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식민지배와 분단, 전쟁과 휴전으로 이어지는 우리 현대사는 이 땅에 큰 불행을 안겼습니다. 이 땅에 궁극의 평화를 모시려거든 분단을 허물고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통일의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그렇다고 가만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통일의 길을 찾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이 그림책은 바로 그 비무장지대의 자연과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책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은 현재의 아픔을 공감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할아버지는 이젠 더 이상 전망대에 올라가고 싶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굳게 닫힌 철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
양지바른 풀밭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왜냐 하면 그곳이 할아버지의 그리운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분단을 허물 소박한 꿈꾸기
식민지배와 분단, 전쟁과 휴전으로 이어지는 우리 현대사는 이 땅에 큰 불행을 안겼습니다. 무엇보다, 거대한 ‘분단 체제’를 낳았으니 이 땅의 모든 불신과 갈등, 불안과 불화가 거기 뿌리를 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궁극의 평화를 모시려거든 분단을 허물고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통일의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두 세대를 넘긴 분단의 역사는 이미 사회의 모든 분야에 그 체제를 견고하게 고착시켰습니다. 이 땅을 둘러싼 세력들은 분단으로 얻을 수 있는 자기들의 잇속만을 저울질하며 통일을 경계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통일의 길을 찾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림책의 자리에서 그 길은 무엇일까요? 이 책의 작가는 어린이와 함께 꿈꾸기를 선택했습니다. 어린이는 장래의 주인이고, 꿈꾸기는 미래의 시작이니까요. 그 꿈은 참으로 평범하고도 소박합니다. 그저 할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가 두고 온 고향에 돌아가는 것, 그곳에서 할아버지가 헤어진 동무와 다시 만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 그러나 그 꿈은 너무나 어렵고도 간절합니다. 그곳이 바로 분단의 상징, 비무장지대의 철책 그 너머이기 때문이지요.
평범하고도 소박한 꿈이 어렵고도 간절한 소원이 되어버리는 역설, 이 그림책은 그 역설의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역설이 해체되는 그날을 꿈꾸면서 말입니다.
분단된 나라의 슬픔, 비무장지대 이야기
분단의 상징 비무장지대, 서쪽 임진강 하구에서부터 동쪽 고성군 명호리 바닷가까지 248킬로미터에 이르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2킬로미터씩 물러나 세워진 철책과 철책 사이의 이 공간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땅입니다.
비무장지대는 ‘무장하지 않은 지역’이라는 뜻이지만 그 가장자리로는 남북 양쪽에서 백만 명이 넘는 군인들이 갖가지 무기로 무장을 한 채 서로 노려보며 맞서고 있지요. 사람들의 출입이 제한된 까닭에, 역설적이게도 비무장지대와 그 언저리에는 다른 곳에서는 사라졌거나 사라질 처지에 있는 동식물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 그림책은 바로 그 비무장지대의 자연과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수달과 고라니, 멧돼지와 산양 들이 그곳을 뛰어다니고, 갖가지 새들이 그곳에 둥지를 틀고 번식을 합니다. 연어 떼가 그곳의 강을 찾아와 알을 낳고, 철새들이 그곳을 자유로이 넘나들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그곳에 살 수 없습니다. 군인들이 철따라 행군을 하고, 출동 훈련을 하고, 녹슨 철조망을 수리하며 철책을 지키고 있을 뿐이요, 관광객들과 실향민들이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으로 그곳을 바라볼 뿐입니다. 그림책은 바로 그러한, 자연의 생기와 인간의 살벌함이 교차하는 묘한 풍경을 철따라 성실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풍경마다 한 켠에는 철조망이 어김없이 자릴 잡고 있지요.
고향 잃은 할아버지의 망향 노래
그 비무장지대를 ‘바라보는’ 곳, 전망대를 할아버지는 철마다 손자와 함께 찾아옵니다.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북녘 땅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텅 빈 북녘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기도 합니다.
그러기를 벌써 몇 십 년, 할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전망대에 올라가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봄이 오면, 할아버지는 굳게 닫힌 비무장지대의 철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그 곳으로 걸어 들어가, 양지 바른 풀밭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왜냐 하면 그곳이 할아버지의 그리운 고향이기 때문이지요.
어찌 그것이 할아버지 혼자만의 바람일까요? 철책 너머에 고향을 두고 온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소망이요, 그것은 남이든 북이든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므로 할아버지가 꾸는, 비무장지대의 꿈속에서는 남과 북의 할아버지가 만나 뜨겁게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같은 고향에서 함께 놀던 그리운 친구 사이겠지요.
발로 뛰어 성실히 그려 낸 꼼꼼하고 아름다운 그림
누구나 아는 것처럼 비무장지대는 통제된 곳입니다. 그 언저리 또한 민간인통제지역으로,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곳이지요. 그러한 곳의 자연과 사람의 풍경을 생생히 담아내기 위하여 작가는 몇 십 차례 민통선 안쪽을 답사하고, 비무장지대 생태 전문가들을 따라다니는 수고를 마다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작가는, 아직도 수없이 묻혀 있는 대인지뢰에 발목이 날아간 멧돼지와 철조망에 걸려 날개가 부러진 수리부엉이를 목격하기도 하고,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는 북방한계선 앞에서 망연자실 북녘 땅을 바라만 보는 아련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꼼꼼하고 섬세한 그림 속에 고스란히 담겨 생생하면서도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일본, 중국과 공동 출간하는 평화그림책 시리즈의 둘째 권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은 ‘한중일 공동기획 평화그림책’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곧 출간됩니다(10월 예정).
평화그림책은 어린이들이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국 · 중국 · 일본 세 나라의 작가들과 출판사들이 함께 만드는 그림책 시리즈로, ‘과거를 정직하게 기록하고 현재의 아픔을 공감하며 평화로운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는 슬로건 아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책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은 그 가운데 ‘현재의 아픔을 공감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처: 인터파크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