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1반

바르고 씩씩한 5학년 

  • 선생님 :
  • 학생수 : 남 8명 / 여 3명

한국 문화유산!!!!!!(2)

이름 안동현 등록일 21.06.22 조회수 55

 

국보 제62호. 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고, 3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팔작지붕건물이다. 거대한 미륵존불을 봉안한 불전으로, 일명 용화전(殿)·산호전(殿)·장륙전(殿)이라고도 불린다.

1층은 대자보전(殿), 2층은 용화지회(), 3층은 미륵전의 편액이 붙어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3층 불전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금산사는 백제 법왕 1년(599)에 창건한 대찰로서,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진표()가 중창한 것으로 되어 있다.

현 건물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35년 수문()이 재건한 뒤, 네 차례에 걸친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대석 바른층쌓기의 기단 위에 커다란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두리기둥을 세워 창방()을 걸고 평방()을 놓아, 공포를 주상()과 주간()에도 짜올린 다포식건축이다.

공포는 내외이출목()으로 주간에는 공간포()를 1구씩 두었고, 살미첨차[]의 끝은 모두 앙서[]로 되었는데 섬약하며, 연봉()을 새김한 것이 조선 중기에서 말기로 넘어가는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내부는 3층 전체가 툭 터진 통층으로, 초층에 네 개의 고주()를 세우고, 이 고주와 변주() 사이에 퇴량(退: 툇간에 건 보)을 걸었다. 이 퇴량 위에 2층의 변주들을 세워 이 변주들과 초층에 세웠던 고주들 사이에 커다란 퇴량을 걸었다. 3층에서는 1층부터 올라간 고주들이 그 변주가 되었다.

이와 같은 가구법()은 목조탑파에서 하나의 심주()를 세워 보[]들을 심주에 걸던 수법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 이 법당은 목조탑파의 가구법이 아니라 3층전각의 가구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내부의 공포에 있어 초제공()과 이제공() 모두의 살미첨차 끝은 한 판()으로 붙은 운형()으로 조각되어, 조선시대 중기 이후의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추녀에는 모두 활주를 세워서 떠받치고 있다. 중앙의 본존은 도금한 소상()으로서 높이 39척 (11.82m)의 입상이며, 좌우의 보처불(의 좌우에 모신 보살)은 높이가 각각 29척(8.79m)으로 역시 동일한 입상으로 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제 금산사 미륵전 [金堤金山寺彌勒殿]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보물 제25호. 높이 7.2m. 화강암으로 만든 석탑으로, 미륵전 오른쪽의 ‘송대()’라고 불리는 높은 언덕 위에 있다. 이곳은 부처의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 보물 제26호)으로, 맨 위에는 종() 모양의 사리장엄구가 있고, 그 남쪽에 석탑이 서 있다. 이처럼 계단 앞에 석탑을 세운 것은 사리신앙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석탑은 처음의 자리에 그대로 있다고 추정된다.

받침돌은 2층으로 구성되었는데, 아래층 받침돌은 10여 장의 길고 큰 돌로 조립된 바닥돌 위에 올려져 있다. 여러 장의 돌로 짜여진 아래층 받침돌의 면석에는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과 1개의 가운데 기둥이 가지런히 새겨져 있다. 덮개돌도 여러 장의 널돌로 결구()되었는데, 윗면의 굄대는 둥글고 네모난 모양으로 새기지 않고, 여러 장의 널돌로 1단의 높다란 굄을 만들어 끼워 특이하다. 윗층 받침돌의 면석 역시 여러 장의 널돌로 조립하였는데,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과 1개의 가운데 기둥, 가운데 기둥 양쪽의 면석을 각각 다른 돌로 구성하여 주목된다. 여러 장의 널돌로 짜여진 덮개돌은 밑면이 쇠시리인 부연()을 두지 않아 윗면처럼 평평하다.

탑신부()는 5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다만 2층 이상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던 데에 반해, 1층 몸돌은 여러 장의 돌로 이루어졌고, 1층의 지붕돌 역시 2장의 돌로 구성되어, 받침돌의 구성 수법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곧 1층 몸돌은 좌우에 제법 넓은 모서리 기둥을 조각한 돌을 세우고서, 그 사이에 면석을 끼워 조립하였다. 2층 이상의 몸돌은 체감률이 완만한 편으로, 1층 몸돌처럼 모서리 기둥이 제법 넓다. 지붕돌은 밑면에 낙수홈이 없고, 추녀 밑은 가운데 부분에서 좌우의 귀퉁이쪽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반곡()되어 넓은 편인데, 안쪽에 낮고 좁은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의 윗면은 윗부분의 경사가 급하지만 중간 이후에는 완만해졌고, 네 귀퉁이의 합각()도 전각()에 이르면서 경사를 줄였다. 각 층의 지붕돌 윗면에는 1단의 각진 굄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석탑의 조성 시기가 다소 늦었음을 알려준다.

머리장식인 상륜부()는 노반()부터 보주()까지 온전한 편이다. 다만, 상륜부의 크기가 커서 6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잘못 이해되기 쉬울 정도이다. 노반은 신라 석탑의 일반적인 모습과 약간 다른데, 몸체 각 면에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고, 윗부분이 덮개돌처럼 튀어나왔으나 밑면에는 받침이 없다. 노반 위에는 이형()의 복발()이 올려져 있고, 그 위에는 연꽃이 위로 솟은 모습의 앙련()을 새긴 앙화()가 놓여져 있으며, 그 위에 다시 보륜()을 얹고서 맨 꼭대기에는 보주를 꽂았다. 이처럼 상륜부의 모습이 이전의 전통적인 양식과 다른 것은 후대에 이르러 외래의 영향을 받아 조성한 탓이라고 추정된다.

이 석탑은 기본적으로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각 세부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곧 아래층 받침돌이 좁고, 위아래 받침돌의 덮개돌 위에 별도의 돌을 끼웠으며, 지붕돌 추녀 밑에 반곡을 두었다. 이것은 고려시대 석탑의 특이한 양식을 반영한 것이다. 이 석탑의 건립 시기는 조형 양식이나 각 부재의 돌다듬기 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로 추정된다. 석탑 뒤쪽에 놓여 있는 봉로대()는 석탑보다 뒤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 [金堤金山寺五層石塔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펼쳐진 김제 평야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곡창 지대1)예요. 동진강과 만경강이 흐르고 토양이 좋아 벼가 잘 자라지요. 김제에는 벼농사의 역사를 알려 주는 벽골제가 있어요.


벽골제는 저수지의 물이 넘치지 않도록 쌓은 제방이에요. 330년, 백제가 이곳을 다스리던 시기에 만들어졌어요. 3킬로미터가 넘는 제방에 모두 5개의 수문을 내어 물을 조절했지요. 제방 안의 저수지는 무척 넓었는데 무려 여의도의 4배 크기나 되었답니다.

우리 조상들은 벼농사를 짓기 위해 넓은 평야 주변 곳곳에 물을 저장할 수 있도록 저수지를 만들었어요.

벽골제는 평소에는 수문을 닫아 물을 저장했다가 모내기 철이나 벼에 물을 대는 시기가 오면 수문을 열어 주변 농지로 물을 공급했어요. 지금은 물이 있던 자리 대부분이 논과 마을로 바뀌었지만 제방과 2개의 수문은 남아 있어요.

농사는 우리 민족의 중심이 되는 문화였어요. 사람들은 평야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고 농사를 지으면서 독특한 농경 문화를 만들었지요. 농사를 잘 짓기 위해 절기2)를 만들었고, 세시 풍속과 민속놀이도 발전했어요.

1) 벼농사 과정

벼농사에는 물을 댄 논에 벼를 심는 방법과 밭에 볍씨를 뿌리는 방법이 있어요.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논을 만들고 벼농사를 지었어요. 논에 벼를 심어야 수확량이 늘어나기 때문이지요.

봄에 볍씨를 모판에 심어 키운 후, 물을 댄 논에 모내기를 해요.. 비료를 주어 모를 잘 자라게 한 후, 잡초를 뽑아 주는 김매기를 하고 벼가 잘 자라면 추수3)를 하지요.

모내기에 대해 알아볼까요?

벼농사를 지을 때 볍씨를 논에 직접 뿌리지 않고 모판이라는 판에서 싹을 먼저 틔워요. 파랗게 싹이 돋은 모를 적당한 시기에 물을 댄 논에 조금씩 덜어서 심는 일을 모내기 혹은 모심기라고 해요. 볍씨를 밭에 뿌려서 키우는 것보다 수확량이 많지만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예부터 평야 옆에는 큰 저수지가 있었답니다.

2) 농사에 필요한 도구

농사에는 많은 도구가 필요해요.
대표적인 농기구로는 밭을 가는 데 사용하는 쟁기, 땅을 파거나 흙을 고르는 데 쓰는 괭이와 쇠스랑, 김매기에 사용하는 밀낫과 호미, 거름을 담아두는 오지장군, 똥장군 등이 있어요. 또, 물을 위로 퍼 올리는 무자위와 용두레, 두 사람이 함께 물을 퍼 올리는 맞두레 등이 있지요. 농기구는 쇠붙이와 나무, 짚, 대나무 등으로 만들었어요.

김제 벽골제 (천재학습백과 초등 창의적 체험활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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