신대륙을 발견함으로써 동물 복지와 윤리의 생물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자폐증과 우울증,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같은 감정질환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한 야크 팬크세프가 4월 18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WP, 2017.4.21 )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던 60년대 중반 학부 시절, 팬크세프는 한 정신과병원 야간 간호조무사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나 환자 파일을 열람할 수 있었다. 병증과 관련된 환자의 삶 전반이 기록된 문서들을 그는 일삼아 읽었고, 그 경험을 계기로 감정 메커니즘에 대한 관심을 키우게 된다. 매사추세츠대 대학원에 진학, 뇌파전위기록(EEG) 실험실에서 조교로 일하며 발작환자들의 뇌 자극- 반응 연구를 시작했고, 당시로선 새로운 실험 기법 즉 쥐의 뇌 특정부위에 전극을 삽입한 뒤 쥐가 레버를 누를 때마다 나타나는 반응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 실험은 레버를 누를 때마다 디스펜서를 통해 먹이를 제공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쥐의 뇌신경화학적 반응을 더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했다. 그는 배가 부르면 레버를 그만 누르던 쥐가 전기자극 실험에서는 한 없이 누르고 또 누른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 전기 자극과 함께 설탕 물을 쥐의 위에 투여하는 독자적인 실험박스를 만들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와보니 쥐가 과량(過量)의 설탕을 투여 받고는 삼투압 쇼크로 죽어 있더라는 것. 그는 전극이 자극하는 쥐의 뇌 신경회로가 먹이 보상(포만감 추구)과는 별개의 회로라는 사실, 새로운 뭔가에 대한 탐색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2012년 과학잡지 ‘Discover’ 인터뷰에서 말했다. 어쩌면 그것이 쥐의 감정(심리)에 대한 인류의 첫 과학적 실험이었을 것이다.
지도교수에게 실험 결과를 보고했더니 ‘동물은 심리학적 연구 대상이 아니야. 오직 행동이지’라며 ‘‘너 같은 학생들 전에도 여럿 봤지만 아직 여기 남아있는 녀석은 아무도 없어’라고 하더라고, 팬크세프는 그는 저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지도교수의 그 말을 ‘학문적 세뇌(academic brainwashing)’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는, 죽을 줄도 모르고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실험실의 쥐처럼, 좀체 세뇌되지 않는 ‘원시뇌’를 지닌 학생이었다.
팬크세프는 1944년 6월 5일, 러시아 국경과 그리 멀지 않은 에스토니아 타르투(Tartu)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꽤 부농이었고, 때는 2차 대전 말기였다. 중세 이후 독일 폴란드 스웨덴 러시아 등 이웃 국가에 내내 휘둘려온 에스토니아는 1차대전 종전과 함께 독립했지만 독일계가 많아 2차 대전 때도 추축국의 편에 섰다. 소련 침공이 임박해지자 팬크세프의 가족은 배를 타고 발트해를 건너 독일로 피난했고, 그는 패전 독일의 난민 캠프에서 만 5세(49년)때까지 지내야 했다. 미국놀이학회 학술지인 ‘American Journal of Play’ 편집인인 심리학자 스코트 이블(Scott G. Eberle)은 ‘Psychologytoday’에 기고한 글에서 “(팬크세프의) 가장 중요하고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인 발견- 쥐도 우리처럼 간질이면 웃는다는 사실-의 동력”도 그의 유년 난민캠프 체험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썼다. 비좁은 공간, 옷과 음식은 물론이고 희망도 자유도 결핍된 그 닫힌 공간이 팬크세프 또래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의 감시를 피해 마음껏 쏘다니며 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는 것. 버려진 탱크와 군용트럭들이 놀잇감이었고, 포탄에 부서지고 빗물에 반죽 된 진흙탕이 그들의 놀이터였다. 유년의 놀이를 아동 심리 및 지능 발달의 결정적인 요소로 중시하는 놀이이론 학자답게 이블은 팬크세프가 누린 그 역설적인 자유의 시간이 연구자로서 갖춰야 할 유연성과 개방성의 바탕이었으리라는 거였다. 그의 분석은 사실 팬크세프의 이론과도 상응했다. 팬크세프는 포유동물의 원초적 감정 가운데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이 유희(놀이)를 추구하는 감정이라고 주장했다.
1972년 오하이오주 볼링그린(Bowling Green)주립대에 자리를 잡은 팬크세프는 개와 기니피그 고양이 등을 대상으로 한 감정 연구를 본격화했다. 어미개와 강아지의 애착 반응, 어미에게서 떨어진 뒤 보이는 어린 강아지의 패닉 등. 73년 뇌신경학계가 ‘아편제수용체(Opiate Receptor)라는 뇌신경화학적 수용체를 발견한 것은 그의 연구에 돌파구를 제공했다. 그는 애착 반응이 뇌 화학적 중독(chemical addiction)과 관련이 있으리라 판단했다.
어미와 떼어놓기 전 강아지에게 모르핀을 투여했더니 패닉 반응이 덜했고, 모르핀 투여량에 따라서도 반응도가 달라지더라는 것. 병아리의 경우에는 갓 부화한 병아리보다 3주 지난 병아리의 분리 반응이 덜했는데, 3주된 병아리의 뇌에 아편제 수용을 차단하는 펩티드의 일종인 부신피질자극호르몬방출인자(CRF)를 투여한 결과 갓 부화한 병아리와 마찬가지로 울어대더라는 것 등.
학계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고 주요 학회지들은 그의 연구논문을 수록하는 데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 그는 2012년 인터뷰에서 “80년대 중반까지 근 10년 동안 우리가 들은 말은 한마디로 미쳤다는 거였다. 그들은 우리의 모든 실험 결과가 단지 실험 동물이 모르핀의 진정제 효과에 반응한 것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그가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개 감정 실험을 중단하고 기니피그를 거쳐 쥐에게 정착한 까닭 역시 미국 최대ㆍ최고의 실험실로 꼽혔다는 볼링그린대의 개 실험실 예산이 전액 삭감된 탓이었다.
90년대 어느 날, 쫓고 쫓기고 뒹굴며 노는 실험실 쥐들도, 어쩌면 사람처럼 소리를 낼지 모른다는 아이디어와 함께 초음파 측정장비를 써보자고 제안한 것은 그의 박사후과정 제자(Brian Knutson)였다. 96년 그들이 내는 초음파(50KHz, 가청주파수는 16~20KHz) 소음들이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며 놀이 상황에서 내는 소리가 웃음 같은 것일지 모른다는 가설을 낸 것도 그의 제자(Jeff Burgdorf)였다. 그것이 정말 즐거워서 내는 웃음 소리인지 확인하기 위해 쥐들을 간질여 보자는 엉뚱한 생각을 한 건 팬크세프였다. 그들은 일삼아 쥐를 간지럽히며 놀았고, 그 실험을 통해 똑 같은 반응, 똑같은 소리를 얻어냈다. ‘미친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는 인간이 쥐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에 적절히 교감하면 쥐와의 종간 우정도 가능하다고 여겼고, 그들과의 그런 교감이 쌓여 있었던 덕에 실험도 성공했을지 모른다. 가만히 만지거나 토닥거려줄 때보다 간질여줄 때의 반응이 더 뜨겁다는 것, 개나 고양이가 사람과 장난칠 때 가볍게 깨물듯이 쥐들도 행복하면 그렇게 장난스럽게 깨물기도 한다는 것…. 그는 디스커버 인터뷰에서 “우리는 쥐들과의 그 놀이에 완전히 중독됐다. 동물들을 정말 즐겁게 해 줘봐라. 그러면 그들도 당신들을 무척 좋아하게 될 거다. 정말 놀랍다”고 말했다.
반려동물과 교감해온 이들이 감각적으로 당연시하던 그 사실을 그는 과학적 실험데이터로 입증했고, 그 메커니즘을 뇌의 구조(감정을 관장하는 원시뇌와 학습 등 외부 자극을 수용하는 기저핵(basal ganglia) 중심의 중간뇌, 그리고 고차원적 추론 언어기능 등을 담당하는 표층뇌)와 진화의 관점으로 이론화했다. 그는 원시뇌의 감정 충동, 예컨대 어린 시절 유희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성장하면서 공동체의 룰을 익히고 짝짓기를 포함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불리하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팬크세프는 "(포유류뇌에 관한 한) 인간과 다른 포유동물의 신경전달물질과 신경조절물질적 유의미한 차이는 없으며, 그들의 뇌 신경체계는 인간과 놀랍도록 유사한 해부학적 기능을 공유하고 있다"고 썼다. 그는 동물의 감정을 이해하면 인간의 감정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보울그린주립대
그가 개척한 동물감정 연구학문을 ‘감정신경과학(Affective Neuroscience, 학계에서는 affective를 감정의 동적 변화 현상이라는 의미의 정동(情動)이라 번역해 정서emotion나 감정feeling과 구분한다고 함)’이라 부른다. 감정신경학 분야의 필수 교재이자 고전이 된 그의 98년 저서 ‘Affective Neuroscience: The Foundation of Human and Animal Emotions’는 감정의 발생학적 화학적 뇌해부학 근거를 밝힌 책이다. 거기서 그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포유동물이 공유하는 7개의 원초적 감정- SEEKING(탐색), RAGE(분노), FEAR(공포), CARE(근심), PANIC/GRIEF(공황/슬픔), PLAY(놀이)-을 기술했다. 그 감정들은 기억 사고 추론 언어 등 고차원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2~4mm 두께의 뇌 표면 대뇌피질(cerebral cortex)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원시적인) 하부(심부)영역, 예컨대 편도체(amygdala)나 시상하부(hypothalamus) 등에서 비롯된다고 기존 이론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놀이나 탐색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뇌의 아편제 방출에 의해 고무되고, 슬픔과 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그 아편제가 낮은 상태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기분을 낫게 하는 것은 뇌가 지닌 아편제 보상 시스템의 작동 덕인데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감정질환이 나타난다.(…) 우울증은 기쁨(Joy)의 결여가 아니라 열정(Enthusiasm)의 결여다”라고 말했다.(cornell.edu, 2016. 10.27 )
뇌의 고고학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발견은 학부시절 정신병원에서 자료로 만난 수많은 이들, 즉 우울증과 분열증 자폐증 등 감정 질환자에 대한 뇌심부자극(deep-brain stimulation) 등 치료 연구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는 특히 유년 유희추구의 감정이 억압될 경우 심각한 감정질환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ADHD는 원시뇌의 욕망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한 아이들이 서둘러 대뇌피질 훈련-읽기 쓰기 말하기 수학풀이 등등-에 내몰리면서 생기는 감정질환 중 하나였다. “놀아야 하는 아이를 못 놀게 붙잡아 두니까 교실이 엉망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심층뇌가 충분한 관심을 못 받은 것이다.”
그의 그런 이론은 심리학ㆍ놀이학계의 이론을 강화하고 뇌신경학적으로 확인해준 셈이었다. 놀이(Play)연구의 선구자로 꼽히는 UCLA 스튜어트 브라운(Stuart Brown) 교수는 뇌 감정분야와 놀이에 대한 팬크세프의 발견은 아인슈타인이나 리처드 파인만이 물리학에 남긴 업적에 비견될 수 있다고 평가했고, 스코트 이블은 “뇌/감정에 대한 그의 신경ㆍ화학적 이해는 이 밝은 현대사회의 어두운 이면들(discontents)을 혁명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약리학적 성취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팬크세프는 다수의 책과 400여 편의 논문을 혼자 또는 공동으로 발표했고, 젊은 날의 그를 푸대접하던 보울그린대와 워싱턴주립대 석좌교수를 겸하며 부작용과 내성을 최소화하는 우울증 치료 연구 등에 만년까지 몰두했다.
물론 그의 모든 이론들이 뇌ㆍ신경 심리학계의 정설로 인정받는 건 아니다. 그의 뇌 이론은 통상적인 설명, 즉 생명유지 기능을 담당하는 후뇌(파충류뇌)- 감정 기능을 담당하는 중간뇌(포유류뇌)- 고도의 정신기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부의 전뇌(인간뇌) 분류에서 중간뇌-전뇌 부분을 다시 세분한 거였고, 그가 원시뇌라고 부른 것은 중간뇌의 변연계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ADHD 등의 원인은 확정적이지 않고, 유전자와 환경, 기질 등 가설적 원인을 두고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다. 쥐가 웃는다는 것에도 관련 분야의 모든 학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동물의 감정 반응을 인간 감정과 대등한 지위에 두는 것을 떨떠름하게 여기는 이들은 아직 많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인간의 감정질환 연구에 기여한 바를 제쳐두더라도, 포유동물의 감정적 지위를 획기적으로 높임으로써 동물권ㆍ동물 복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공했다. 영국 생물학자 윌리엄 러셀(William Rusell)과 렉스 부르크(Rex Burch)가 동물 실험과학자들에게 3가지 원칙(3R)을 권고한 게 1959년이었다. 최소한의 개체로(Reduction), 최소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Refinement), 가능하면 동물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Replacement) 하라는 거였다. 로널드 뱅크라는 수의학자는 거기에 과학자의 책임의식(Responsibility)을 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팬크세프는 실험 대상이 동물이라고 해서 인간을 대할 때와 달리 특별히 염두에 둬야 할 윤리원칙은 없다고 말한 셈이었다. 설탕물 쇼크로 실험실 쥐가 죽어있는 걸 본 뒤로는 실험박스에 쥐를 혼자 놔두고 밥을 먹으러 간 적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팬크세프가 학문적 세뇌를 당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간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동물들도 사람과 같이 심장이 있고 뇌가 있는데 왜 소수의 사람들이 동물만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동물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이 글을 읽으며 동물, 식물을 소중히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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