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1반

5학년 1반  

남과 더불어 살자
  • 선생님 : 주황택
  • 학생수 : 남 14명 / 여 11명

태조왕건

이름 김은찬 등록일 21.11.22 조회수 12

송악에 왕륭이라는 부자가 있었습니다. 마침 좋은 집터를 얻어 새 집을 짓고 있을 때 지나가던 스님이 집 짓는 걸 보고 아쉬워하였습니다.
그것을 본 왕륭이 스님을 붙잡고 이유가 물었습니다.
˝집터는 아주 좋은데, 방향이 틀렸구려! 남쪽을 향해 지으면 왕이 태어날 집인데, 쯧쯧˝
그 말을 들은 왕륭은 집을 헐고 다시 남쪽을 향해 집을 지었습니다. 1년 뒤, 새집에서 아기가 태어났으니, 그가 바로 왕건입니다.
왕건의 집안은 대대로 송악에 살면서 세력을 떨치던 호족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인 작제건은 송악 일대의 백성을 동원하여 예성강 어귀에 성을 쌓을 정도로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건의 집안은 바다를 통한 무역으로 큰 부자가 되었고, 나라가 어수선해지자 군대도 두었습니다.
궁예가 예성강 가까이 세력을 넓히자, 왕건은 아버지 왕륭과 함께 궁예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궁예가 지금의 경기도·충청도 여러 지역까지 영토를 넓히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궁예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왕건은 궁예 다음으로 높은 벼슬인 시중에 임명되었고, 궁예의 부하들을 착실히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후삼국 초기에는 중부 지방을 모두 차지한 궁예의 후고구려가 가장 세력이 강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다스리는 능력이 부족했던 궁예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자 궁예의 포악한 정치를 보다못한 신하들이 궁예를 몰아내고 가장 덕이 있는 왕건을 왕으로 모셨습니다.
왕건은 고구려의 웅대한 기상을 이어받는다는 뜻으로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하고 서울도 자신의 터전인 송악으로 옮기고 개성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왕건은 궁예가 저질렀던 잘못을 하나하나 고쳐 나가면서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켜주니 고려의 세력은 날로 커져갔습니다.
그 때에도 후백제는 여전히 세력이 가장 강하였습니다. 후백제는 신라를 먼저 무너뜨리고 고려를 치려 했지만, 고려는 약해진 신라를 도와주며 친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고려는 후백제의 강한 군대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여 고생했지만 세력이 커지자 크고 작은 싸움에서 이기기 시작했고 963년 밀고 밀리는 싸움 끝에 고려는 논산에서 후백제군을 항복시켰고 후삼국을 통일시켰습니다. 왕건은 궁예나 견훤보다 늦게 세력을 이루었지만, 그 시대의 혼란한 사회 문제점을 잘 알고 백성들을 위하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왕건이 왕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서 왕이 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사람을 덕으로 부릴 줄 아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후삼국을 통일했을 거라 믿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왕건에게서 참 본받을 점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왕건처럼 사람을 덕으로 잘 대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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