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표지는 밤 풍경. 별똥별 쏟아지는 들판에 양떼 한 무리 잠들어 있고, 그 속에 두 아이가 누워 있습니다. 유심히 들여다보니 치타와 거북, 캥거루......, 코끼리도 섞여 있습니다. 아이들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데, 별똥별을 바라보며 소원이라도 비는 걸까요? 묘한 광경의 표지를 넘겨 봅니다.
앞면지 속엔 비 내리고, 불 켜진 창 안으로 두 아이의 머리가 보입니다. 하나는 눈앞의 화면에 푹 빠져 있고, 다른 하나는 무엇을 하는지 머리꼭지만 보입니다. 다음 장을 열어보니, 속표지 제목 아래 비스듬히 등을 돌린 텔레비전과 스마트폰.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어린 오누이가 방 안에서 저마다의 세계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누나는 스마트폰 게임, 동생은 텔레비전. 엄마아빠는 일하러 나갔는지 거실엔 상보 씌운 밥상이 놓여 있습니다. 문득 둘 사이의 침묵이 무료해진 듯 동생이 말을 건넵니다.
"누나! 내 친구네 강아지 되게 귀엽더라. 우리도 강아지 키우면 좋겠다." 누나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짧게 대답합니다. "안 돼." "왜?" "엄마가 안 된댔어. 똥 싸고, 털 빠지고, 짖는다고." "그럼 늑대는 어때?" "안 돼." "왜?" "늑대는 밤마다 울잖아. 시끄럽고 무서워." "그럼 하마는?" "안 돼." "왜?" "하마는 물에 살아. 우리 집이 어떻게 되겠니!" ......
도통 현실적이지 않은 동생의 질문은, 가만 생각하니 진지한 욕구의 표현은 아닌 듯합니다. 그저 그때그때 텔레비전에 나오는 동물들을 보이는 대로 자동기술 하는 듯. 얼핏 근거가 충분한 누나의 대답 또한 그다지 성실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스마트폰에 코를 박은 채 질문 받은 자의 의무를 건성으로 치르고 있을 뿐. 겉돌던 대화는 캥거루와 기린을 거쳐 공룡에 이르러 파탄이 납니다.
"그럼 누나, 공룡은 어때?" "이 바보야! 공룡은 멸종됐잖아!"
누나의 주먹이 동생의 머리통을 쥐어박는데, 동생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것이었을까요, 게임을 방해하는 성가신 질문들에 대한 응징이었을까요? "으아앙~! 근데 왜 때려! 안 키우면 그만이지, 왜 때리느냐고!" 울음을 터뜨리는 동생을 바라보며, 어쨌든 미안한 마음이 누나의 표정에 배어납니다. 누나는 어떻게 동생을 달래야 할까요? "알았어, 알았어. 미안, 미안해. 그럼 우리 이렇게 하자." "어떻게?" "우리 함께 거북이를 키워 보자." "거북이?" "응. 거북이는 조용하잖아. 아래층 할머니도 좋아하실 거야." 그제야 오누이는 눈을 맞추며, 겉돌던 대화의 궤도를 바로잡습니다. "누나, 누나. 그럼 우리 코끼리도 키우자." "코끼리?" "응. 코끼리랑 같이 목욕하면 재밌을 거야." "그래. 그럼, 치타도 키워 볼까?"...... 어느새 둘 사이에 즐거운 상상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둘은 함께 거북들과 모래찜질을 하고, 코끼리와 목욕놀이를 즐기며, 치타를 타고 드넓은 초원을 달립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그 세계에 밤이 찾아오고, 오누이는 푸른 언덕 비탈을 가득 메운 양떼의 포근한 틈새에 누워 쏟아지는 별똥별을 바라봅니다. 거기 낮에 함께 뛰놀던 거북과 치타와 코끼리도 섞여 들었습니다. 나란히 누운 오누이는 이제 같은 곳을 바라보는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데 누나, 거북이랑 코끼리랑 치타랑 양이랑 같이 사는 거 엄마가 허락해 줄까?" "아니. 허락 안 할 걸." "그럼 어떡해?" "비밀로 해야지.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엄마 몰래 어떻게 같이 살아?" "나도 몰라. 그건 함께 생각해 보자." 둘을 섬처럼 고립시켰던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은 꺼져 있고, 오누이의 얼굴엔 웃음이 피어 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뒷면지로 넘어가니, 밖에는 여전히 비 내리는데 창 안은 너른 초원 맑은 하늘에 흰 구름 뭉게뭉게 떠 있습니다. 오누이의 상상놀이가 아직도 한창인 듯. 그렇게 둘 사이에 공유하는 한 세계가 생겼습니다. 고립된 섬과 섬이 이어졌습니다. 다행스런 마음으로 책장을 덮을 때, 한 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무슨 까닭으로 자신들의 상상놀이를 비밀에 부치기로 한 걸까요? 독자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