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화의 창작 그림책 [물싸움]이 출간되었다. 언제나 본인만이 할 수 있는, 개성 강한 이야기를 들고 오는 작가이기에 더욱 기대되는 신작이다. 강렬한 태양을 바라보는 아저씨들의 밀짚모자에서부터 익숙한 농촌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림책의 언어로 강렬하게, 그러면서도 현실을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담아낸 그림책 [물싸움]은 여태껏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을, ‘물싸움’을 다룬 본격 농촌 그림책이다. 말 그대로 지독한 가뭄이다. 어린 벼는 뜨거운 태양에 타들어가고 잡초마저 힘이 없이 늘어진다. 농부들은 태양보다 뜨거운 눈으로 자기 논을 지킨다. 눈만 마주쳐도, 옷깃만 스쳐도 싸운다. 물을 가져와 어떻게든 자신의 논을 살리기 위한 치열한 물싸움. 이 그림책은 그 순간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작가 특유의 그림체는 이번 그림책에서도 제 역할을 톡톡하게 해낸다. 막힘없는 붓선 위로 과감하게 얹어지는 색채들이 농촌 특유의 감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사람과 논, 모두를 살리는 지혜 ‘팻물’ 과거가 아닌 오늘날의 모습
물싸움이 시작되면 농부들은 눈에 불을 켜고 논을 지켜야 한다. 어떻게든 남의 논에 들어가는 물은 막고, 자기 논에 물꼬를 터야하는 것이다. 모두가 지쳐간다. 그 때, 한 늙은 농부는 이렇게 외친다. ‘팻물!’ 팻물은 가뭄이 극심할 때, 순서를 정해 그 차례대로 논에 물을 대는 것을 뜻한다. 농부들이 합의하여 정하는 약속으로, 적은 물을 고루 나누어 쓸 수 있는 방법이며 농부들의 지혜이다. 팻물의 규칙은 반드시 수로인 보에서 가장 먼 논부터 물을 댄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보에서 가장 가까운 논의 농부는 물을 지척에 두고도 마지막인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그 누구보다 속이 타들어가지만 절대 자신의 순서가 오기 전까지는 물꼬를 틀 수 없다. 이 불문율을 어길 수 없는 이유는 ‘팻물’만이 사람과 논, 모두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도시인들에게는 생소하게만 느껴질 ‘팻물’은 사라져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관습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농촌에서 볼 수 있는, 꾸밈없는 농촌의 진짜 모습이다. 누군가에겐 가뭄이나 홍수가 뉴스 보도에서나 볼 수 있는 일로만 느껴지겠지만 농촌에서는 농부들의 삶과 직결되는, 그 무엇보다 급박한 문제이다. 리얼 농촌인만이 알 수 있는 농촌의 진짜 모습. 작가는 많은 시간을 시골에서 보내며 농촌과 농부들의 모습에 시선을 두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직접 살면서 느끼고 체득한 것들을 모아 이 이야기를 꾸렸다. 그래서일까. 비가 오지 않는 절박한 상황을 군더더기 없이 풀어내는 작가의 글은 모든 것을 아는 사람처럼 현실적이며 담담하다. 마치, 진짜 농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 물싸움을 통해 보는 자연과 인간
툭, 툭, 툭, 비가 쏟아지는 순간, 농부는 환호성이 아닌 눈물을 흘린다. 쩍쩍 갈라졌던 논 위로 물이 흐르고 벼들을 일어서게 하는 것은 결국 자연이다. 하늘이 요란하게 쏟아내는 빗줄기는 모든 것을 해소하는 듯하다. 가뭄은 물론, 농부의 고민과 갈등까지도. 그림책 [물싸움]은 농촌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줌으로써 자연과 그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함께 드러내고 있다. 자연 앞에서 까맣게 속이 타들어가지만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농부들, 그리고 어떻게든 그 순간을 버텨내고자 하는 모습과 그 속에서도 또 다시 드러나는 인간의 한계까지. 논을 살리기 위한 농부들의 모습은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을 투영하고 있다. 그런 모습들은 작가의 그림을 통해 극대화된다. 과감하게 화면을 가득 채운 태양의 강렬한 모습이나 특징이 잘 살아있는 농부들의 표정, 몸짓 하나까지도 감각적으로 이 이야기를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한 쌀 한 톨의 무게. 다가오는 추수의 계절에 아이와 어른 모두가 진짜 농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