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입니다
“아빠, 할머니 다시 가라고 하면 안 돼요?” 어린이의 눈, 어린이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우리 시대 가족 이야기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 나, 남동생. 이렇게 넷이다. 우리는 엄마, 아빠가 하는 작은 식당에서 산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 우리랑 살기 싫다며 여태 시골에서 따로 살던 할머니가 느닷없이 우리 집에 살러 온 것이다. 이제는 할머니랑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야 하는데, 암만 봐도 할머니가 좀 이상하다. 엄마가 사다준 옷은 안 입고 주워온 옷을 얼기설기 기워 입지 않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엄마에게 세탁기를 쓰지 말라지 않나, 밥상머리에선 입에 든 음식을 퉤퉤 뱉기 일쑤고, 손님들 앞에서 창피한 줄 모르고 훌렁훌렁 옷을 벗는다. 그 정도는 문제가 아니다. 요즘은 똥오줌도 제대로 못 가리고, 한번은 학교 담장 밑에서 자는 걸 아빠가 업고 오기도 했다. 나는 할머니가 싫다. 예전처럼 그냥 우리끼리 살면 안 되나? 엄마도 아빠도 힘들어 보이는데…….
_지금 우리에게 ‘가족’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가족의 모습은 이삼십 년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바뀌었다. 핵가족이라는 말은 새삼스러워서 도리어 낯설다.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집은 전체 가구의 7%에 불과하다. 낮은 출산율, 증가하는 독거노인, 어린이집, 놀이방, 양로원…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보여주는 익숙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며 책을 보자. 작은 중국집에서 종일 고단하게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주인공 부부에게 삶은 그다지 녹록하지 않다. 게다가 치매 노인이라니. 작가는 일곱 살 남짓한 아이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한다. 왜 하필 아이일까? 아이는 부모가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면서, 동시에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이해되지 않는 사건들을 바라보던 아이의 시선, 낯선 존재로 할머니를 탐색하던 아이의 시선은, 부부가 할머니와 아이를 씻기는 목욕 장면에 이르러 문득 사라진다. 자연스럽게 감정이 전이되고, 동질감이 싹트고, 조금쯤 경계가 열린다. 이제 아이는 ‘가족’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효나 조건 없는 헌신이라기보다는 이해와 연민의 눈으로 가족을 바라본다. 그래서 작품에 온기가 돈다.
_시대와 국적이 분명한 이야기, 현실에 단단하게 뿌리를 둔 이야기 치매 걸린 할머니, 먹고살기 위해 고단하게 일하는 사람들, 가게와 살림방을 드나들며 자라는 아이들. 현실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일상의 풍경이지만, 우리 그림책에서는 별로 본 기억이 없다. 이 그림책은 현실의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매우 드문 책이다. 화자인 아이의 눈길은 정직하고 가차 없다. 아이는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한다. 할머니가 싫다. 아이의 목소리는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둔탁한 연필 선으로 묘사된 엄마 아빠는 잘 웃지 않는다. 고단한 얼굴, 견뎌내는 표정이 전부다. 힘들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진솔한 모습이다. 사람들의 삶이 대부분 그렇듯이. 할머니가 손님들 앞에서 훌렁훌렁 옷을 벗어도 엄마는 그저 옷을 입혀줄 뿐이고, 아빠는 배달하러 간다. 작가는 할머니의 늘어진 가슴과 배를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치장도 꾸밈도 없다. 그래서 더욱 실감이 나며, 그래서 더욱 우리 마음을 움직인다.
_치밀하고 탄탄한 연출과 구성 그림책에서 글과 그림은 번갈아가며, 때로는 엇갈리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림책의 성공 여부는 글과 그림이 얼마나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가에 달려 있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는 시각적 내러티브 짜기, 시각 연출 또한 중요하다. 이야기에 현실감을 불어넣고, 장면마다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면서, ‘그림책을 보는 재미’를 만들고 내용과 주제를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방식 말이다. 할머니가 옷장에 젓갈을 두어 구더기가 나오는 장면을 보자. 텍스트는 아이의 종알거림 세 마디뿐이다. 그러나 그림은 꿈틀거리는 구더기, 돌아누운 할머니의 완고한 뒷모습, 더러워진 옷을 들고 삐죽대는 아이, 어지러운 세간 속에서 힘겨워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준다. 거리에서 잠든 할머니를 아빠가 업고 오는 장면에서는, 할머니는 책 밖으로 넘칠 정도로 크고, 엄마는 왜소하다. 할머니의 커다란 등, 아빠 팔의 힘줄과 상기된 옆얼굴, 걱정스런 엄마의 표정은 삶의 무게와 함께 부부의 따뜻한 마음을 드러낸다.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그러면서도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장면을 연출한 솜씨가 돋보인다.
_작가의 실제 가족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가의 부모님은 실제로 부산에서 작은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사남매를 키우고 정신이 온전치 않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책 표지에 쓰인 가게 이름 ‘신흥반점’이 바로 그 식당의 이름이다. “부몬데 우짤끼고.”라는 한 마디로 고단한 삶을 불평 없이 살아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 작가가 이들과 함께 한 어린 시절을 되새기며 삼 년 동안 작업한 결과가 이 그림책이다.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탓에 도리어 더 힘들었고 수십 번에 걸쳐 다시 그렸다고 한다.
출처: 인터파크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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