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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우리에게 과연 인권이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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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정혜빈 | 등록일 | 15.11.03 | 조회수 | 930 |
한 인권’이나 ‘남한 인권’을 따로 논하기보다는, 분단·병영화·국권주의 창궐에 시달리는 한반도 전체의 인권 문제를 총체적으로 논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북한에 대한 미국 봉쇄의 해제, 군축, 탈병영화, 그리고 통일로의 진척이 있어야 우리는 언젠가 사람이 혈육과 강제로 떨어지고 몸으로 구타당하고 마음으로 양심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벗어나 인권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한데 1990년대 초반부터 “코리아 인권 문제”라는 문구의 의미는 돌연히 달라졌다. ‘코리아’는 이제 남한이 아닌 북한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어차피 곧 붕괴되리라고 대부분의 관찰자들이 믿었던 1990년대 초반에는 조금 덜했지만 북한의 지속적 생존을 확실시하게 된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인권 문제에 대한 제기를 넘어 북한을 ‘나락’으로 악마화하는 각종 ‘수기’ 등이 특히 구미권 시장을 공략해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북한은 악마의 왕국’과 같은 북한관이 서방 주류에서 일종의 통념이 되자 2004년에 미국 부시 정권은, 그리고 2006년에 일본은 각각 북한 인권에 대한 특별 법률까지 통과시켰다. ‘북한 인권’ 분야에서 활동하겠다는 각종 비정부기구(NGO)들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금을 미국 정부 등으로부터 지원받기 시작하여 ‘북한 인권’은 하나의 세계적 ‘산업’이 되고 말았다. 이와 동시에 남한 인권 문제에 대한 언급들은 구미권 언론 지면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가끔가다가, 예컨대 잊을 만하면 꼭 다시 일어나는 병영 내 총기 난사 사태나 2014년의 일명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제28보병사단 폭행 사망 사건) 등 병영 내의 특히 끔찍한 폭력이 폭로될 때 구미권 신문에서도 이를 다루지만, 대개 한국 병영의 현실은 서방에서 은폐되고 만다. 한쪽 ‘코리아’의 인권을, 평소 인권에 그다지 무관심했던 부시 전 대통령까지 나서서 챙기지만, 또 한쪽 ‘코리아’에서 아무리 인권 침해가 반복돼도 별 관심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그다음 이야기를 전개하기 전에 먼저 두 가지를 못박고자 한다. 첫째, 미국이나 국내 보수주의자들에 의한 정치적 악용 여부 등을 떠나 물론 북한도 남한과 다르지 않게 인권에 대해 심각한 문제를 안아온 것은 엄연히 현실이다. 이유야 고속 경제개발을 위한 정권에 의한 총동원이든 미국에 의한 봉쇄든 간에, 북한 정권이 국권을 위해 인권을 희생시켜온 것은 사실이다. 둘째, 1990년대 초반 이후 서방 언론에서의 남한 인권 관련 문제 제기의 태부족이 물론 어느 정도 남한에서의 일부 긍정적인 변화들을 반영한 면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대성공사’(군 정보사령부 중앙신문단)에서의 고문에 준하는 탈북자 신문 때의 폭행이나 각종 ‘강압수사’ 등은 계속 자행됐지만 1980년대 민주화 항쟁으로 그래도 ‘고문의 천국’이던 대한민국에서도 점차 개개인의 신체 자유에 대한 관념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또한 국가보안법이 존속되는 이상 표현의 자유는 완전하지 않더라도 일단 국가가 관용하는 표현의 범위가 나름대로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외형적으로 볼 때 국가의 은밀한 통제보다 역동성이나 발랄함부터 눈에 띄는 서울에 온 외신기자들은, 특히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 한국을 ‘인권국가’로 오인할 만도 했다. 문제는, 한국의 인권 현실에 대한 과도한 낙관이 꼭 순진한 오인에 의거한 것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돈에 궁한데다 미국과 일본의 군사 압박과 정치 공격에 시달려야 하는 북한과 달리 경제대국이자 동북아 중진국가인 남한은 이미 외국 여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다. 외신에 광고료를 지불하는 굴지의 광고주 중에 남한 재벌들의 해외계열사도 포함돼 있는 상황에서는, 특히 경제적으로 생존이 쉽지 않은 종이신문 등으로서 남한의 인권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실어 남한 기업들과의 협력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과연 쉬운가? 남한이 경제적 제재도 가할 수 있지만, 긍정적인 인센티브도 넘쳐난다. 해외에서 한국 관련 공부나 일을 하는 연구자나 정부관료 내지 언론인 등 중에, 1991년에 설립된 한국국제교류재단에 한 번이라도 신세 지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특히 이런 신세를 반복적으로 져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인권을 포함해 남한의 그 어떤 ‘이면’에도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기 전에 두번 세번 먼저 고민해볼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 국내외에서 꼭 인식됐으면 하는 한 가지 중요한 진실은 계속 대중으로부터 가려져 잘 보이지 않게 됐다. 국권주의적 병영사회 특유의 개개인 인권의 상대화, 경시 내지 부정은, 북한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남한에서도 형식적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국가에서 말하는 의미의 인권은 과연 남한 시민들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에 진지하게 한번 답해보자. 우리에게 가장 궁극적이라 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는 있는가? 있다 해도 국가와 유력 기독권 집단들에 의해 심히 제한된다고 봐야겠다. 양심상 사람을 죽일 생각을 아예 못 하거나, 군대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북한 동포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 싶지 않은 사람은 감옥에 가서 그다음 평생 전과자, 즉 2등 시민으로 살아야 하거나 해외로 정치망명을 가야 할 처지다. 옛날에 선교사들이 세운 그 많은 사립학교에서 교수나 교사가 되자면 그 학교가 이미 공교육 체제에 편입돼 있다 해도 본인의 양심과 무관하게 ‘기독교인’을 자칭하고 많은 경우에는 재직 시 예배 참여까지 무조건 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나라 중에서 이 정도로 개개인의 양심이 짓밟히는 경우가 있는가? 우리에게 가장 인간적이라 할 수 있는 가족 재결합의 자유는 있는가? 만에 하나, 남한 시민의 가족이 북한에서 사는 경우에는 재결합, 즉 얼마 안 되는 남은 인생을 함께 보내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편지 한 장 합법적으로 보낼 수 없다. 보낸다면? 국가보안법 8조1항 회합통신죄, 형벌은 10년 이하의 징역이다.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런 잔혹한 ‘혈육 떼어놓기’에 북한 정권도 공범으로 참여한다. 사실 ‘북한 인권’이나 ‘남한 인권’을 따로 논하기보다는, 분단·병영화·국권주의 창궐에 시달리는 한반도 전체의 인권 문제를 총체적으로 논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신체의 자유는 충분히 있는가? 위에서 말했듯이 군사정권 시절에 비해 신체의 자유 관념이 확고해지고 고문은 줄었지만, 탈북자에 대한 ‘대성공사’에서의 잔혹행위는 작년까지 계속 이어져왔다. 탈북자뿐인가? 군인권센터의 ‘군 인권실태 조사’에 의하면 병영 내 구타 장면을 목격한 응답자는 17.7%에 이른다. 군에서의 구타가 줄었다 해도 여전히 수만명의 한국 시민이 병영에 징집당해 본인들의 신체에 대한 누군가의 폭력적 지배를 경험해야 한다. 신체 자유의 침해는 아예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작년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와 전교조의 합동조사 결과를 보면, 인권조례가 도입됐어도 60% 정도의 중고생이 체벌을 경험했거나 목격했다고 한다. 약자, 하급자, 훈육 대상자라고 해서 사람을 고문해도 되고 때려도 되는 사회는 과연 민주화된 인권사회인가?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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