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이런 내용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건 비극이다. 동성애가 정신질환 진단 매뉴얼에서 삭제된 것은 1973년이었다. 미국정신의학회는 ‘동성애가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또는 직업능력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즉, 학교에서 교육받고 직장에서 일하는 데 동성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어떤 의학 교과서도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팀 쿡·조디 포스터도 치료할 텐가
이러한 사실은 일상을 묵묵히 살아내는 동성애자들만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동성애자들의 삶을 통해서도 현실에서 입증됐다. 조디 포스터나 엘런 페이지 같은 할리우드의 스타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샤넬이나 마크 제이콥스 같은 명품 브랜드의 수석디자이너들도 동성애자니까. 심지어 전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기업,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도 동성애자다. 전세계는 그들이 출연한 영화를 보고, 그들이 디자인한 가방을 들고, 그들이 만든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기에 그것을 치료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동성애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된 지 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몇몇 공동체를 중심으로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환치료가 행해지고 있다. 그 치료는 두 가지 착각을 전제로 한다.
첫째, 성적 지향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다는 착각이다. 성적 지향이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에 대한 논쟁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유전적·발달학적·사회문화적 원인에 대한 연구가 계속 진행됐지만 우리는 무엇이 주요한 원인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원인이 무엇이건, 과연 개인이 스스로 성적 지향을 선택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미국소아과학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신 문헌과 이 분야 대부분의 학자들은 성적 지향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즉, 개인이 선택해서 동성애자 또는 이성애자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말하며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성적 지향은 대개 아동기 초기에 형성된다”고 밝혔다. 즉, 대다수의 경우 개인이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인지하게 되는 10대에 이미 성적 지향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둘째, 효과적인 동성애 전환치료가 존재한다는 착각이다. 전환치료는 외부적인 힘을 빌려 성적 지향을 강제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동성애 전환치료’가 시행됐고, 그 과정에서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계속 제기됐다.
‘전환치료’ 효과 입증 안 돼
그러나 몇몇 근본주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전환치료를 계속하자 이와 관련해 미국심리학회는 2009년 ‘성적 지향에 대한 올바른 치료적 대응’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그동안 출판된 동성애 전환치료 논문 83편을 검토하고, 학회 차원에서 내린 결론은 단순하다. 현재 효과가 입증된 동성애 전환치료는 존재하지 않으며, 성적 지향을 억지로 바꾸려는 것은 동성애자의 우울, 불안, 자살 시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고 ‘동성애 전환치료’는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는 반박이 일자, 그다음에 나오는 세 번째 주장이 동성애가 ‘형벌과도 같은 죽음의 질병’인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유발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동성애자 인구에서 AIDS 유병률이 높다는 점을 근거로, 동성애자 간의 성관계가 AIDS라는 치명적인 질병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여러 면에서 잘못된 주장이다. 우선 2016년 현재 AIDS는 의학적으로 더 이상 치명적인 죽음의 병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다. 1995년 개발된 칵테일 요법을 비롯해 다양한 치료제의 개발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의 질병 진행 속도를 낮출 수 있게 되었고, AIDS 발병 뒤에도 환자의 건강 상태를 개선할 수 있다. 2013년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살을 기준으로 치료를 받는 HIV 감염인의 기대수명은 일반 인구의 기대수명에 가까운 70대 초반으로 나타났다. HIV에 감염되고도 50년을 더 사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AIDS를 예방하는 것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모두 안전한 성관계를 갖도록 권장하고 정책을 실행해야 할 일이지, 동성애자 수를 줄인다고 달성될 일이 아니다. 동성 간 성관계가 HIV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동성 커플에서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갖는 경우에 한해, HIV가 파트너에게 전염될 위험이 높을 뿐이다.
따라서 HIV 감염을 줄이기 위해서는 동성애자를 포함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더 안전한 성관계를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전환치료 등을 통해 동성애 자체를 줄이려는 시도는 비과학적이고 비윤리적이며 무엇보다 효과가 입증된 바 없기 때문이다.
유엔의 반기문 총장도, 세계은행의 김용 총재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고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사라져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2016년 한국을 살아가는 동성애자는 그 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동성애에 대한 오해와 혐오 때문이다.
성소수자 3159명을 대상으로 2013년 시행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 조사’ 보고서에서 응답자의 41.5%가 차별이나 폭력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었고, 67%가 직장 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조롱이나 차별이 자주 발생한다고 답했다. 이러한 혐오는 사람을 아프게 한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 중 28.4%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고, 19살 미만에서는 자살 시도자 비율이 45.7%에 달했다. 10대 성소수자 둘 중 한 명이 자살을 시도했던 셈이다.
성소수자들 우울·불안 심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