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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통일을 가로막는 것들

이름 정혜빈 등록일 15.11.03 조회수 874
박근혜 정권은 참 자기모순적이다. 한편으로 보면, 이 정권은 전 정권에 견줘 ‘통일’을 훨씬 더 활발히 거론해왔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일찍부터 이야기됐으며, ‘통일대박론’도 한때 사람들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까지 발족됐으니 대통령이 정말 통일에 현실적인 관심을 갖는다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를 가만히 지켜보면, 이 사람이 진심으로 통일을 원하는가 하는 점에 대해 자연히 의심이 크게 들 정도다. 계속해서 ‘북한 붕괴론’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대며, 아직도 흡수통일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경’으로 쉽게 기울어지는 대북 자세는 걱정스럽기만 하다. 문제의 목함지뢰를 북한군이 매설했다고 주장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을 경우 남북한 공동조사나 중립적 국제조사부터 제안해보는 게 순서가 아니었을까? ‘혹독한 대가’와 같은 발언들은 과연 통일을 가까워지게 만드는가? 그러나 이 문제는 박근혜 한 사람만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지배층 전체의 문제로 보인다. 한국 지배층에게는 북한이 점차 중국 경제권에 편입해 가는 게 기회 상실로 느껴져 위기감을 준다. 한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진지하게 통일 준비에 나설 자세는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이유는 무엇인가?

남한 지배층은 내부 동질성이 강한 배타적 집단이다.
문제는 한국을 저들 소유의 개인회사처럼 여기고 있는 저 ‘이너 서클’이,
그 무엇도 그 누구와도 나누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지배는 철저히 독점적이고 배타적이다.

합의형 통일이란 기원이 다른 북한 지배층과의 ‘권력 나누기’를 의미할 텐데,
저들은 그 누구와도 권력을 나눌 생각이 없다.
차라리 분단의 영구화가 저들에게 더 나아 보인다.
민중 압박만이 통일을 가져올 수 있다.

첫째, ‘이념’은 아닐 것이다. 남한에도 북한에도 각각 거대담론 차원의 이념들이 엄연히 있지만, 그 이념들은 실질적인 삶의 현실과는 거의 관계없으며 대외정책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중국 등에의 자원 공급자라는 북한의 동북아 경제 시스템에서의 위치를, 과연 주체사상의 차원에서 해명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남한의 주민들에게 헌법에서 보장된다는 ‘자유’들이 이론적으로 있어도 그들이 일상 속에서 만나는 것은 ‘학교’나 ‘기업’이라는 이름의 ‘독재국가’들이다.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예배 참석을 의무화하고 있는 각종 ‘미션스쿨’들을 보라. 그들에게 모든 국민이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제20조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한국 정치인들이 ‘자유민주주의’를 들먹이지만, 한국 재벌들에게 가장 사업하기 편한 사회는 바로 유일 집권당이 노조까지 ‘영도’하는 중국이다. 마찬가지로, 항일투쟁이라는 과거를 그 집권체제의 명분으로 삼는 북한이 실질적으로 가장 열망하는 것은 대일본 수교일 것이다. 거대담론이 무엇이든 간에, 남북한 지배자들의 공통된 실질적인 이념이란 바로 우리가 시쳇말로 ‘조직문화’라고 부르는 것, 즉 개인이 ‘조직’(지배체제)의 이해관계에 복종해야 하며 필요할 경우 희생해야 한다는 통념(?)이다. 정치적 화해 모드가 잡히기만 하면 남한 재벌들이 앞다투어 북한에 ‘무노조 공장’들을 세우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화해 모드가 햇볕정책 시절 몇 년 잡혔다 해도 오래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외세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지만 이는 진실의 한 편린에 불과하다. 물론 외세의 입장에서 분단의 지속은 유리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 체제에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통일 한반도를 궁극적으로 중-러 블록에도 미-일 블록에도 가담하지 않는 영세중립지역으로 설정하는 게 필요하겠지만, 이 ‘한반도 중립론’을 한반도에 인접한 외세들이 역사적으로 수긍한 적은 거의 없었다. 1904년 초 러일전쟁이 발발하려 했을 때 고종 황제가 처음에 ‘중립’을 선언했다가 곧바로 일본군이 이미 상륙한 상황에서 2월23일 ‘한일의정서’를 조인하도록 강요받은 일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가? 크게 봐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반도 영세중립론이 ‘불온한 상상’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한반도 전체나 그 일부는 계속해서 특정 외세의 식민지로 있거나 불평등한 ‘동맹’ 관계를 맺어야만 했다. 북한이 선구적으로 1960년대 초에 소련과 중국의 영향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지만, 1970년대 초반에 ‘통일 후 중립화’를 언급했다가 소련 지도부와 막후 갈등을 일으킨 이야기를 소련 외교사 관련 저서에서 읽을 수 있다. 미국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진 적이 없는 남한은 어떤가. 1960년대 미국 외교문서를 봐도 미국이 가장 걱정했던 것은 바로 남한 혁신세력의 ‘중립론’이었다. 그렇게 해서 오랫동안 친미적 당국자의 탄압을 받아온 ‘중립론’은 지금 남한에서 비주류 중의 비주류에 속한다. 역사 속의 이런 태도를 볼 때 외세의 통일 방해는 당연히 예상된다. 그러나 한반도인들이 굳건한 의지를 갖고 한반도를 핀란드나 오스트리아 같은 중립지역으로 만들려 한다면 이게 꼭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특히 남한 지배층에게 이런 의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런 의지 부족은 남북관계의 황금기라고 할 햇볕정책 시기에도 자주 관찰됐다. ‘햇볕’은 정치적 접촉과 일부분의 인적 교류, 경협에 머물렀다. 그 이상의 문제들에 대해선 일부는 논의만 됐고 일부는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에 북한 쪽이 남한 쪽에 20만명 선의 군대를 양쪽이 보유하는 수준까지의 공동군축을 제안했다. 단, 그 조건은 ‘미군 철수’였다. 지금이야 거의 망각됐지만,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여론조사마다 단계적 미군 철수와 즉각적 미군 철수를 지지하는 국민들을 합치면 40%에서 62%까지, 상당수나 다수를 차지하곤 했다. 이와 같은 분위기를 타서, 단계적 미군 철수에 대한 협상부터 시작해 북한의 신뢰부터 얻고, 남북 공동 군축도 단계적으로 실행해보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에도 엄청난 군비 절약 효과가 있었겠지만, 남한으로서도 모병제로 충원이 가능한 크기의 군대를 갖는 것은 병역에 시달려온 평민들에겐 엄청난 경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주류 정치인들 중에서 이러한 비전을 갖는 이를 그때조차도 발견하기 힘들었다. 남북한 간 서신왕래·통신의 허용이나 각자 출판물의 상호 유통, 나아가서 남북한 간의 자유왕래 등의 좀더 급진적인 의제는 아예 처음부터 논의에서 배제되고 말았다. 도대체 남한 지배층이 ‘통일’을 생각하면서 두려워하는 게 무엇일까?

답변은 간단하다. 남한 지배층은 사실 내부 동질성이 강한 하나의 배타적 집단이다. 주요 재벌과 관벌(전직 국무총리, 외교부 장관 등), 그리고 언론재벌·재벌언론들을 보면, 이미 일제강점기 때부터, 그때도 벼슬하거나 기업을 경영했던 그 조상들이 벌써부터 자기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저들은 혼맥으로 철저히 이중삼중 연결돼 있으며, 서울의 몇 군데 특정 동네에서 살며, 자녀들을 같은 학교나 같은 대학에 보낸다. 이들이 한국을 배타적으로 소유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 서열 상위 1%가 개인 소유의 땅 50% 이상을 가지고 있으며, 주식부자 1%가 시가총액의 63%를 소유하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 아닌가?

문제는 한국을 저들 소유의 개인회사처럼 여기고 있는 저 관리자들의 ‘이너 서클’이, 그 무엇도 그 누구와도 나누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저들의 지배는 철저히 독점적이고 배타적이다. 저들이 소유하는 기업에서 노동자들이 경영참여권을 한 번이라도 가져본 적이 있는가? 노조 대표자 몇 명이 이사회에 참석한다고 해서 저들이 가져가는 배당금이 크게 줄어들 일도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저들이 원칙상 저들의 권력을 나눌 생각이 없는 것이다. 저들의 정치자금으로 먹고사는 주류 정치인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국회에서 피착취 대중 다수를 대표하는 정당은 기를 펴보기라도 할 수 있겠는가? 통합진보당의 운명을 보면 저들이 도전자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바로 알 수 있다. 합의형 통일이란 결국 기원이 다른 북한 지배층과의 ‘권력 나누기’를 의미할 텐데, 저들은 그 누구와도 권력을 나눌 생각이 없다. 차라리 분단의 영구화가 저들에게 더 나아 보인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통일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군복을 강제로 입게 돼 각종 침몰, 폭발, 해전 등등 분단이 낳은 비극에 희생되는 민중들이다. 민중 압박만이 통일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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