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2반

남을 배려하며 더불어 함께할 줄 아는 어린이

자신을 사랑하며 존중하는 어린이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어린이

  • 선생님 : 최진혁
  • 학생수 : 남 15명 / 여 14명

2모둠 사회

이름 김건희 등록일 19.05.23 조회수 19

곧이어 이어진 중공군의 5차 공세(1951.4.22-6.10)는 중공군이 참전한 이후 최대 병력과 소련으로부터 지원된 최대 규모의 장비를 투입한 마지막 공세였다. 이들은 4월에 서부전선의 개성-화천 방면에, 5월에 동부전선의 양구-인제 방면에 각각 전력을 집중시켜 총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중공군의 공세는 유엔군의 화력에 압도당하여 많은 희생을 남긴 채 저지되었으며, 유엔군은 반격작전을 계속하여 6월 15일 문산-철원-김화-화천-간성을 잇는 지역을 점령하였다. 이때 유엔군이 유리한 상황에서 반격을 중단한 것은 전전의 원상복구 상황에서 휴전을 모색하려는 미국의 정치적인 고려 때문이었다.

한편 이 무렵 중공군은 공격개시 직후 한계점이 노출되고, 미국 역시 내부적으로 정전 압박을 받아 새로운 해결책을 강구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유엔군측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에서 밀리게 되자 1950년 말경부터 내부적으로 정전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유엔은 5단계 정전 방안 등 여러 가지 중재안을 제시하였지만 번번이 공산군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이 시점 어느 쪽에서나 위험한 반격보다는 안정적인 봉쇄나 현상유지 정책이 타협안으로써 힘을 얻고 있었다. 전쟁이 세계대전으로 확전될 위험이 커지자 영국을 비롯한 참전국들 사이에서 전쟁 이전의 원상회복 선에서 전쟁을 마무리하자는 휴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3단계 (국가기록원 - 6.25 전쟁,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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