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2반

남을 배려하며 더불어 함께할 줄 아는 어린이

자신을 사랑하며 존중하는 어린이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어린이

  • 선생님 : 최진혁
  • 학생수 : 남 15명 / 여 14명

8.15 광복과 분단의 과정

이름 송지민 등록일 19.05.23 조회수 26

2. 8·15 광복 이후 민족 지도자들이 한 일

1)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조직

1945년 8월 15일,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의 결성
일제의 항복이 가까워지자, 조선 총독부는 조선에 남아 있던 일본인을 안전하게 일본으로 철수시키고자 하였어요. 조선 총독부는 당시 민중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던 여운형과 협상하고자 했어요. 이미 우리나라에선 여운형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 지도자들이 건국 동맹을 조직하여 건국 준비를 하고 있었답니다. 여운형은 조선 총독부가 협상을 요청하자, 일본이 “독립 투사들을 전원 석방하고, 조선의 건국 활동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협상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어요. 그리하여 여운형은 곧바로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만들었답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에서는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논의하였습니다.

1945년 8월 16일, 건국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다.
"조선 민족 해방의 날은 왔다. 우리 민족 해방의 첫걸음을 내디디게 되었으니 우리가 지난 날에 아프고 쓰렸던 것은 이 자리에서 모두 잊어버리자. 그리하여 이 땅을 참으로 합리적이고 살기 좋은 나라로 건설하여야 한다. 이때 개인의 영웅주의는 단연코 없애고 끝까지 모두 단결로 나아가자."

[네이버 지식백과] 8.15 광복과 분단의 과정 (천재학습백과 초등 사회 6-1)


8 · 15 해방

1945년 8월 15일, 라디오 방송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어요. 잠시 후 라디오에서 일본 국왕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일본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한다는 내용이었지요.
마침내 우리나라는 35년 만에 광복1)을 맞이했어요. 사람들은 꿈에 그리던 광복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거리거리로 뛰쳐나왔어요.

광복 이후 우리 민족을 지배하던 일본인들은 떠나고, 외국에 나가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되돌아왔어요.

당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주석2)이었던 김구는 우리나라가 우리만의 힘으로 광복을 맞이하지 못한 것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했어요. 9월에 한국광복군이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는 일본군을 공격하기로 이미 계획을 세워 뒀었거든요.

하지만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게 단순히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했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동안 우리 민족이 여러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펼치며 일본에 맞서 싸운 결과이기도 하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드디어 광복을 맞이했어요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2012.11.30., 황은희, 송진욱, 역사와 사회과를 연구하는 초등 교사 모임(역사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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