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1반

안녕하세요! 배려와 사랑으로 하나되는 군산풍문초 5학년 1반입니다.^^

올 한해 예쁜 남학생 11, 여학생 14명과 함께하게 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우리반은 클래스팅으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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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 2023년 5학년 1반♡ - Classting 

배려와 사랑으로 하나되는 우리!
  • 선생님 : 임민선
  • 학생수 : 남 11명 / 여 14명

창덕궁 감상 및 여정 참고 (난 창덕궁을 안가봤으니까)

이름 김하율 등록일 23.07.04 조회수 44
감상 참고
나는 한가한 주말 오전에 모처럼 창덕궁을 찾았다. 창덕궁은 후원인 비원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조선 궁궐인데, 몇 년 전에 어머니와 함께 놀러왔던 이후로는 제대로 와보지 못했던 곳이었다.
창덕궁은 1405년(태종 5년) 정궁인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은 궁궐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이웃한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고 불렀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광해군 때에 다시 짓고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정궁 역할을 하였다.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면 창덕궁은 산자락을 따라 건물들을 골짜기에 안기도록 배치하여 한국 궁궐 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다. 또한 비원으로 잘 알려진 창덕궁 후원은 다양한 정자, 연못, 수목, 괴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탁월하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 홈페이지 ‘창덕궁 소개’
창덕궁은 다른 궁궐들과는 달리 입장시간과 관람코스가 정해져 있어 좀 더 전문적인 궁궐 설명과 효과적인 관람을 할 수 있었다.
관람코스는 이었다.
제일 먼저 돈화문은 보물 383호로 창덕궁의 정문으로 1412년에 지어졌다. 지금의 돈화문은 1609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궁궐 정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돈화(敦化)’는 ‘(큰 덕은 백성 등을)가르치어 감화시킴을 도탑게 한다.’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이층 문루에 종과 북이 있어 시각을 알려주었다고 하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인 만큼 그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금천교는 1411년에 축조된 돌다리이다. 조선의 궁궐에는 공통적으로 초입부에 풍수지리상 길한 명당수를 흐르게 하고 그 위에 돌다리를 놓았다. 특히 창덕궁의 돌다리는 그 아래 비단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 하여 비단 錦에 내 川을 사용한다. 다리 아래에는 남쪽의 해태상, 북쪽의 거북상을 배치하여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다. 다리 중간에는 잡귀를 쫒는 귀면이 조각되어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서 아름다운 난간석과 견고하고 장중한 축조 기술이 돋보이는 다리였다.
그 다음은 인정문과 인정전이었다. 인정문에서는 임금의 즉위식이 거행되기도 하였는데 연산군,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 임금이 여기서 즉위했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국가행사가 행해진 궁궐의 대표적인 공간이다.
선정전은 임금이 평소에 국사를 논의하던 편전이다. 임금은 중앙에 앉고 문관과 무관이 그 좌우로 앉고, 한쪽엔 사관이 앉아 국사에 대한 논의를 세세히 기록하였다. 이 건물은 현재 궁궐에 남아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희정당은 임금의 침실이 딸린 편전이었는데, 나중에 어전 회의실로 사용되었다. 1917년 대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의 건물은 1920년 경복궁의 강녕전을 옮겨지은 것이다. 내부 응접실에는 서양가구가 배치되어 있다.
대조전은 대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왕비의 침전인 서온돌과 임금의 침전인 동온돌로 나뉘어 진다. 1917년 이 건물이 불에 타자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을 옮겨다 지었다.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이 곳에서 승하하였다.
성정각은 세자가 학자들과 유교 경전을 공부하던 곳이다. 성정각 뒤의 관물헌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원래 내의원은 인정전 서쪽에 있었는데 1910년대부터 성정각을 내의원으로 이용하였다. 내의원은 궁중의료기관으로 왕과 왕족의 병을 치료하고 약을 조제하던 곳으로 내국이라고도 불렸다.
어차고는 과거에 빈청이라고 하여 정승들이 편전에 들기 전에 대기하며 국사를 의논하던 곳이다. 1910년부터 이 곳을 어차고로 이용하였다. 현재는 순종 황제와 황후가 사용하던 자동차와 조선시대의 교통수단을 전시하고 있다.
낙선재는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가 하나의 일곽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통칭하여 낙선재라 부른다. 낙선재는 1847년 후궁 김씨의 처소로 지어졌다. 이 곳은 마지막 황후인 윤황후(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가 1963년부터 1989년까지 거처하던 곳이다. 이 곳은 아름다운 꽃계단과 꽃담, 다채로운 침실 등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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