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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분단國이 교과서 내주는건 스스로를 무장해제하는 것"

이름 김서양 등록일 15.10.22 조회수 10743

입력 : 2015.10.22 03:00

[國史교과서 국정화]
[國史교과서 논란, 릴레이 인터뷰] [3] 역사학계 元老 이기동 동국大 석좌교수

"좌편향 검정 교과서들 필진, 민중사학 대표학자 다 빠지고 B·C급이 집필하고 있어
무책임하게 교과서 내놓고 교사·학생 판단에 맡겨서야"

"필자 재량권 너무 넓어 검정 통과하게 되면 서술 흐름 바꾸는건 불가능
당파성 입각 갈등조장하는 교과서 받아들여서는 안돼"

"역사 교과서는 자라나는 세대의 덕성(德性)을 함양하는 사례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파성에 입각해 조화를 거부하고 갈등을 강조하는 민중사학(民衆史學)에 바탕을 둔 교과서는 교육적 관점에서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진단학회 회장을 지냈고 학술원 회원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인 원로 역사학자 이기동(72) 동국대 석좌교수는 한국사 교과서 좌편향의 뿌리가 1980년대 국사학계에 대두한 민중사학에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고대사 연구자인 이 교수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 군인들의 생애를 추적한 '비극의 군인들'을 출간하는 등 한국근현대사에도 해박하며, '민중사학론' '민중문화운동론' '북한 역사학의 전개과정' 등을 집필해 광복 후 남북한의 역사학 연구 동향에도 밝다.

역사학계 원로 이기동 교수.
역사학계 원로 이기동 교수는“체제 수호가 기본 책무인 국가가 무책임하게 역사 교과서를 내놓고 교사와 학생들의 판단에 맡기자는 것은 덜된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그동안 좌편향 검정 교과서에 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보수 정부들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 논란을 어떻게 보십니까.

"편협한 민족 중심과 계급 중심을 앞세우는 민중사학의 정체를 알면 한국사 교과서의 왜곡은 당연하다는 사실이 이해됩니다. 그들의 한국근현대사 기본 인식은 반(反)외세와 반(反)자본주의입니다. 대외적 측면에서 식민지 시대는 반일(反日), 광복 후는 신식민지 시대로 보아 반미(反美)가 중심이고, 대내적 측면에서는 민중 해방과 체제 타파가 목적입니다. 서구의 신좌파와 달리 시대적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낡은 한국적 마르크스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스탈린 참모였던 역사학자 미하일 포클로프스키의 '역사 탐구는 연구가 아니라 과거를 대상으로 하는 정치'라는 주장을 신봉합니다. 민중사학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세력을 불리다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사상의 무정부 상태가 초래되면서 사회로 확산됐고, 2003년 고교 한국근현대사 교과목 도입으로 기회가 오자 복면을 벗고 교실에까지 진출했습니다."

―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오랫동안 지적해 오셨는데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은 그렇다 쳐도 이명박 대통령 5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권 초기에 좌편향이 가장 심각했던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일부 수정 명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문제가 된 한국사 교과서만 해도 집필 기준과 검정의 틀은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졌습니다. 박근혜 정부도 초기부터 국정화 논의만 시작해놓고 결론을 내리지 않아서 저쪽에 방어막을 칠 시간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정부와 여당이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끝까지 밀고 갈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역사 교과서는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 자체는 맞는 말이지만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합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지역인 한반도에서 역사 교육은 남이든 북이든 국가가 관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과서를 이념이 다른 세력에게 내주는 것은 스스로 무장 해제하는 것이고, 우리 헌법 테두리를 벗어나는 교과서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1987년 '한국민중사'는 김일성에 대한 부분도 없고 민중 봉기를 서술하는 정도였는데도 사법적 제재를 받았습니다. 체제 수호가 기본 책무인 국가가 무책임하게 역사 교과서들을 내놓고 교사와 학생들의 판단에 맡기자는 것은 덜된 지식인들의 허위 의식입니다."

―역사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검정과 수정 지시 등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지 않으냐는 지적도 있는데요.

"검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집필 기준이 매우 소략하고 추상적이어서 필진에게 너무 많은 재량권이 주어지며, 검정 기준도 따로 없습니다. 2013년 검정에서 9종 중 8종이 통과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또 검정을 통과하면 수정 지시로는 명백한 오류를 걸러내는 정도이지 서술의 기본 정서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 기준이 A4 용지 16쪽인데 이걸로 300쪽이 넘는 건물을 지으려면 부실 공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좌파들은 집필 기준을 더 간략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사 검정 교과서의 좌편향뿐 아니라 수준도 문제라고 얘기해오셨습니다.

"좌편향 검정 교과서들의 필진을 보면 민중사학의 대표적 학자는 다 빠지고, 그쪽에서도 B·C급입니다. 교과서를 쓸 역량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교수는 절반도 안 되고, 교사들이 과반수 이상입니다. 중·고교 교육 현장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주장 때문에 교사들이 참여했는데 보조 역할이 아니라 집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학계의 최근 연구 성과는 알지도 못하고 철 지난 낡은 내용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지금 검정 교과서 상황은 조금 심하게 말하면 장터에서 사람을 구해다가 만드는 격입니다."
<
BR>―국정 한국사 교과서를 만드는 데 유의할 점은 어떤 것입니까.

"국정 교과서는 각 분야 전문가인 교수들이 책임을 지고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 교과서를 만들려면 최고의 필진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 과제입니다. 5~6명 필자가 50~60쪽씩 맡으면 수준 높고 균형 잡힌 교과서를 쓰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문장을 다듬는 시간까지 감안해도 1년이면 부족하지 않습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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