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송천초등학교 5학년 1반입니다.
우리 학급은 학생, 학부모와의 소통 창구로 하이클래스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샤워실 탈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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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선생님 | 등록일 | 25.10.01 | 조회수 | 28 |
나에게는 사소한 습관이 하나 있다. 예전에 혼자 사는 사람이 화장실에 갔다가 문고리가 고장나 갇혀 굶어 죽은 이야기를 본 뒤로 혼자 있을 때는 절대 화장실 문을 닫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좁고 숨 막히는 곳에서 며칠을 보내며 느꼈을 두려움과 막막함, 결국 살아서 나가지 못할 거라는 걸 깨닫고 체념했을 얼굴이 꼭 내가 겪은 것처럼 생생해서 실수로라도 문을 닫으면 얼른 열고, 꼭 닫아야 할 때는 아주 잠깐이라도 스마트폰을 들고 간다. 지난 주말, 완주군청 테니스장에서 대회가 열렸다. 대회는 오전 9시에 시작해 팀별로 돌아가며 다섯 번의 경기를 마친 뒤 오후 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대회가 끝난 뒤 함께 참여한 사람들끼리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날씨가 더워서인지 땀에 젖은 옷이 유난히 신경쓰였다. 하지만 걱정할 것이 없었다. 평소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아 운동을 할 때 갈아입을 옷을 들고 오지 못한 날이 많았는데, 운동복을 입은 채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내게서 땀냄새가 나는 것 같아 마침 그날은 여분 옷을 챙겨온 것이다. 나의 준비성에 새삼 놀라며 차에서 옷가지와 수건이 들어있는 가방을 꺼냈다. 차 문을 닫으려다 한쪽 손에 들린 스마트폰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져 시트 위에 던지듯 올려놓았다. ‘어차피 간단히 씻고 나올 건데, 10분이면 돼.’ 사무실 건물 2층에 있는 샤워실은 듣던 대로 쾌적했다. 게다가 한차례 사람들이 씻고 나간 건지 아무도 없었다. 평소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는 더 잘된 일이었다. 열려 있던 문을 살짝 닫고, 입구 쪽 커튼을 친 뒤 몸을 씻었다. 운동을 하고 집에 가기 전에 곧장 씻는 것은 처음이라 신선하기도 하고, 땀에 젖은 채로 차에 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니 앞으로도 이렇게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옷을 꿰어 입고 짐을 챙겨 나가려 문을 여는데 문고리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고리를 살펴보니 마지막으로 나간 누군가 잠금장치를 돌려놓은 채로 두어 자동으로 잠긴 것 같았다. 그렇담 열면 되지! 하고 시계방향으로 돌려보려는데, 단단히 고정된 것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반대인가? 이번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보려 했지만 여전히 그대로였다. 문고리를 꽉 쥔 채 세게 잡아당겨 보기도 하고, 몸에 힘을 실어 밀어보기도 했지만 문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주차장에 있을지도 모를 일행에게 연락을 하려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려 했지만 없었다. 스마트폰은 차에서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탈의실에는 다행히 창이 있었다. 활짝 열리지 않고 30도 정도만 비스듬히 열렸지만 말이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열린 창에 얼굴을 바짝 댄 뒤 누구라도 듣기를 바라며 소리쳤다. “저기요!” 나의 외침에 누군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나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이내 하던 일로 돌아갔다. “저기요! 저기요! 저 갇혔어요!” 성인이 되어 바깥에서 이렇게 큰 소리를 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더 이상 창피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런 나의 절박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차장의 차들은 하나둘 유유히 떠나갔다. 언제 이곳이 대회로 북적거렸나 싶게 적막감만 감돌았다. 실컷 씻은 것이 무색하게 얼굴과 목, 등줄기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이제 어떡하지, 나도 결국 그렇게 되는 걸까?’ 사무실 문은 언제 닫을까, 주말이니 곧 건물을 잠그고 다들 퇴근하는 건 아닐까, 당장 나가지는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곳이니 적어도 화요일엔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벽에 기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바깥쪽 복도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두 세명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며 가까이로 오고 있었다. 뒤늦게 샤워를 하러 온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문고리를 잡아당겨 보더니 “에이, 잠겨있네.”라고 말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다급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사정을 알게 된 문 바깥쪽 사람들은 아래층 사무실로 내려가 관리인 아저씨를 모시고 올라왔고, 그분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문고리를 이렇게 당겨보세요, 저렇게 해보세요, 하고 지시를 내렸다. 관리인 아저씨가 문틈으로 카드를 넣고 동시에 내가 힘을 실어 문고리를 누르자 딸깍, 하고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는 순간 마주한 문밖의 사람들이 얼마나 반갑던지! 나는 연신 감사합니다, 고개 숙이고는 빠르게 그 곳을 탈출했다. 꼭 몇 달 만에 밖으로 나와 빛을 보는 사람처럼 세상이 달리 보였다. 공기도 왜인지 신선한 것 같고, 멀리 보이는 산은 더욱 푸르게 보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몇 가지나 한 내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하필 가보지도 않았던 샤워실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려 했으며 스마트폰은 두고 간 것일까? 답을 내려 보자면 결국 ‘일어날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이 일어나려면 어떻게든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그것 말이다. 삶을 완전히 통제하고 관리하고 있다고 믿지만 세상살이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서 때때로 나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삶 앞에서 건방 떨지 말고, 쉽게 긴장을 놓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 일이 내게 준 최고의 교훈은 ‘스마트폰을 손에서 떨어뜨리지 말라’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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