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이 기어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확정했다. 민주주의와 헌법을 상대로 테러하는 격이다. 박 정권은 헌법도 민주주의도, 다수 국민의 반대도 다 외면했다. 유엔과 국제교사단체 등 국제사회의 충고도 묵살했다. ‘북한과 나치 독일, 일본 군국주의 따라 하기’란 비판이 나와도 들은 체하지 않는다. 이로써 한국의 역사와 역사 교육은 1973년 유신 체제로 회귀하게 됐다. 유신 당시 박정희 정권은 국회를 해산하고 계엄령을 선포해 국민을 찍어눌렀다. 이번에 박 정권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정권의 망동을 막을 장치가 없는 국가를 민주주의라 부를 순 없다. 박 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은 거짓과 왜곡, 날조와 억지, 그리고 불통으로 점철돼 있다.
황교안 총리가 어제 발표한 대국민담화문도 이를 말해준다. 그는 담화에서 현행 교과서가 6·25에 대해 남북의 공동 책임을 묻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날조다. 모든 검정교과서가 북한이 침략해 내려왔다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부가 국가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왜곡했다는 주장도 심각한 왜곡이다. 8종 검정교과서 모두 북한의 1인 독재 및 3대 세습 체제를 비판하고 존중받아야 할 인민들이 굶고 있다고 쓴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검인정교과서들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의미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바꿔야 한다는 뉴라이트의 주장과 맥이 닿아 있다. 이는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위험한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외면하는 북한을 따라가겠다는 말인가.
황 총리가 지적한 역사 편향 사례들이 교과서에 없다는 점은 언론과 학계가 이미 수없이 확인한 바 있다. 판단이 아니라 사실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을 날조하면서 이를 국정화의 명분으로 삼고 있으니 황당하다. 미래의 기둥인 학생들을 획일적이고 무비판적인 로봇으로 만들려고 작정하지 않은 바에야 이럴 수 없다. 황 총리 지적대로 천안함 사건을 다루지 않은 교과서도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집필 기준에서 이 사건을 다루라고 명시하지 않았다. 또 검정 심사 때도 지적하지 않고 통과시켜놓고 지금 와서 안 다뤘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황 총리는 뉴라이트가 만든 교학사 교과서를 소위 ‘올바른 교과서’로 지목했다. 일제의 쌀 수탈을 쌀 수출로 미화하고 친일기업가의 활동을 독립운동으로 덧칠한 교과서를 올바르다고 한다면 향후 국정교과서의 방향과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황 총리는 국정교과서의 친일·독재 미화 우려에 대해 “성숙한 우리 사회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성숙한 시민사회’의 강력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 국정화를 강행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시민사회가 필요로 할 때는 외면하면서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시민사회 팔이’를 하는 자가당착적 행태이다. 황 총리는 담화에서 국정화를 역사교육정상화로 표현했다. 역사교육은커녕 온 나라를 비정상적 갈등과 분열로 몰고 가면서 할 말이 아니다.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정치 공작하듯이 밀실에 숨어서 진행해왔다. 비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다 발각되자 “정상적인 업무”라고 억지를 부리고, “아이들이 주체사상을 배운다” “유관순 누나가 교과서에 없다”는 거짓 주장을 태연히 광고로 내보냈다. 사실이 아니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귀 막고 눈감은 채 역사 역주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헌법을 부정하는 박 대통령의 행각을 똑똑히 기록하고 기억할 것이다. 대통령의 심각한 일탈을 지적하지 않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호위무사를 자처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지록위마(指鹿爲馬)로 시민을 속이는 데 앞장선 황교안 국무총리, 황우여 교육부총리,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역사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출처- 경향신문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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