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1반

서로 다른 스물 네명 학생이 모였습니다. 일 년 동안 많은 일을 함께 겪을 예정입니다.

함께 도와가며 같이 성장하고 좋은 기억을 남기며 올 한 해를 멋진 추억으로 만들어 갑시다.

나를 사랑하고 남을 배려하자
  • 선생님 : 김재욱
  • 학생수 : 남 11명 / 여 13명

5.16쿠데타

이름 박시우 등록일 23.04.07 조회수 20

5.16 군사정변은 1961년 5월 16일에 박정희 소장을 비롯한 대한민국 육군 장교들이 일으킨 정변이다. 이 정변으로 제2공화국의 장면 내각은 출범 9개월 만에 무너졌고, 박정희를 수반으로 하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등장하였다.

당시 국군에는 이승만 정권 때부터 군의 부정부패와 비리, 승진가도 중단에 불만을 품고 4.19 혁명 이후 정군 운동을 벌여 미국과 충돌했던 일군의 장교 세력들이 있었다. 육군소장 박정희[6]와 1961년 2월 강제 예편당한 김종필[7]을 비롯한 육군사관학교 8기생[8]을 중심으로 한 장교들은 이로 인해 1961년 5월 말 강제 예편이 예정되었고, 이에 비밀리에 쿠데타를 기획하게 된다.

정변 세력들은 예비사단 병력과 포병단, 해병대와 육군 제1공수특전단[9] 등을 동원하여 1961년 5월 16일 새벽 서울을 비롯 대구시부산시 등의 방송국 등 주요 시설을 무력으로 점거하였다. 이들은 주한미군과 주한미국대사관의 공식적인 반대 성명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장도영과 통수권자 대통령 윤보선을 회유함으로써 국무총리 장면을 사퇴시키고 봉기 60여시간 끝에 제2공화국을 무너뜨려 행정부, 국회, 대법원의 역할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전권을 군사혁명위원회로 가져온다.

이튿날 아침 박정희는 군사혁명위원회를 장도영을 의장으로 하고 자신을 부의장으로 하는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편하였으며, 1962년 12월 31일까지 전국의 모든 정치인 활동을 일체 불법화하고 언론 사전 검열을 실시함은 물론 정기 간행물 1,200여 종을 모두 폐간시킨 뒤 2년 반 가량 군정을 실시했다.

예전에는 이 사건이 군사혁명(보수계 세력), 군사반란(진보계 세력), 군사정변을 비롯한 여러 이름으로 통했다. 5.16 주체세력이 정권을 잡고서부터 6.10 민주 항쟁 이전까지는 5.16 군사혁명으로,[10] 민주화 후로는 5.16 군사정변이 공식 표현으로 자리잡았다 출처: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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