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토론부

기전여고 사회토론부 A.O(Approve Opposite) 의 홈페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A.O는 정치, 경제, 문화, 방송, 환경 등 다방면에서의 사회적 이슈에 관한 주제로 논의하고 토론하는 동아리입니다.

<사설> 우주선 지구호는 구조될 수 있을까 (우진)

이름 김지숙 등록일 15.10.26 조회수 10676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생존 비결은 불굴의 의지, 뜨거운 동료애, 그리고 첨단과학에 앞서 산수의 힘이다. 앤디 위어의 원작 소설을 보면, 기지에 돌아온 와트니는 상처를 처치한 뒤 바로 계산에 들어간다.

1425일 뒤에 다음 화성 착륙선이 오는데 식량, 물, 공기가 그때까지 버틸지 따져본다. 기지에는 6명의 식량이 50일분 비축돼 있는데 혼자이니 300일, 식사량을 4분의 1 줄이면 400일을 버틴다는 식이다. 부족한 식량을 감자로 메우려면 기지 안에 얼마나 넓은 감자밭을 조성할지 또 계산한다. “내 목숨은 산수에 달렸다. 더하기 빼기를 착각하거나 덧셈을 틀리기만 해도 끝이다”라고 하면서.

세계적 경제 호황기였던 1960년대부터 한정된 지구가 무한정 성장할 수 있는지 걱정하던 이들은 ‘우주선 지구’라는 표현을 썼다.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한 척의 우주선이고 우리는 모두 그것을 조종하는 우주인이란 관점이다. 지구 차원의 환경재앙인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요즘 이 비유가 새삼 다가온다. 화성에서 생존전략을 짜는 마크 와트니와 우리는 크게 다를 바 없다.

유엔과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재앙이 언제 어떤 형태로 올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 언제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상세한 수치로 내놓고 있다. ‘기후변화 산수’는 요컨대 이렇다. 금세기 말까지 지구의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상승 이하로 억제하려면 배출된 이산화탄소 총량이 3000기가톤(1기가톤은 10억톤)을 넘으면 안 된다. 이미 2000기가톤을 배출했으니 남은 여유는 1000기가톤이다. 이를 위해선 알려진 화석연료 자원의 4분의 3은 땅속에 그대로 둬야 하고 2050년까지는 세계가 탄소 제로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이 1000기가톤의 배출량을 각국에 어떻게 공평하게 나눌까를 논의하는 자리다. 이미 우리나라를 포함한 149개국이 협상테이블 위에 감축안을 내놓았다.

1위 배출국인 중국은 2030년부터 배출량이 감소세로 접어들도록 에너지 소비의 20%를 비화석에너지로 충당하고 탄소집약도(국내총생산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를 65% 줄이기로 했다. 저탄소 경제로 방향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배출량 2위인 미국은 2025년까지 26~28% 감축 계획을, 28개국이 합쳐 세계 3번째 배출국인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40% 감축을 약속했다. 전기 없는 인구가 3억에 이르는 인도는 환경이 아직 경제 다음이지만 2030년까지 전기의 40%를 재생에너지로 만들고 탄소집약도를 35% 낮추겠다고 밝혔다.

브라질은 개도국 가운데는 유일하게 배출전망치(BAU) 대비 감축이 아닌 2025년까지 2005년 대비 37%를 줄이는 절대 감축안을 내놓았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 대비 37%를 줄이는 방안을 제출했다. 브라질이나 한국이나 선진국과 개도국의 ‘가교’ 노릇을 자임하지만 자세는 사뭇 다르다.

세계 5위 배출국인 일본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소극적이다. 2030년까지 2013년 대비 26%를 줄이겠다는 건데, 2013년은 역사상 2번째로 높은 배출량을 기록한 해였다. 일본 그린피스는 이 감축안에 대해 “세계가 재생에너지 미래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는데 아베 정권은 멈춰 서 있다”고 비판했다. 아베를 박근혜로 바꾸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얘기다.

문제는 감축계획을 모두 합쳐도 2도 목표 달성을 위한 감축량의 절반에 지나지 않으며 3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점이다. 약속을 다 지켜도 환경재앙이 불가피하다.

     
화성인 마크 와트니는 구조대와 만나기 위해 로버를 타고 이륙용 우주선까지 3200㎞를 이동한다. 그는 모든 준비물을 점검한 뒤 부족한 동력을 얻기 위해 로버에서 불필요한 의자를 뜯어내고 에너지 낭비 장치를 고친다. 살아나려면 몸집을 가볍게 해야 한다. 위기에 처한 우주인이 기억할 교훈인데, 지구의 우주인들이 이를 실천할 수 있을까.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이전글 <사설> 노벨경제학상 저작까지 날조하는 성장주의자들 (우진)
다음글 <사설>아이들 볼모로 언제까지 무상보육 예산싸움 할 참인가 (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