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지나면 자연스레 찾아오는 여름, 무더위로 대별되는 여름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무겁고 지치게 하지요. 하지만 여름 열기에 누그러진 의식의 반면은 오히려 느긋함의 숨을 트게 하지 않을까요? 작가는 더위에 지쳐가던 순간에 시선을 바꿔 여름을 다시 바라보게 이끕니다. 그러자 여름의 더위는 앞을 향해 달려가던 우리에게 '잠시 멈추라'는 의미로 다가오고, 쉴 그늘을 만들기 위해 여름 나무가 무성했음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더위에 대한 생각이 열리자, 여름 바다의 쨍쨍한 열기는 온몸으로 들어와 붉은 색의 팔레트가 되고, 내리치는 세찬 빗줄기는 선으로 살아나 더위에 매몰되었던 기억을 아름답게 그려나갑니다. 여름은 달게 익어가는 복숭아 위에 그 마지막 열기를 쏟으며, 우리 곁에 달콤함으로 남겨집니다.
여름을 한 권의 그림책에 담는다면 이렇게 『그림자 너머』를 출간하고 6년만에 이소영 작가를 다시 만납니다. '나'에 대한 질문과 그 답을 찾아 그림자 너머로 떠났던 작가는 이제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순환, 그 중 가장 뜨겁고 치열한 계절인 여름을 가지고 왔습니다. 여름과 쉼표가 함께하는 책 제목이 주는 여운에서, 봄이 지나고 찾아온 여름이자 가을에 자리를 내어줄 여름으로, 또 잠시 쉬며 '여름'을 마주하게 하는 두 가지 느낌에 잠겨봅니다. 여름 더위에 지치고, 눅진해진 기분과 육체를 작가는 빨간색 물감으로 거침없이 발화시킵니다.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고 싶을 때까지. 그리고는 여름의 태양을 피하기 위해 썼던 선글라스를 통해 직접적이지만 연관성 있게 시선을 바꾸지요. 『여름,』에서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요 요소 중 하나는 색채입니다. 턱밑까지 치밀어 오르는 여름의 열기를 붉은색으로, 시선의 전환 그 이후로 등장하는 초록을 거치며 또다시 복숭아의 빨간색으로 귀결시키는 색의 향연으로 여름을 경험하게 합니다. 더위가 형상화된 '여름이'들을 보는 재미도 남다릅니다. 여름을 그저 더위로만 받아들이고 지쳐가는 이들에게 여름이들의 표정은 짓궂기만 합니다. 그러나 여름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순간부터 보여지는 여름이들은 귀엽고 편안하고 너그럽고 가볍고 친근하지요. 이처럼 여름이들은 상대적인 관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첫 그림책 『그림자 너머』에서 머리와 몸이 합쳐져 조금은 낯설었던 '나'가 『굴뚝귀신』에서는 엄마가 되어가는 굴뚝귀신으로, 『여름,』에서는 한여름의 더위를 나타내는 여름이들로 이미지가 오버랩 됩니다. 독창적인 캐릭터가 작품을 건너 변주되고 성장하는 모습에서 그림책작가로서 진일보하고 있는 이소영 작가를 다시 만납니다.
본문중에서
시선의 전환 '여름'은 덥습니다. 높아지는 불쾌지수로 인해 몸도 마음도 쉽게 지칩니다. 그림책 『여름,』은 이 힘든 시간을 가로지르는 우리의 일상을 담은 작품입니다. '고진감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우리가 견디기 어려운 과정 속에 있을 때 자주 되뇌는 일종의 용기와 응원의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로도 쉽게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작품은 발상의 전환을 다시금 시도합니다. 비움과 동시에 채우는 바람처럼, 여름은 어쩌면 숨가쁘게 쌓여가는 복잡한 순간들을 무심코 흘려 보내기 쉬운 계절일지도 모릅니다. 피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가까운 미래에 맛보게 될 달콤한 열매에 대한 기대감은 없어도 좋습니다. 여름의 왕성한 생명력에 잠시라도 우리의 머리와 다리를 기댄 채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호흡할 수 있다면, 여름은 그 자체로 값지고 의미 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